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 방에서 나가요!"
아이의 외침에 남편은 딸아이의 방문을 열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온다. 딸바보 아빠의 애정은 점점 깊어가는데 그런 아빠를 딸은 밀쳐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아이 방문 손잡이에는 언제부터인가 '혼자 있고 싶어요, 들어오지 말아 주세요'라고 쓰인 메시지가 걸려있다.
아이는 이걸 만들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혼자 있고 싶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방문에 대충 '출입금지'라고 써서 붙이기는 싫고 정성을 다해 예쁘게 꾸미고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싶었나 보다. 사춘기 소녀의 갈등과 감성이 묻어 나오는 출입금지 안내문이다.
꼬물거리던 아기가 이렇게 자란 걸 보면 신기하고 대견하다가도 요란스러운 변덕과 심술을 부리면 감당이 안 되는 딸이다. 딸에 대한 나의 마음도 사춘기다. 언젠가 딸아이에게 '도대체 엄마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니?'라고 물은 적이 있다. 아이는 진지한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가 나한테 관심을 가져주면 그 관심 때문에 너무 짜증이 나고요, 나한테 무관심하면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에 또 짜증이 나요." 아이는 울고 나는 웃었다. 아이의 등을 토닥이다 나의 사춘기를 떠올려보았다. 남들 다 보내는 사춘기에 우리 엄마는 암에 걸리었고 아버지는 사업이 위태로워 늘 귀가가 늦으셨다. 두 살 터울 언니는 언제나 바쁘고 주변에 늘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반찬투정 옷 투정에 심통도 부리고 싶었는데 나를 받아줄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사춘기도 사춘기를 인정해주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인지 나의 사춘기는 특별했던 기억도 별로 없다. 나의 삭막했던 사춘기와는 달리 우리 딸은 가족 모두가 사춘기를 같이 보내준다. 나는 최대한 딸과 대화를 많이 하기 위해 늘 거리를 마련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가 들려주는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의 이름과 에피소드들을 기억하려 하고, 아이가 흥분해서 이야기하면 나는 더 흥분해서 이야기를 들어준다. 남동생은 매번 누나의 방문 앞에서 출입이 거부되지만 핑계를 만들어 늘 진입을 시도하고 누나 곁을 맴돈다. 딸바보 아빠는 밀어내는 딸의 힘에 적당히 밀려나면서도 끊임없이 접근과 교신을 시도한다. 딸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만 살짝 열고는 이렇게 잘 자라고 인사한다. "OO아~ 우리 딸~ 잘 자~ 사랑해~ 아이 러브 유~ 유 러브미?" 딸아이를 열 살까지 키워주신 외할머니는 아이가 늦게 하교하는 날에 할머니 집으로 불러 간식을 잔뜩 먹여 학원에 데려다주시기까지 한다. 딸아이의 사춘기를 가족들이 모두 함께 보내고 있다. 아마 가족들의 이런 관심과 사랑을 딸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른다면 그건…… 우리 딸은 사춘기이지만 그래도 인간이다. 나는 이런 사춘기를 보내는 딸이 참 부럽다. 너무 부러워서 갱년기를 보낼 나이에 같이 사춘기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나도 제대로 보내지 못한 나만의 사춘기를 지금부터 조용히 시작해보아야겠다. 그럼…… 뭐부터 해볼까?
사춘기를 함께 겪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와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