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매일 아침을 챙겨 먹습니다. 제가 아침밥을 차려놓고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말하면 등교 준비하던 아이들과 남편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합니다. 그날도 똑같은 아침이었는데 병아리콩밥이라는 게 달랐을 뿐이죠. 콩을 싫어하는 딸아이 밥그릇에 콩 2개와 반공기도 안 되는 밥을 넣어줬었는데 그마저도 아빠의 밥그릇에 콩과 밥의 반을 덜어내다 저에게 혼이 났죠. 편식은 그렇다 해도 몸무게에 너무 집착하는 요즘, 아이가 소식하는 게 맘에 걸렸기 때문이죠. 아이의 밥그릇에 덜어낸 밥과 콩을 다시 담아주며 다 먹으라고 했습니다. 입이 나온 채로 아이는 식사를 시작했죠. 밥 먹는 내내 아이는 밥알 몇 톨과 반찬만 집어 먹었습니다. 가족들은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데 아이의 밥그릇에는 밥이 거의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일어나려 했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되었죠.
“밥 다 먹으라고 했지? 왜 밥은 안 먹고 반찬만 먹는데!”
“나 밥 먹었어요, 엄마가 못 본 거잖아요.”
“내가 퍼준 밥이 그대로 있고 밥알 몇 개 먹은 게 다인 줄 모를까 봐?”
“나 밥 먹었어요.”
“여보, 내가 밥 먹는 거 봤어, 그만해.”
“밥 다 먹어야 학교 갈 수 있어! 다 먹어!”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고 아침상은 저로 인해 분위기가 싸해졌죠. 맛있는 반찬만 몇 개 골라 먹고 일어나는 딸이 얄미웠고 밥 먹는 걸 보지도 못한 남편이 무조건 딸 편을 드는 건 더 화가 났죠.
“우는 거야? 울지 마~딸~~”
남편은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맨밥을 먹고 있는 딸에게 휴지를 건넸습니다.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었죠. 아이의 등을 쓸자 눈물이 더 뚝뚝 흘렀습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가 뭘 몰라. 엄마는 다 알아. 네가 어젯밤 잠들기 전에 뭐라고 했어? 너무 배고프다. 빨리 아침 되면 밥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네가 아침마다 몸무게 재는 거도 다 알아. 몸무게 늘어서 지금 안 먹으려는 것도 다 안다고. 그런데 엄마가 너한테 줄게 밥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 너한테 줄게 밥밖에 없다고! 아침밥 먹여 보내 놔야 점심때까지 버티지! 학교도 늦게 끝나는데!”
내가 말하고도 참 기막혔습니다. 줄게 밥밖에 없다는 말이 진심이긴 했지만 그래도 진짜 줄게 밥뿐일까.
“누나는 맨날 몸무게에 집착해.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다들 왜 나한테 뭐라 해, 아빠만 내편 들어주고”
동생의 말에 아이는 또 눈물을 뚝뚝 흘렸죠. 아이는 사실 뚱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랐죠. 그런데도 자기가 정한 몸무게를 벗어나면 유난스럽게 절식과 소식을 합니다. 건강하게 키우려는 저와 함께 갈등이 생기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연예인들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말랐지? 몸무게가 몇 킬로 일까?”
딸아이가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저는 혼잣말을 가장한 흉보기를 합니다.
“아우, 저게 뭐야. 뼈밖에 없네, 불쌍하다. 소속사에서 얼마나 애들 굶기고 다이어트를 시켰으면 몸이 저게 뭐라니, 저러다 병 걸리지. 제네 부모님 아시면 엄청 안쓰럽고 속상하시겠다.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 먹을 거 아니야, 불쌍해.”
아이의 머릿속 키 크고 깡마른 아이돌들이 아이가 생각하는 예쁨의 기준이 돼버린 게 참 안타까웠습니다. 외모에 관심 많은 시기라는 건 알지만 아이는 키 크고 날씬하고 머리 작고 눈 크고 코 오뚝하고 염색으로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자랑하고 예쁜 옷을 입은 연예인들을 바라보며 자신과 비교하는 걸까요? 그것이 실제 그들의 모습이 아니고 만들어지고 가공된 이미지라는 것을 아이에게 설득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사춘기 여자 아이들의 워너비는 왜 외모와 몸매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오늘 저녁, 삼겹살을 구울 예정입니다. 삼겹살과 목살, 쌈무와 풋고추, 쌈채소가 배송 오고 제가 그걸 정리하는 것을 딸아이는 분명 봤습니다. 점심을 차려 먹는데 아이가 밥을 또 덜어내다 저한테 혼났습니다.
“저녁에 많이 먹어야 해서 점심은 진짜 많이 먹으면 안 돼요!”
아이의 말은 진심입니다. 전 그 말이 사실인걸 알기에 덜어낸 밥에 대해 더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딸아이는 육식동물이거든요. 오늘 저녁, 아이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럽게 이런 말을 할걸 압니다.
“뭐... 맛있네. 엄마! 밥도 볶아 주실 건가요?”
사춘기를 함께 겪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와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