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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너는 나의 보호자

by 꿈꾸는나비

함께 보낸 사춘기의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


아들 녀석 엄지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다. 빼내려고 둘이서 끙끙대다 결국 다음날 병원에 가기로 했다. 마침 나도 손목이 안 좋아 병원 가는 김에 같이 진료를 보기로 했다. 아이는 외과, 나는 정형외과에 진료 접수를 하고 둘이 앉아 기다렸다. 아들 먼저 차례가 되어 처치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바늘로 아이 상처를 살짝 뜯어내며 박힌 가시를 빼주었다. 아이의 표정을 살피니 아파도 잘 참고 있었다. 소독하고 드레싱을 하고 처치실에서 나왔다.

"참을 만했어?"

"별로 안 아팠어요. 이제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요."

허세인지 자존심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안 팠을까. 지혈도 한참 했는데.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진료실에 들어가려는데 아들 녀석이

"저도 같이 들어갈래요. 이번엔 제가 보호자예요.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들어볼게요."

"왜 따라 들어와, 그냥 저기 가서 앉아 있어."

아들 녀석은 막무가내로 진료실을 따라 들어왔다. 의사가 누가 환자인지 잠시 머뭇거리는 게 느껴졌다. 얼른 자리에 앉아 내 손목을 보여주며 증상을 설명했다. 이리저리 손목을 살펴보고는 엑스레이를 찍어 보자고 했다. 잠시 후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실을 다시 들어가는데 아들 녀석이 또 따라 들어왔다.

"그냥 밖에서 기다리라니까."

의사는 엑스레이를 보고 약간 관절에 무리가 갔다, 무거운 거 들지 마라, 약 일주일 먹고 물리치료하면서 다음 주에 다시 보자고 했다.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줄만 알았던 아들 녀석이

언제 커서 나의 보호자를 자청하고 나서는지... 너는 커가고 나는 늙어가고...


늙어가는 건 한없이 서글프지만 늙어간 시간만큼 네가 커갈 수 있음에 흐르는 시간을 감사히 여긴다. 사춘기라 힘들 때도 있지만 이렇게 엄마를 달리 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음도 감사하고 기특하다. 아프면 당연히 엄마가 병원에 데려다주고, 간호해 주고, 때 되면 약 챙겨주고 하는 것들을 좀 컸다고 감사히 여기는 걸까? 아니면 엄마가 늙고 병들어 가는 모습에 철이 드는 걸까? 집에 와서도 내 손목 상태를 체크하는 널 보며 이제 마냥 아이는 아니구나 싶었다.


약국에서 받아온 약을 서로 챙기며 나란히 앉아 약을 먹었다. '아픔'이라는 공감대로 이렇게 좀 더 할 얘기도 생기고 서로를 챙길 기회도 생겨서 오히려 감사하다. 우리의 사춘기도 이렇게 서로 의지하며 잘 보내자꾸나. 사춘기에 필요한 처방. 바로 '공감'과 '이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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