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이 다시 열렸다. 모두들 점심 식사가 오는 줄 알았는데 캡슐 같은 커다란 원기둥 모양의 기계가 들어오고 있었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 둘이 들어오더니 화장실 옆으로 원기둥을 끌고 갔다. 궁금했지만 아무도 말없이 침대 쪽에 모여 있었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2개의 호수를 원기둥과 벽에 나와 있는 2개의 구멍에 각각 연결했다.
“샤워부스입니다. 사용법은 안내서에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샤워 후 새로 제공되는 의복을 착용해주시고 기존의 옷은 세탁 후 돌려드리겠습니다. 샤워를 모두 마치시면 점심 식사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대답도 하지 못했는데 방호복을 입은 사람 둘이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샤워부스가 안내서에 있었나요? 찾아봐야겠네요.”
남자아이의 아빠가 탁자로 가서 안내서를 들자 어른들이 모여들었다. 안내서 위생 목록에 샤워부스 설명이 있었다.
‘샤워 캡슐 문 앞에 손목을 대면 번호가 스캔되고 액정에 번호가 뜨며 문이 열린다. 캡슐 안에 들어가 문을 당겨 닫으면 불이 켜지고 온수와 냉수 레버를 조절하여 물을 사용할 수 있다. 샤워에 사용할 수 있는 물은 최대 4L로 정해져 있으며 1L마다 알람이 울린다. 사용한 물의 양은 개인 기록으로 저장되며 매달 사용량을 분석하여 허용량 초과 시 페널티가 주어진다.’
“페널티? 무슨 페널티일까요?”
“글쎄요.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요. 아니면 다들 기피하는 일을 한다거나.”
“왠지 그럴 것 같네요.”
아이들 엄마들이 서로 얘기를 나누는 사이 남자들은 샤워부스로 다가섰다. 노인은 자기의 손을 내려다봤다. 마지막으로 샤워를 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손에 얼룩이 지고 손톱 밑도 까맣다는 걸 느꼈다.
“먼저 하세요. 저희는 애들이 있어서 오래 걸릴 것 같아요.”
남자아이의 엄마가 노인의 팔꿈치를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노인은 눈인사를 하고 캡슐 앞에 섰다. 손목을 스캐너에 대자 ‘K20900801209’ 번호가 뜨면서 문이 열렸다. 노인은 캡슐 안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노인이 캡슐 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모두가 지켜봤다. 불이 켜지자 캡슐 내부가 보였다. 거울, 샤워기, 비누, 수건. 노인은 천천히 옷을 벗어 걸이에 걸었다. 시큼한 냄새가 온몸에서 난다는 게 느껴졌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마주했다. 주름이 언제 이렇게 깊게 파였나 싶을 정도로 늙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얼굴을 손으로 만져보다 샤워기 레버를 돌렸다. 따뜻한 물이 쏟아져 나왔다. 노인은 머리부터 흘러내리는 따뜻한 물을 손으로 모았다. 그리고 샤워기를 향해 얼굴을 들어 올렸다. 너무 따뜻했다.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알림음이 한번 울렸다. 노인은 얼른 레버를 돌려 물을 잠갔다. 그리고 비누를 집어 머리에서 발끝까지 꼼꼼히 닦아 냈다. 꽃향기 같은 비누의 향이 느껴졌다. 달콤한 꽃향기였다. 들판에 핀 꽃이었다면 꿀과 나비들이 모여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노인은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물줄기가 느껴졌다. 눈물이었다. 온수보다 뜨거운 눈물이 깊게 파인 주름을 타고 계속 흘러내렸다. 노인은 다시 샤워기 레버를 돌렸다. 머리부터 손으로 재빨리 비벼가며 비누를 제거해나갔다. 허벅지를 닦고 있는데 알림음이 다시 울렸다. 노인은 다시 레버를 돌려 물을 잠갔다. 종아리를 비비고 발목을 비비자 때가 쏟아져 나왔다. 발을 닦아 내자 검은 때가 벗겨지고 하얀 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은 다시 샤워기 레버를 돌렸다. 쏟아지는 온수를 온몸으로 받으며 노인은 재빠르게 다리를 닦아냈다. 노인은 세 번째 알람이 울리기 전에 레버를 잠갔다. 김이 서린 거울을 손으로 쓱 닦자 좀 전에 마주한 노인보다 몇 년은 젊어 보이는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충혈된 눈으로 웃고 있었다. 노인이 캡슐에서 나오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세 아이는 모두 노인을 바라보며 웃었다.
“할머니, 변했어요. 예뻐요.”
“와! 좋은 냄새도 나요!”
“그러냐? 예쁘긴 원래 예뻤지, 좀 더 깨끗해지니까 젊어 보이지 않니? 이번엔 네가 한번 들어가 보는 게 어때? 너도 지금보다 더 이쁠 것 같은데?”
“괜찮으셨어요?”
여자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괜찮았냐고? 끝내주던데. 따뜻한 물이 나와. 수압도 좋더라고. 근데 생각보다 알람이 금방 울리니 주의해야 할 거야.”
아이의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손을 잡고 캡슐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9명이 모두 샤워를 끝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각자의 옷에는 모두 손목과 같은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좋은 냄새가 방안 가득했다. 은은한 꽃향기에 기분이 좋았다. 벌과 나비 대신 아이들이 방안을 오가며 재잘거렸다.
“할머니, 나 세수했어요.”
“그래 어디 보자, 이렇게 이쁜 얼굴이었나? 아주 이쁘구나.”
노인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들의 얘기를 한참 들어주었다. 다시 철문이 열리며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점심 식사 카트를 몰고 들어와 카트를 두고 갔다. 아침 식사의 행복감과 기분 좋은 샤워 후 맞이하는 점심으로 모두 들뜬 마음으로 카트로 몰려들었다. 식판을 꺼내자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식판에는 각기 다른 색의 알약 캡슐 7개가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좀 더 작은 알약일 뿐 같았다. 남자아이의 아빠가 식판을 빼내어 각자의 번호에 맞게 건네주었다. 식판을 집어 들고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토마토는 이제 없네요.”
여자 아이 엄마가 실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여자아이 아빠가 안내서를 가져왔다.
“우리가 알아야 할게 많은 것 같네요.”
여자아이 아빠는 안내서의 목록을 보고 영양 항목을 클릭했다.
‘식사는 하루 3번 제공된다. 아침과 저녁 식사는 야채와 단백질 위주의 식사가 제공되고 점심은 캡슐 알약으로 대체한다. 캡슐 알약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및 무기질과 종합 비타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포만감과 균형 잡힌 영양을 제공한다.’
다들 물 한잔과 알약을 아쉬움과 함께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