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함께 겪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와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
아이가 최근에 부쩍 마카롱을 좋아한다. 달고 맛있는 디저트이지만 가격이 사악하여 자주 먹지는 못한다. 매일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마카롱을 자기가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마카롱 만들기 책을 빌려 오더니 재료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마카롱의 재료는 단순하다. 계란 흰자, 설탕, 분당, 아몬드가루. 재료를 인터넷으로 구매하는데 배송비까지 더하니 재료값도 만만치 않아 차라리 사 먹는 게 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이의 부탁을 군말 없이 들어줬다. 재료가 배송 오자 토요일 2시에 마카롱을 만들겠다고 나에게 알린다. 위험한 일이 아니면 나는 아이가 하는 일을 막지 않는다. 대신 마카롱을 만든 후 주방을 잘 치우겠다는 상호 협정과 함께 그렇게 고대하던 토요일 2시가 되었다. 나는 경험상 마카롱이 실패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마카롱을 한 번도 만든 적 없지만 레시피 만으로는 모든 요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의 첫 베이킹 경험을 묵묵히 지켜봤다. 흰자와 노른자를 불안하게 분리하고 저울에 설탕과 아몬드 가루를 계량하고. 서투르게 이어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만 보았다. 재료들을 하나하나 채에 쳐내면서 아이는 투덜대기 시작한다.
“아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다 질질 흘리고”
식탁과 바닥은 이미 가루들로 엉망이었다. 그래도 나는 잔소리하지 않았다. 흰자에 설탕을 넣으며 아이는 머랭을 만들기 시작했다. 흰자를 거품기로 저으면서 흰자가 변하는 모습에 아이는 신기해했고 나는 그런 아이가 신기했다. 드디어 머랭에 채친 가루를 넣고 섞기 시작했다.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게 5분…10분.
“엄마, 이리 와 봐요.”
아이의 부름에 달려가 섞던 머랭을 바라보니 이건 누가 봐도 망친 상태다. 주르륵 흐를 정도의 반죽이어야 하는데 쿠키 반죽에나 어울릴 만큼 건조한 반죽이다.
“음… 반죽이 너무 된 거 같은데?”
아이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짤주머니에 반죽을 넣고 억지로 짜다가 엉엉 울어버렸다.
“하라는 데로 했는데 왜 안 되는 거야!”
나는 이미 알고 있던 결말이었으나 아이는 처음부터 책에서 보던 마카롱을 뚝딱 만들어낼 줄 알았나 보다. 아이가 짜증과 분노와 실망의 감정을 눈물로 쏟아냈다. “괜찮아~” 아이를 달랬으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실패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엄마도 빵 만들 때 많이 실패하고 그랬어. 엄마가 버린 반죽이 몇 키로는 될걸.”
그래도 아이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엄마랑 내일 다시 해볼까?”
“아이, 나 이제 안 할 거야.”
“엄마가 도와줄게 다시 해보자. 계량이 잘못된 건지 레시피가 잘못된 건지 이유 좀 찾아볼까?”
“나 이제 안 만들 거예요.”
“재료 많이 샀는데 어떻게 해. 내일 같이 하자.”
“싫어요!”
아이는 그렇게 한참 울었다. 어려서부터 눈물로 감정을 쏟아내야 진정이 되기에 나는 또 기다린다. 아이는 망친 반죽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자리를 뜬다. 주방은 설거지가 한가득 이었다. 다 하고 치우겠다는 약속은 자기감정 뒤로 빌렸나 보다. 나는 치우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보던 마카롱 책을 들여다봤다. 나는 아이의 감정도 중요했고 왜 망쳤는지도 중요했다. 그런 내 주위로 아이가 서성거렸다.
“엄마가 한번 해볼까?”
“엄마도 만들지 마요!”
웃음이 났지만 꾹 참고 나는 마카롱 책을 보고 또 봤다. 아이는 계속 그런 내 주위를 서성거렸다.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조언이었다. 내 조언이 아니라 권위 있는 전문가의 조언.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해줄 사람. 나는 유튜브를 켰다. 아이는 나에게 오지 않고 주변만 서성거렸다. ‘마카롱ㅅ’만 쳤는데도 마카롱 실패한 이유에 대한 영상들이 주르륵 떴다. 그럼 그렇지…… 내가 영상 하나를 틀어 보고 있자 어느새 아이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앉기 시작한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왔다는 마카롱 전문가는 마카롱은 만들기 어려운 아주 까다로운 디저트라며 말문을 열었다. 마카롱의 과자 부분을 꼬끄라고 부르는데 이것의 실패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고 했다. 배합의 문제일 수도 있고 머랭이 너무 많이 휘핑돼도, 덜 돼도 문제이고, 머랭과 가루를 섞는 작업이 마카로나주인데 이것을 너무 많이 해도 문제 덜해도 문제, 시트에 동그랗게 반죽을 짜 놓고 건조해야 하는데 건조가 덜 돼도 문제라고 했다. 습도에 따라 건조시간도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오븐이 집집마다 달라서 누구는 150도에서 구워야 하고 누구는 170도에서 구워야 하고 시간도 어떤 오븐은 10분 어떤 오븐은 그 이상이라며 꼬끄의 실패 이유에 대해서 10분 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의 수들을 조합한 실패한 꼬끄들을 펼쳐 보였다. 전문가는 그래서 꼬끄는 재료를 적당히 섞어야 하며 적당히 건조하고 적당히 구워야 하는데 이 ‘적당히’가 참 어렵다고 했다.
마카롱만 그런 게 아니다.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들도 그게 어렵다. 아이에게 적당히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적당히 기다려줘야 하고, 적당히 잔소리도 해야 하고, 적당히 간섭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몰라서 늘 우리의 관계는 실패한다. 요리의 레시피처럼 사춘기 아이를 둔 부모를 위한 책들도 많지만 그대로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고 그걸 말과 행동으로 써먹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도 감정이 앞설 때가 있어서 지혜롭고 슬기롭게 대처하기가 참 어렵다. ‘적당히’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 때 나만의 노하우가 되는 것이다.
영상을 다 보고 아이에게 내일 같이 다시 해보자고 하니 아이는 아까와 다른 말투로 답했다.
“네, 내일 다시 해볼래요.”
그제야 웃으며 말한다. 사춘기여서 그런 건지 그냥 아이의 성격인지 모호하다. 참 어렵다. 그래도 나는 ‘적당히’를 배운 사람이라 아이에게 그럼 어서 가서 주방을 치우라고 한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 청소기를 가져온다. 아마 아이도 엄마의 이런 이해와 배려를 ‘적당히’ 감사해야 한다는 걸 배웠으리라.
우리는 다음날 같이 마카롱을 만들었다. 다행히 주르륵 흐르는 반죽을 만들어 짤주머니로 동그랗게 짜서 말리고 꼬끄를 구웠다. 반은 터지고 반은 찌그러진 꼬끄였지만 딸아이는 울지 않았다. 우리는 뭐가 잘됐고 뭐가 잘못됐는지 하나하나 얘기하며 다음 주에 다시 만들어보자고 했다. 우리의 마카롱은 오늘도 실패했다지만 그렇게 나는 사춘기 딸을 배워가고 딸은 사춘기 딸을 둔 엄마를 배워간다. ‘적당히’를 알 때쯤 우리는 마카롱도 성공하고 우리의 사춘기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