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모든 것에 적극적이고 욕심이 많은 성격이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를 욕망 어린이라고 했고 딸은 그런 나를 나무라며 자기는 열정 어린이라고 했었다. 그 열정은 식지 않았고 중학교에 올라간 올해는 더 활활 타올랐다. 학급 회장으로 나가 당선되어 학급일을 하고 교내 수학 과학 동아리에 환경동아리까지 새로운 세상을 만나 열정을 맘껏 태우고 있다. 그런 아이가 이번에는 새로운 영어 학원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지금 다니는 동네 영어학원 원비가 인상하면서 비싸다는 이유에서다. 저렴한 학원으로 옮기고 싶다는 아이의 명을 받들어 근처 학원들에 연락해봤는데 원비는 다 비슷비슷했다. 커리큘럼도 비슷비슷해서 레벨테스트를 받고 결정하자고 했는데 아이는 그럼 이번에 대형 학원으로 다녀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만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알아본 대형 학원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컸고 실제로 레벨테스트를 받으러 가서는 그 규모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다녔던 학원과 다른 점은 단 한 가지. 아이들의 입시에 맞춰 진행되는 공부의 방향이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아이를 입시경쟁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가 고민이 되었다. 아이는 레벨테스트를 하러 가고 나는 대형 강의실에 앉아 다른 학부모들과 학원 홍보 영상과 학원 교육 시스템 등에 대해 들었다. 학원은 특목고에 얼마나 보냈고 명문대에 몇 명을 보냈는지에 대해 홍보했고 나는 그런 영상과 설명을 불편하게 듣고 있었다. 특히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건 엄격하게 관리된다는 아이들의 학원 내 성적과 무수히 잘린 레벨들이었다. 당장 학원에서 우리 아이는 성적에 따라 레벨이 정해지는 현실에 놓인 것이다. 가혹하게 느껴졌다. 입시는 30년 전 나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나는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양육 목표를 가지고 키웠는데 그렇게 자란 아이가 이런 현실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레벨테스트를 받고 온 아이와 성적을 두고 상담이 진행됐다. 아이는 중간 정도의 레벨이었다. 나는 오히려 기대 이상이라고 생각했고 아이는 중간밖에 안 되는 레벨이라 서운한 눈치였다. 당장 등록은 하지 않고 생각해보겠다고 돌아서 나왔지만 사실 이건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학원을 다닐 당사자의 몫이었다. 아이는 시험 보느라 힘들었다며 축 쳐져 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와플을 하나씩 사서 들고는 거리를 잠시 걸었다. 내가 아이를 데려온 게 잘한 일인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직 중학교 1학년인데 너무 빨리 입시경쟁으로 내몬 게 아닌지 걱정되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알지 못했다. 아이가 꺼낸 말은 의외였다. 자기는 이 학원으로 바로 옮기겠고 한 반 한 반 올라가서 언젠가 저 꼭대기 반에 들어가면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대형 학원으로 옮기겠다나. 일명 도장깨기였다. 황당한 말에 웃음이 났다. 나는 아이에게 누구를 이기기 위해 공부하고 레벨을 높이는 게 공부의 목적은 아니지 않냐고 했다. 아이는 목적은 아니지만 수단으로 이용하겠다고 했다. 자기가 중간밖에 안 되는 레벨이라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남들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역시나. 열정 어린이는 자라서 열정 청소년이 되었다. 오히려 혹독한 입시 현실을 딸보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춘기와 입시는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서 비슷한 시기에 끝이 난다.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때로는 공생하며 서로 끌어당기지만 때로는 경쟁하며 밀어내기도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이별하기도 한다. 사춘기도 입시도 겪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괴롭고 힘들긴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건강하게 사춘기와 입시가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하게 된다. 나는 아이가 ‘나’라는 존재를 남들과 비교하며 만들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공부의 성적과 등수보다는 배우고 익히는 과정 자체에 더 많은 의미를 두기 바라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경쟁과 비교로 만들어간 자신의 길을 돌아봤을 때 누군가의 흔적이 묻어난 길이 아니라 온전히 ‘나’만의 내가 담긴 그런 길을 아이가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 길에 사춘기와 짝꿍인 입시가 서로 손잡고 때로는 다독이고 때로는 토라지고 따로 또는 같이 그 길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사춘기와 입시가 끝날 때 즈음 단단하게 서서 자신의 길을 가는 너를 엄마는 그려본다. 엄마도 그때 즈음엔 좀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엄마가 되어 있기를…
그래서 학원은 등록했냐고요? 네. 6월부터 울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어렵기도 하고 숙제도 많으니까요. 힘들면 그만두라고 했지만 아이는 할 수 있을 때까지 더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달도 등록해서 다니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해주고 싶으니까요. 노력을 통해 이겨내면 성취감을 느낄 테고 포기하거나 실패하면 그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이 있겠죠.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가 꼭 깨달았으면 합니다. 어쩌면 이 말은 딸이 아닌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아이의 사춘기든 입시든 실패는 없습니다. 우리는 성장할 테니까요. 우리의 사춘기는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사춘기를 함께 겪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와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