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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비 Jun 03. 2022

2. TV를 없애면 어떻게 되나요?

무심코 지나친 소중한 것들을 오늘은 알고 싶습니다.



  나는 집 근처 도서관을 자주 가는데 내가 주로 가는 소설 코너 (843.XX 스릴러 미스터리 소설) 책장으로 가던 중 그날 하필이면 한 책장 앞서 먼저 들어가는 바람에 그동안 전혀 접하지 못한 책들에 둘러싸였다. 낯선 책들이 불편해서 다시 책장 사이를 나오던 중 아주 얇은 파란색 책이 눈에 띄었는데 그 책은 나를, 그리고 우리 가족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 책의 제목은 ‘10년 동안 텔레비전을 끊어보니까’라는 책이었다. 아주 얇고 내용도 많지 않아서 저녁 시간에 가족들에게 이런 책도 있다면서 읽어주었다. (앞 광고, 뒷 광고 아님. 내가 대출해서 내가 읽음)




  10년 동안 텔레비전을 끊고 나서 생긴 이야기들을 나열한 이야기를 들으며 가족들은 재미있어했고 공감했다. 다 읽고 나자 아이들이 먼저 우리도 텔레비전을 없애보자고 제안했다. (안돼ㅠㅠ 그러지 마~) 그리고 한술 더 떠서 컴퓨터와 휴대폰 사용도 제한하자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일주일간 게임과 컴퓨터, 휴대전화 사용에 대해 시간 총량제를 적용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아이 둘 모두 이 총량제도 없애고 꼭 필요할 때만 허락을 구하고 쓰겠다고 했다. 자발적인 제안에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컴퓨터와 휴대전화 제한을 나와 남편에게도 제안했다. 꼭 필요한 일에는 쓰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조건으로. 남편의 핸드폰 사랑에 불만에 많았던 나는 대찬성이었다. 나야 어차피 뉴스 외에는 TV를 보지 않고 마트 장보기와 필요한 뉴스, 아이들 학교 알리미 외에는 휴대전화 자제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남편도 오래전부터 TV를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던지라 우리 가족은 책 한 권으로 10분 만에 TV 전원과 안테나를 뽑아 버렸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순간부터 우리 가족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하다 말다를 반복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올해는 꼭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겠다고 가족들에게 공표하고 (아 떨려… 나 떨어질 것 같아)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삶이 여유로워졌다.(거리두기 완화로 아이들이 정상 등교했기 때문이 가장 큰 요인이긴 하지만……) 저녁을 먹고 설거지하기 전에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저녁식사 뒷정리를 하다 보면 9시가 훌쩍 넘어가고 씻고 자기 바빴다. 그런데 지금은 TV 뉴스를 보지 않으니 저녁 먹고 바로 일어나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고 씻고 나면 9시. 그때부터 11시까지 나만의 시간이 선물처럼 주어진다. 그럼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때로는 못다 한 공부를 할 여유도 생겼다. 책을 자주 보니 도서관도 자주 가게 되는데 그동안 읽어보지 못한 책들에 손대기 시작했다. 내가 보지 못한 세상들을 들여다볼 문이 열렸다. 단지 TV만 없앴는데!


  남편은 종종 손에 핸드폰이 붙어 있어서 나와 갈등이 있었고 자신은 모든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기에 책을 읽을 필요 없다는 궤변을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문맹인이라 불렀다.) 처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소파에 앉아 두리번거리던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남편은 할 일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생업을 위해 미뤄뒀던 음악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영감을 받아 곡을 썼다며 들려주기까지 했다. 자기를 뮤지션이라고 불러달라며. 주말에는 아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기도 하고 아들과 단둘이 버스 데이트를 떠나기도 하고 나와 마트에 가서 장도 본다. 오늘 아침에는 식사 전 책을 읽으며 어제 책 반납을 하고 새로 빌린 책이라며 자랑하는 모습에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단지 TV만 없앴는데!


  딸아이는 원래도 책을 좋아했는데 여유로워진 시간 덕에 더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심지어 밤늦게까지 책을 못 읽게 했더니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고 있다. TV를 보지 않으니 학교와 학원 숙제도 미리 끝낼 수 있고 시간이 많아지니 책도 많이 볼 수 있다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TV와 핸드폰에 쓰고 있었는지 후회된다고도 했다. 그리고 미디어 경청 (경기도 교육청 청소년 방송)에서 학교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기사 글을 작성해서 종종 올린다. 여유로운 저녁 시간에 글을 쓰고 다듬고 올리고 (조회수를 확인하고) 스스로를 뿌듯해한다. 시간이 많아지니 뭐할까?라는 생각도 자주 하게 돼서 주말에 나랑 마타롱을 만들기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자기의 진로에 대한 고민도 하고 친구들 이야기와 요즘 스포츠 클럽에서 배우는 걸그룹 댄스를 나한테 알려주기도 한다. 단지 TV만 없앴는데!


  별병이 겜보이였던 아들은 지금 얼굴색이 반반이다. 마스크 쓴 부위는 하얗고 눈과 이마는 까맣다. 학교 갔다 와서 늘 하던 게임이나 TV를 못 보니 축구공을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가거나 인라인을 타고 신나게 놀다 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땀을 쭉 흘리고 와서는 땀을 식히며 책을 읽는다. 때로는 누워서 때로는 앉아서 때로는 삐딱하게. 많은 시간 책을 읽는다. 자기 방에 있던 책도 몇 번씩 읽고 일주일에 한 번 가방에 반납할 책을 잔뜩 짊어지고 도서관에 가서 새로운 책들로 바꿔와 나에게 빌려온 책들을 소개해준다. 책 읽는 속도도 많이 늘어서 이제는 제법 두꺼운 책들에 손을 덴다. 얼마 전에 나에게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책을 읽어 봤냐며 묻고는 ‘철학적’인 책인데 나도 읽어 보면 좋겠다고 책을 주고 갔다. 세상 무식한 엄마가 된 거 같았지만 아들의 유식함이 낯설고 반갑다. 주말이면 키우는 우렁이와 열대어 물갈이를 해주고 강낭콩과 캣잎, 커피콩 나무 모종을 가꾸며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기보집을 꺼내와 바둑을 둔다. 그래도 심심하고 할 일이 없으면 책상에 앉아 문제집을 푼다. 단지 TV만 없앴는데!


  TV가 없어도 우리는 전혀 심심하지 않다. TV를 보고 핸드폰을 했던 시간들은 그 순간만의 즐거움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더 재미있으면서 지속 가능한 즐거운 것들이 생겼다. 그냥 다른 뭔가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기보다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가족의 대화 시간이 늘었고 다른 이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서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리고 불과 석 달 전에는 책한 권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책 한 권이든 누군가의 말 한마디이든 지나치듯 읽은 명언이든,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된 순간이라면 나에게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역시 인생은 타이밍...


오늘의 검색어 :  TV를 없애면 어떻게 되나요? 재미있는 일상이 펼쳐집니다~ 이번 주말엔 TV 꺼두기에 도전해 보세요~ 우리는 심심해져야 합니다.


추신 : 우리에게 이런 변화를 일으킨 김우태 작가님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은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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