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17장 : 블랙박스 2020.08.03

by 꿈꾸는나비

눈을 떴다. 아니 떠있었다. 잠을 잔 것 같지 않다. 아니 잤나? 두세 시간마다 아이가 잠에서 깨는 바람에 아내도 나도 아이도 밤새 마주 앉기를 반복했다. 힘들 텐데 아내는 잘 해내고 있다. 모유가 아직 많이 나오지 않아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는 건 내가 맡았다. 서투른 솜씨에 분유 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딘 내 손을 나무라듯 앙칼지다. 우유를 타고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먹인다.

“잠 좀 자. 그리고 힘들면 신생아실에 맡겨. 조리원에 있을 때만이라도 좀 쉬어야지.”

“응, 그럴 거야. 당신이 있으니까 아기를 맡기지 못한 거지. 이렇게라도 봐야지 안 그러면 언제 볼지 모르니까. 아침 먹고 서에 가봐.”

아내의 얘기를 들으며 아이의 분유 먹는 모습을 바라봤다. 본능적으로 빨아대는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갓난아이의 콧잔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 모습이 힘차고 귀여웠다. ‘나나’라고?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이름을 불러봤다. 묘한 기분이었다. 우유를 다 먹은 아이를 아내는 받아 들어 세우고는 천천히 등을 쓰다듬어 내린다. 잠시 후 아이는 커다란 소리로 트림을 했다. 그렇게 아이는 또 잠이 들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보다 시신이 사라진 상황이 더 견딜 수 없어 아이와 아내를 뒤로 하고 조리원을 나섰다.

“여보 미안해. 이 상황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좀 편한 상태로 다시 올게.”

“알겠어. 나도 그래야 좋을 것 같다. 정말 이번 사건은 참 이상하다. 해결된 건 하나도 없는데 뭐가 계속 일어나네. 가서 얼른 사라진 교수님이나 찾아. 나도 궁금해 죽겠다. 그분은 죽은 몸으로 대체 어딜 가셨나?”

아내가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어서 연애 때나 결혼 후에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을 공유하고 공감받을 수 있으니. 아마 아내의 머릿속에는 사라진 교수님을 찾을 방법들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른다. 출산만 아니었다면 정보실 자기 자리에 앉아 안치실 출입자와 주변 cctv를 이미 다 훑어 봤을 거다. 그리고 찾을 때까지 집에 오지 않았을 거다. 아내는 때로는 단순하지만 때로는 집요하다. 아이의 이름을 치밀하게 지었을 테지만 나의 말 한마디로 단순하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잠시 아이의 이름은 미뤄두고 교수부터 찾아야 한다. 차에 올라 핸들을 잡았다. 여전히 찝찝한 습기가 가득하다. 부슬부슬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젯밤 뉴스에서 이번 장마가 역대 최장 장마가 될 거라는, 열흘 정도 지나야 장마가 끝이 날 거라는 우울한 기상청 소식을 알렸다. 이러다가 차 안에 곰팡이가 필 것 같다. 출발하기 전에 휴대전화를 꺼냈다. 팀장은 어제 3번째 통화에서야 전화를 받았다. 주차장에서 데려가던 사람이 누구였냐는 나의 질문에 팀장은 잘못 봤을 거라며 자기는 그 시간 다른 현장으로 가던 중이라고 했다. 시신이 없어졌다는 연락을 받고 서로 가는 중이며 경찰서의 cctv 몇 대가 잠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져서 보안팀이 해킹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더 이상 얘기는 못했지만 주차장에서 본 사람은 팀장이 확실했다. 그의 뒷모습은 누구보다도 내가 익숙하니까. 그 뒷모습만 봐도 그의 기분을 알 수 있으니까. 팀장은 왜 내게 거짓말을 하는 걸까. 그 사람은 누굴까. 서에 가서 종현이를 만나 얘기를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종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과장님.”

“나 지금 서로 들어가는 중이야. 너는 어디야?”

“저도 새벽에 올라와서 잠깐 눈 붙이고 서로 가는 중입니다.”

“그래 그럼 서에서 보자. 할 말이 많다.”

“네……저도요.”

전화를 끊고 시동을 걸었다. 블랙박스가 빨간 불빛을 반짝이는 게 보였다. 그래! 블랙박스. 어제 내 차 근처를 팀장이 지나갔을 수 있다. 블랙박스의 설정 버튼을 누르고 어제저녁 시간대 녹화 영상으로 찾아간다. 정확한 시간을 몰라 어제 종현과 전화한 시간을 휴대전화로 확인한다. 6시 13분. 그 시간 직전에 녹화된 영상을 확인하면 된다. ‘찾았다’ 나도 모르게 플레이 버튼을 누르며 긴장한다. 그 시간에 찍힌 영상에는 없다. 주차장 오른쪽 편으로 보였다면 어쩌면 후방카메라에는 찍혔을 거다. 그 시간 후방 녹화 영상을 재생시켰다. 전체는 아니지만 팀장이 누군가를 부축하고 가는 모습이 어렴풋이 담겼다. 분명 팀장이 맞았다. 어제 나를 불렀을 때 옷차림 그대로다.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다시 영상을 재생해본다. 그리고 다시 재생한다. 그리고 다시. 그리고 또다시. 영상에서 잠시 스치듯 얼굴을 비친 사람이 있는데 너무 멀어 확인은 안 된다. 그렇지만 팀장은 내게 거짓말한 게 맞다. 대체 뭘 숨기고 싶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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