취조실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선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팀장의 호출이 있었지만 선애 입에서 뭐라도 나올 때까지 자리를 뜨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선애는 그 일 이후 이틀 째 물 이외에는 먹지도 않고 취조실과 유치장을 오가며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선애의 움츠러든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선애야…… 그냥 아무 말이라도 해. 아무것도 안 물을 테니 그냥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해. 우리 이제 시간 별로 없다.”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던 내가 이렇게 말하자 뜻밖에 선애의 대답이 돌아왔다.
“할머니가 저보고 참 예쁘다고 하셨어요.”
아마 취조실 밖 영상실에서 이를 지켜보는 이들 모두 놀라고 긴장했으리라.
“할머니? 어떤 할머니?”
‘야 김 과장, 묻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둬. 내 말 알겠지?’
내 대답과 동시에 인이어에서 급박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한참 생각에 잠겼던 선애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제가 다섯 살 때였거든요.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게. 저한테 먼저 ‘안녕’ 하고 인사해주셨어요. 그리고 제 이름을 물어보셨죠. 그래서 제 손목을 보여 드렸어요. 그런데 번호 말고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아무 말도 못 하는 저를 빤히 쳐다보시고는 ‘착하고 사랑스럽게 생겼으니까 선애라고 불러야겠네’ 하시더라고요. 할머니께서 활짝 웃으셔서 깜짝 놀랐어요. 왜 놀랐냐 하면요...... 그렇게 활짝 웃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리고 내가 따라 활짝 웃어서 놀랐어요. 다섯 살 때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도 인이어 저편의 사람들도 모르긴 마찬가지일 텐데.
순간 전화가 울렸다. 정적을 깨는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내였다. 받아야 하나 망설여지던 찰나 나도 모르게 통화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한쪽 귀에서 들려오는 팀장의 욕설을 뒤로하고 다른 쪽 귀에 핸드폰을 가져갔다.
“ 대체 언제 올 거야? 우리 애는 태어나 딱 한번 아빠 얼굴 봤다고. 나나 얘나 지금은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우리 오늘 퇴원이야. 산후조리원도 나랑 애랑 둘이 가야 하는 거야? 애 이름은 생각해봤어? 이름도 내가 정해야 하는 거야? 출생신고도 해야 하는데.”
아내의 질문에 나는 아무것도 대답을 할 수 없다. 대체 언제 아이를 볼 수 있을지 언제 갈 수 있을지 애 이름은 뭐로 정해야 하는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데 아내는 틈을 주지 않고 다음 질문을 이어간다.
“ 정보실 유나랑 통화했는데 선애가 사람을 죽였다며? 그게 무슨 일이야? 아니지? 그냥 사고지? 선애가 그런 거 아니지? 설마, 당신이 선애씨 사건 맡고 있는 거야?”
아내는 이번엔 내가 다 알고 있는 답의 질문을 했지만 이번에도 대답을 할 수 없다.
“여보.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몸조리 잘하고 있어. 오늘 저녁에 꼭 조리원으로 갈게. 가서 얘기해줄게. 끊어야 할 것 같아.”
“알았어, 꼭 와. 조리원 호수 정해지면 문자로 남길게. 선애 괜찮은 거지?”
대답을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었다. 인이어 너머로 팀장의 긴 한숨과 적막이 들렸다. 선애를 바라보니 선애는 취조실 구석을 응시하며 생각에 빠진 행복한 얼굴로 그대로 있었다.
“할머니 이름이 ‘나나’였어요. 무슨 뜻이냐고 했더니 너무 많은 뜻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고는 또 웃으셨어요. 참 예쁜 이름이죠. 나나.”
선애는 얘기를 하며 다시 생기를 찾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얘기들 속에서 단서라도 찾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선애는 다시 침묵의 길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