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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비 Nov 30. 2023

15. 함께하는 사춘기와 갱년기

사춘기를 함께한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



올해 초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농구장 나들이를 했었다. 그것을 계기로 우리는 'KT 소닉붐' 팬이 되었다. 5월에 농구시즌이 끝났고 찬바람이 부는 10월부터 다시 프로 농구가 개막했다. 여건이 안되어 직관은 하지 못하고 KT 경기를 집에서 중계로 보다가 최근 일요일에 직접 경기를 보러 갔다. 


경기장으로 가는 중에 아이들과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들에 대해 얘기하고 지난 경기를 리뷰하고 오늘의 경기를 예측하는 등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지난 한 주간 우리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매일 아침 식탁에서 온갖 짜증을 내다 투덜투덜 학교로 가는 사춘기 절정의 큰 아이, '제가 알아서 할게요'가 유행어인 사춘기에 진입한 둘째, 일하는 게 재미없고 지겹다며 한참을 뭉그적거리다 출근하는 핸드폰 중독이 의심되는 남편, 책 읽기도 글쓰기도 운동도 안 하고 여기저기 아픈 몸을 핑계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던 나. 우리 가족은 사춘기와 갱년기로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취약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런 우리 가족이 농구장 나들이로 한껏 활력을 찾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경기장은 KT에 복귀한 허훈 선수로 팀 분위기가 고조되고 연승을 노리는 중이라 열기는 뜨거웠다. 중계로만 보던 선수들을 멀리서나마 직접 보게 되니 아이들도 나도 남편도 흥분하게 됐다. 총 10분씩 4개의 쿼터로 진행된 경기에서 아이들과 남편과 나는 경기 내내 맘껏 소리 지르며 응원하고 때로는 탄식을, 때로는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선수를 응원했다. 결과는 승리! 역시 경기는 이겨야 재밌구나.


경기가 끝난 후 식사를 하러 가면서도 우리 가족은 오늘의 승리와 명장면에 대해서, 그리고 다음 경기에 대해서 들뜬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는 농구에서 우리의 일상으로 넘어왔고 요즘 무엇이 힘든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이번주에 무슨 재미난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아도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풀리며 몸에 에너지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아마 나만의 느낌이 아닌 듯했다. 하루 종일 짜증없이 신나 해 하는 아이들과 농구선수로 빙의한 남편만 봐도 그랬다. 사춘기와 갱년기가 공존하는 가족에게 함께 할 수 있는 취미와 관심사가 있다는 것은 관계를 굉장히 유연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서로의 관계가 무너지지 않고 무사히 사춘기와 갱년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농구 외에 또 다른 관심사를 찾아야겠다는 의욕이 앞선다. 경기도 이겨야 재미있듯이, 우리의 사춘기와 갱년기도 이겨내야 재미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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