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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비 Jul 02. 2022

3. 윤슬신문

무심코 지나친 소중한 것들을 오늘은 알고 싶습니다.


  제가 읽는 신문이 있는데 바로 윤슬 신문입니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윤슬 신문은 2021년 7월 12일에 창간되었고 매주 월요일에 발행되는 주간지입니다. 이번 주 월요일이 41호 신문으로 꾸준히 발행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편향도 없고 비난이나 혐오를 조장하는 기사도 없습니다. 매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주제의 기사들이 실리고 있고 심지어 광고도 없어서 신문의 독립성이 지켜지고 있다고 할까요? 윤슬신문은 들어본 적 없으시다고요? 네, 당연하죠. 초등학생 몇몇이 모여 만든 어린이 신문이니까요.


윤슬 신문 창간호 첫머리


  작년에 저희 아이들과 같은 학교 친구들이 코로나로 정상 등교도 못하고 답답하고 심심해서 어린이 신문을 기획했습니다. 6명의 아이들이 모여 사장과 부사장, 기자들을 구성하여 신문사를 차렸고 기사 주제에 대해 줌으로 회의하고, 기사를 쓰고, 편집하여 창간호를 발행했습니다. 그 신문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신문사 사장(작년은 딸, 올해는 아들)은 토요일 점심때면 신문 편집 최종본을 저에게 보여주는데 문맥이 아주 이상하거나 맞춤법이 틀린 것 외에 저는 손대지 않고 그대로 저장하여 인쇄담당자(남편)에게 메일로 보냅니다. 그러면 인쇄담당자는 발행부수를 확인하고 그날 저녁 인쇄된 신문을 가져와 신문사 대표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면 신문사 대표는 월요일 아침 이른 등교를 하여 각 기자들의 반에 신문을 배달하고 기자들은 각자 반 게시판에 부착합니다. 신문 최종본에서 제가 틀린 글씨를 좀 봐주고 남편이 인쇄를 담당하는 것 외에 어른들의 손길은 전혀 거치지 않는 순수 어린이 신문입니다.

  

  처음에 저는 아이들이 몇 호 정도 발행하다 그만 둘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매주 신문을 발행한다는 일이 여간 만만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죠. 기사 주제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해야 하고, 기사를 쓰면 썼다 지웠다 무수히 반복하게 되고, 편집 회의에서는 의견이 분분해서 회의시간이 길어지기도 하고, 마감시간까지 기사를 보내지 못한 기자들에게 연락해야 하고, 펑크 나는 기사라도 있으면 부랴부랴 새로운 글을 써야 하는 것들이 모두 아이들의 몫이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아이들은 일 년 동안 방학 기간 몇 번을 제외하고 한 번도 빠짐없이 주간 신문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6학년이었던 기자들이 올해 중학교로 올라가며 기자들이 모두 그만두는 상황이 되자 신문에 기자 모집 공고를 내어 새로운 기자들을 맞이하여 지금도 윤슬 신문에 6명의 기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주 3~4편 정도의 기사가 실리다 보니 지금까지 발행된 기사만 해도 120편이 넘습니다. 그중에 기억나는 몇 가지 기사들이 있습니다. 작년 광복절 특집기사(6호)는 아이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올해 세월호 특집기사(32호)는 우리의 가슴 아픈 기억을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다시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주변 자연에 대한 기사와 재미있는 이야기, 우리 동네나 학교 소식 등 매주 다양한 기사들로 신문이 발행됩니다.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부족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신문을 발행하며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매주 이런 다양한 기사들을 써나가는지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우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 머릿속에는 무언가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 같습니다. 


광복절 특집호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들  /  태극기 변천사  /  전국에서 일어난 3.1 운동  /  일제강점기를 글로 쓴 사람들

/  우리 조상들의 굳은 의지, 신민회


세월호 특집호

잊지 못할 사건, 세월호  /  세월호 사건, 숨겨진 영웅들  /  세월호 침몰 원인  /  우리나라의 해양사고


그 외 기사들

경기도 국민안전 체험관에 대해서 / 변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  병드는 우리의 지구 /  OO초등학교 책의 날 행사 /  이탈리아 충격의 패배 그리고 2 연속 월드컵 진출 실패 /  잇따라 일어나는 산불 /  강아지 바지 논쟁  /  푸른 가을 하늘 속 이야기  /  한글날은 왜 10월 9일일까? /  길 위의 삶, 도심 속 작은 맹수  /  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  순우리말에 관심을 가집시다.  / 언택트 시대 , 똑똑한 엘리베이터 버튼  /  코로나 백신 접종 체험기  /  우리 학교 도서관 리모델링, 여러분의 생각은?  /  애니메이션 어떻게 만들어질까?  /  조선의 과학수사 필수 교과서, 증수 무원록 대전 등...


  아이들은 직접 취재를 원칙으로 하되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가져온 자료나 그림에는 출처를 남기는 나름의 규칙을 지키며 신문을 만듭니다. 몇 달 전 아이가 교장실로 불려 간 일이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교장실로 가보라는 말에 아이는 깜짝 놀랐고 교장실로간 아이에게 이 신문을 네가 만들고 있냐는 말에 자기를 포함해 6명의 기자가 함께 만든다고 했다고 합니다. 교장선생님은 다음날 지금까지 만든 신문을 가져오라고 하셨고 저는 그 이야기를 전달받아 USB에 지금까지의 신문 복사본을 넣어 보냈습니다.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만든 신문에 혹여나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된 게 사실입니다.  아이는 USB를 교장선생님께 드렸고 선생님은 훑어 보시고는 앞으로 열심히 해보라고 , 학교 대형 게시판에 게시해 주시겠다고 하시며 아이 손에 초코바 하나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기자들 반에만 게시하던 A4 사이즈 신문이 학교 게시판 여러 곳에 B4사이즈로 게시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흔히 말하는 스펙 쌓기나 생기부 등재를 목표로 신문을 만들지 않습니다. 윤슬 신문은 공식적으로 등록된 적도 없고 인터넷에 찾아봐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학교 동아리나 공식 신문도 아니니 생기부에는 단 한마디도 언급될 일이 없죠. 대가를 바라거나 이용할 목적으로 만드는 신문이 아니니까요. 게시된 신문에 누군가 낙서도 하고 구겨버린 신문이 쓰레기통에서 발견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은 오늘도 묵묵히 42호 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자기의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이 신문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으니까요. 저는 이 아이들이 참 훌륭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앞으로 몇 호가 더 발행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처음과 끝 모두가 아이들의 몫이니까요.  그래도 세상에 이런 어린이 신문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주고 싶었습니다. 곧 창간 1주년이 되는 것도 축하해 주고 싶었고요. 


그래서 오늘의 검색어는 '윤슬신문' 입니다.

진실된 사실을 정직하게 발행하는, 학생들의 꿈이 담긴 신문입니다.

그리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신문입니다. OO 초등학교 학생들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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