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어린 여자 아이가 눈을 떴다. 아이가 눈을 뜨자 아빠와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는다. 사람들은 눈을 뜨자마자 노인이 느꼈던 공포와 불안, 분노를 차례로 느꼈다. 임신부는 아이의 태동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불안해하다가 좀 전에서야 아이가 움직이자 안심을 했다. 창문이 없으니 해가 떴는지 알 수 없었다. 몇 시인지 시계를 봤는데 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남자아이의 아빠가 자기 손목의 번호를 문지르며 문의 투명창을 통해 선장과 선원들을 바라보다 수화기에 손을 뻗었다. 그때 방안에 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스피커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이곳에 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이곳 기지를 책임지고 있는 위원장입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을 수면상태로 맞이하게 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대한 정보를 아셨다면 아마 잠수함에서 큰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판단되어 선장이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은 해저 1235m에 위치한…”
어른들은 비명을 질렀다. 노인만이 소리 없이 선장이 있는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을 뿐이다.
“해저? 천이백? 뭐?”
여자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통곡에 가까운 눈물을 흘렸고 임신부는 노인을 바라보며
“할머니, 이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가 바닷속에 있다고요? 그렇게 깊은 바다에 우리가 있다고요?”
노인은 아무런 반응 없었다. 어른들이 패닉 상태인 이유를 모르는 아이들은 눈치를 보며 조용할 뿐이었다. 스피커에서 끊겼던 말이 이어 나왔다.
“이곳은 해저 1235m에 위치한 해저 기지입니다. 이곳의 정착 규정에 따라 여러분은 2주간 격리실에 머물게 되실 겁니다. 그동안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외부의 오염 물질 제거와 소지품 소독과 면담 후 정착에 필요한 정보들을 안내받으실 겁니다. 이곳 기지는 국적과 이념과 종교의 제한 없이 단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뜻을 모은 사람들에 의해 수십 년 전부터 비밀리에 건설되기 시작했고 5년 전 사람들이 이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곳이 지구의 유일한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해의 어둠과 고립이 두렵게 느껴지시겠지만… 최선을 다해 여러분께서 정착하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러분이 있는 객실로 안내서를 보내드릴 테니 참고해 주시고 아침 식사 후 궁금하신 점에 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객실로 곧 아침 식사가 제공될 겁니다.”
그렇게 말은 끝이 났다. 여자 아이는 엄마가 울고 있는 이유도 모른 채 엄마를 끌어안아준다. 엄마는 가슴을 내리치며 고개까지 흔들고 운다. 여자아이의 아빠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 일어나 벽에 손을 대보고 두드려보다 말한다.
“바닷속에, 심해에, 이런 구조물을 지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햇빛 한 점 없는 이곳에서 인간이 살 수 있다고요? 내 눈으로 보지 않고 믿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끊이지 않는 신음 소리와 절망에 가까운 한숨뿐이었다. 잠시 뒤 쇠로 된 문의 노크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육중하고 두꺼운 쇠문이 열리고 하얀색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음식 수레를 밀며 들어왔다.
“식사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식판에 각자 번호가 있으니 해당하는 번호에 맞게 드시면 됩니다. 각자의 몸상태에 맞게 제공되는 식사이니 나눠 드시거나 바꿔 드시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한 시간 후 식판을 가지러 오도록 하겠습니다.”
남자아이의 아빠가 방호복을 입은 사람에게 다가가려 하자 방호복을 입은 남자는 한 손을 뻗으며
“다가오지 마십시오. 격리가 끝날 때까지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허락되지 않은 행동을 하시면 별도의 격리실로 이동하게 될 겁니다. 격리 해지 시까지 불편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기지 안내서를 가져왔으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안내서의 help 버튼을 누르시면 저희에게 바로 연락이 오니 필요하거나 궁금하신 게 있으면 요청하십시오.”
방호복을 입은 사람은 안내서를 음식 수레 맨 위에 올려놓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남자아이 아빠는 그 자리에 서있다가 안내서를 집어 들었다. A4용지 크기의 패드였다. 남자가 패드를 들여보는 사이 노인은 천천히 일어나 발을 끌며 음식 수레로 걸어갔다.
“어디…… 여기 사람들은 뭘 먹고사나 봅시다.”
수레의 칸에서 식판 하나를 잡아당겨 꺼내자 임신부가 이끌리듯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이거 뭐예요? 딸기 아니에요? 맙소사. 딸기 맞죠? 딸기라고요!”
임신부의 말에 모두가 식판 위 딸기를 바라봤다. 식판 위 푸른 채소들 사이에 딸기가 비현실적으로 빨간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임신부가 손을 뻗자 노인은 손을 잡아 손목의 번호를 보고는
“안되지, 이건 주인이 따로 있는걸. 어디 보자, 나도 아니고.”
아이의 엄마 둘이 자기 아이들의 손목을 확인하고는 이끌리듯 수레로 왔다.
“이건 우리 딸아이 번호예요.”
“자, 그럼 딸기는 딸기 주인에게 가고. 다음은 누구지? 음, 어디 보자, 이게 자기 꺼네.”
노인이 마지막으로 자기 식판을 수레에 꺼내 들고는 식탁에 앉았다. 아직 아무도 입에 음식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식판에는 여러 종류의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스테이크와 토마토, 상추와 샐러리, 딸기, 새우, 삶은 달팽이 등이었다. 아이들과 임신부 식판에는 말린 밀웜도 담겨있었다.
“이거 설마 가짜는 아니겠죠? 이런 음식을 먹어본 게 언제인지……이거 먹고 우리… 또 잠드는 건 아니겠죠?”
남자아이의 엄마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하다 아이를 끌어안았다.
노인은 포크로 고기를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모두의 시선이 노인에게로 향했다. 아이들은 동그래진 눈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음, 음… 이거… 맛있네. 아주 맛있어. 닭고기 맛도 나면서 소고기 맛도 나네. 배양육이 있는 걸 보니 배양시설이 갖춰져 있나 보군.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이라, 나쁘지 않은걸”
다른 한 손으로는 샐러리를 배어 물었다. 아삭한 소리가 나자 노인은 신선하다며 감탄을 이어갔다. 그제야 다들 허겁지겁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임신부는 물을 먼저 마셨다.
“깨끗한 물이에요. 이런 물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아이들은 양손에 딸기와 토마토를 들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고 남자 어른들은 그 모습을 보며 웃다가 입안에 음식을 넣고 울었다.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지만 다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정신없이 먹기 바빴다. 그렇게 해저 기지에서의 첫 식사를 허기와 눈물로 함께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