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 후 아이들은 침대에 앉아 놀고 어른들은 식판을 정리했다. 그리고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를 마주했다.
“매일 이렇게 음식을 먹을 수 있겠죠? 아이들에게 이런 음식을 먹일 수 있어서 얼마나…”
여자 아이 엄마가 말을 잇지 못했다.
“죄송해요, 그동안 아이들 허기를 채워주지 못한 때가 많아서 저도 모르게 그만.”
남자아이 엄마가 여자 아이 엄마 어깨에 손을 올리며 끌어안았다.
“아이들을 배부르게 먹일 수 있다면 어디인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바닷속이 아니라 더 한 곳이라도 난 괜찮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아까 그 토마토가 너무 맛있었어요.”
다들 마주 보며 웃었다.
“할머니는 예전에 먹었던 것 중에 뭐가 제일 먹고 싶으세요?”
임신부가 대뜸 노인을 향해 물었다.
“글쎄… 난 가끔 꿈속에서 먹는 게 있는데…”
노인의 말에 다들 숨소리 한점 내지 않고 귀를 세웠다.
“커피랑 빵. 빵은 그냥 빵이 아니라 버터를 발라 구운 빵이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그 빵을 한입 베어 물고는 뜨거운 커피를 후룩하고 마시면 콧속으로 커피 향이 올라오지. 구수하기도 하고 시큼하기도 하고 씁쓸한 그 향이 난 참 좋았어. 내가 스무 살 때부터 먹던 아침인데 가끔은 흔하게 먹던 그 아침 식사가 그리워. 그렇게 먹고 바나나를 하나 먹곤 했지. 우리 아버지가 바나나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내가 아버지를 닮아 바나나를 엄청 많이 먹었거든. 특히 난 덜 익은 바나나를 좋아했어. 덜 익은 바나나 한 다발을 사놓고 덜 익은 순서대로 매일 하나씩 까먹고는 했지. 처음엔 서걱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에 달지도 않은 초록 바나나를 먹다가 그다음엔 익어서 단맛도 나고 쫀득한 노란 바나나를 먹게 되지. 그러다가 마지막 바나나는 푹 익어서 검은 반점이 가득한 흐믈흐믈한 바나나가 되는 거야. 그렇게 다 먹고 나면 다시 덜 익은 바나나 다발을 또 사러 가는 거지. 그러다 어느 순간 바나나가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난 다시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지.”
아침을 배불리 먹었는데도 다들 군침을 삼키며 노인의 말을 들었다.
“그럼 자네는 어떤 게 제일 먹고 싶어?”
임신부는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 부른 배를 쓱 문질렀다.
“저는 늘 먹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이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뜨근한 밥이 먹고 싶어요. 밥을 한입 먹고 계속 씹으면 단맛이 나잖아요? 전 방금 막 지은 밥이 먹고 싶어요.”
이야기를 듣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들 머릿속에 먹고 싶은 음식이 하나씩 떠올렸다.
“그래도 라면 만한 게 없죠. 어릴 때 먹었던 그 라면 맛을 전 잊지 못하겠더라고요. 지겹도록 먹었는데도 말이죠. 전 라면이요.”
남자아이 아빠가 씩씩하게 말했다. 분위기가 다시 밝아졌다. 여자 아이 아빠가 안내서를 가져왔다.
“다 같이 안내서를 보는 게 어떨까요?”
모두들 여자아이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서의 버튼을 누르자 기지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많은 곳이 물에 잠기고 인간이 살 수 있는 땅과 식량이 부족해지자 각국 정부들은 현실을 인정하고 달기지와 고산지대 벙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이념과 정부에 상관없이 순수한 목적으로 인류의 생존을 연장하고자 하는 조직이 결성되어 극비리에 해저 기지가 건설되었습니다. 5년 전 200여 명의 기술자들을 시작으로 이곳에 사람들이 정착하고 지금은 700여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돔 형태의 구조물 5개가 중앙 돔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각의 돔에 거주공간과 각종 시설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공동체 생활시간으로 남녀노소 모두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매일 식사가 하루 3번 제공되고 각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위치에서 식사하게 됩니다. 공동체 시간이 끝나면 중앙 돔 광장에 모여 빛을 쐬어야 합니다. 기지 내 상황과 공지사항들은 중앙돔 게시판에 게시되어 있으며 상시 확인하여야 합니다. 기지 내 비상상황 발생 시에는 비상 알림이 울리고 비상등이 켜집니다. 비상상황에서는 모두 자기 방으로 들어가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게 됩니다. 각 돔 간의 이동은 제한되며 중앙 돔으로 연결되는 통로는 폐쇄됩니다. 다음 항목들을 누르시면 자세한 설명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한동안 안내서를 살펴보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혹시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고 계셨어요?”
남자아이 아빠의 말에 노인은 답이 없었다.
“이곳이 해저라는 사실에 다들 정신이 나갈 때 전혀 놀라시는 거 같지 않아서요. 너무 놀라서 가만히 계신 거 같지도 않았고, 뭐랄까 알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더라고요.”
“음…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이런 곳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은 해봤었어. 물론 나도 여기서 눈을 떴을 때 이곳이 그곳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지만 말이야. 곰곰이 생각을 해봤지. 선장은 분명 달기지도 고산지대 벙커도 아니라고 했고 잠수함을 타고 왔다면 어쩌면 바닷속이겠구나. 그리고 한 가지 떠오른 게 있었지. 한 이십 년 전이었을 거야. 내가 일하던 대학에서 동료 교수 몇 명이 뭔가 비밀리에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적 있었어. 극비리에 기지를 만들고 있다 했었거든. 기지 조건이 워낙 까다로워서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어서 보안 각서까지 써가며 몇몇 다른 교수들에게 협조를 요청한 일이 있었지. 내가 보기에는 조건이 좀 이상했었어. 중력은 지구랑 같은데 압력이 너무 쌨어. 절대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해서 아무에게 말한 적도 없지만 내심 새로운 행성을 찾았거나 물속이겠거니 했지. 그렇지만 실패하겠다 싶었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행성이라면 너무 멀리 있을 테고 물속이라면 수압을 극복하는 게 워낙 힘든 일이니까. 근데… 해냈네. 기지를 거대한 탱크로 만들어놨어”
“안전하겠죠? 제 말은… 여기가 무너지는 일은, 바닷물이 새어 들어오는 일은 없겠죠?”
“아까 식사가 들어올 때 저 문을 봤지. 저 정도 두께라면 문제없을걸.”
“그럼 이 기지가 전부 저 정도 두께로 되어 있을까요?”
“아닐 거야. 하하, 굳이 철이 아니더라고 더 강한 소재들이 있으니까. 고압을 견디는 재료는 많다네. 안전하니까 이곳에서 사람들이 정착해 살지 않았겠어? 우리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해야지.”
“그런데 할머니는 왜 이곳으로 데려온 걸까요? 제 말은 그러니까, 아, 죄송해요.”
남자아이 엄마가 말을 하다 눈치를 보며 주저한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도 궁금하네, 나이 들고 살날이 얼마 될지 모르는 내가 어떤 쓸모가 있어서 데려왔는지.”
“할머니는 뭐든 다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서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실 거예요.”
임신부가 노인 팔을 잡아당기며 말한다.
남자아이 엄마는 머뭇거리다 입을 연다.
“네, 할머니는 뭐든… 같이 안 계셨다면 저희가 종자 기지에서도 여기에서도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늘 저희를 이끌어 주셨잖아요. 종자 기지에서 그 난리가 났을 때도…”
다시 정적이 흘렀다.
“제가 오늘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하네요.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무슨 일을 하게 될까요? 아까 안내서에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잖아요?”
“그렇지, 누구나 일을 해야겠지, 그래야 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먹고 숨 쉬고 살아갈 테니까, 아마 우리 아이들도 뭔가 해야 할걸?”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놀고 있는 아이 셋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