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사람들은 보트로 이동했다. 다들 작은 짐 가방 하나가 다였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두 가족 7명과 임신부 한 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인이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지만 누구도 말은 하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은 모두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땅이 멀어지자 임신부가 참았던 눈물을 흘리면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너무나 서글프게 해무에 퍼져나갔다. 노인이 쭈글쭈글한 손으로 임신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임신부는 노인의 품에 기대 남은 눈물을 흘렸다. 노인은 임신부의 어깨를 감싸 천천히 토닥였다. 이제 해무에 가려 땅이 어디인지 배가 어디인지 보이지 않았다. 선원 한 명이 보트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트의 속도가 줄더니 쿵 하고 부딪혔다. 보트 옆에 거대한 검은 벽이 서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때 선장이 일어나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배를 옮겨 탈 겁니다. 선원들이 탑승을 도와드릴 겁니다. 보안을 위해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여러분께서 생각하시는 배와는 차이가 있을 겁니다. 배에 다 타고나면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침묵해주십시오.”
선원들은 일사불란하게 9명의 사람들이 검은 벽을 타고 올라가도록 도왔다. 검은 벽 위에 다다르자 아래로 들어가는 커다란 검은 구멍이 있었다. 그 검은 구멍 안에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하나 둘 그 검은 구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검은 구멍의 문이 쾅하며 굳게 닫혔다. 잠시 뒤 해무 속 검은 벽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9명의 사람들이 통로를 가운데에 두고 마주 보며 기다란 두 개의 벤치에 나눠 앉아 있었다.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설명이 있기 전까지 침묵하라는 선장의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잠이 들어있었다. 한참 후에야 선장은 모자를 벗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통로를 걸어왔다. 이마뿐 아니라 등도 땀으로 젖어 있었다. 땀냄새가 이곳의 퀴퀴한 냄새와 잘 어울렸다. 선장은 벽에 붙어 있던 접이식 의자의 잠금장치를 빼내어 의자를 가져와 그들 앞에 앉았다.
“아마 눈치채셨겠지만 이곳은 일반 배가 아니라 잠수함입니다. 지금 수심 100mm 아래에 있습니다. 종자가 안전하게 옮겨지면 그곳에서 연구가 진행될 겁니다. 여러분도 그곳에서 지내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 지내던 곳과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잘 적응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15시간 정도는 더 걸릴 겁니다. 뒤쪽에 편한 공간으로 선원들이 안내할 겁니다. 선원 하나가 차를 끓이고 있었는데 준비가 되었나 모르겠네요.”
잠든 아이를 안고 있던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배가 아니라 잠수함이죠?”
“약탈자들 눈에 띄지 않고 어떻게 저희가 왔겠습니까?”
“아 그러네요. 저… 달기지나 고산지대 벙커로 가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우리는 두 곳 중 어디로 가게 되나요?”
모두의 시선이 선장의 입으로 몰렸다. 선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듯 차례로 훑어보고는 말했다.
“그 두 곳은 가고 싶어도 이제 갈 수 없습니다. 이미 다 파괴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일제히 탄식이 쏟아졌다.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노인은 가슴이 타는듯한 고통을 느꼈다. 눈물이 흐르지 않게 눈을 더 크게 떴다.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약탈자들 때문인가요? 그들이 달까지 간 건가요?”
“아니요, 달 기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각 나라 정부가 입장을 좁히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다 그렇게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지구 안팎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모시고 가는 겁니다. 그곳은 하나의 뜻으로 모인 사람들이 만든 곳입니다. 보안상 미리 말하지 못한 점은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약탈자들이 알게 되면 안전하지 않을 테니까요. “
“약탈자들이 우리가 있던 곳도 찾아올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비는 해야죠.”
“그래서 무기를 남겨두신 거군요.”
침묵이 흘렀다.
“네. 여러분은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라 앞으로 인류를 이어나갈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웅크리고 앉아 있던 임신부가 말라붙은 입술을 겨우 열며 말했다.
“제 아이도 생존자가 될 수 있을까요?”
선장은 그녀의 얼룩진 눈과 불룩 나온 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그곳에 의사들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있던 곳보다 훨씬 편하고 안전하다고 느낄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선장은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노인은 의심의 눈빛으로 선장을 바라봤다.
“ 그곳은 대체 어디죠? 여기서 얼마나 멀리에 있나요?”
그때 선원 2명이 쟁반에 차를 가져와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바람에 대화가 끊겼다. 몇 시간을 긴장 속에 있던 사람들은 따뜻한 차를 한 두 모금 마시기 시작했다. 노인은 잔을 받아 들고 천천히 차의 향기를 맡았다. 코끝에 전해지는 향이 가슴의 통증을 더 아프게 했다. 눈물이 금세 차오르는 것 같았다. 한 손으로 얼른 눈물을 훔치고 차를 한 모금 마신다. 차를 마셔본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차는 마시기 적당할 정도로 식어 있었다. 은은한 차의 향이 사람들의 긴장을 풀리게 했다. 선장은 어느새 의자를 다시 접어 벽에 고정시켜놨다. 그러고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걸어왔던 통로로 조용히 걸어 나갔다.
“할머니, 괜찮겠죠? 그곳은 정말 안전한 곳이겠죠?”
임신부의 마른 입술을 바라보며 노인은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 주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잖아. 약탈자들이 모르는 곳이라면 그래도 안전하지 않겠어?”
임신부가 한 손을 배 위에 올려두었다. 노인은 그 위에 자기의 한 손을 올려 포개 두었다.
“우리는 무사히 종자들과 새로운 땅에 도착할 거야. 이 아이는 새로운 땅에서 건강하게 태어날 거고. 그러고 보니 노아의 방주가 따로 없네…… 남자아이라면 이름을 노아로 지으면 딱인데, 딸이라 아쉽네, 아쉬워.
“할머니, 이 아이가 아들이면 어쩌시려고요.”
“딸이야, 딸. 딱 봐도 딸인데 뭐.”
임신부와 사람들이 작게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빠 품에 안겨 잠들었던 아이 하나가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깨어 이유도 모르면서 같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