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치지 마라

어느 생일날 마주한 상도덕의 빈틈에 대하여

by 편부효
화면 속 꽃들은 아내를 향한 내 설렘이 투영된 모습이기도 했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쳐서는 안 된다." 법치주의의 준엄함을 논할 때 쓰이는 이 격언은 사실 우리 삶의 모든 구석에 적용되는 수단의 정직함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고 거룩할지라도, 그 과정이 정당하지 못하면 결과의 빛은 바래기 마련이다.

평소 이 문장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나였지만, 오늘 내가 주문한 아내의 생일 꽃바구니를 배달받는 순간 그 무게를 다시금 뼈아프게 실감했다.


아내 쪙은 1970년생이다. 쉰여섯 해라는 긴 시간 동안 모진 풍파를 견디며 내 곁을 지켜준 고마운 사람이다.


우리는 캠핑카 에벤에셀을 타고 363일간 유라시아 대륙을 함께 횡단했던 전우이기도 하다. 척박한 땅과 거친 길 위에서도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며 끝없는 지평선을 건넜던 그 시간이 있었기에, 그녀의 생일은 내게 단순한 기념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소중한 마음을 담아 고심 끝에 꽃바구니를 골랐다. 화면 속 꽃들은 우리가 함께 건넜던 대륙의 풍경처럼 터질 듯 풍성했고, 그 빛깔은 아내의 미소를 닮아 있었다. 아내를 기쁘게 하겠다는 내 목적은 분명 선했다.


하지만 배달된 실물은 내 선한 의도를 조롱하듯, 꽃송이 사이사이가 듬성듬성하게 비어 있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배달된 것은 꽃이 아니라, 누군가의 비양심적인 상술이었다


나는 항의했고 업체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고작 만 원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기가 막혔다.


내가 분노한 것은 만 원이라는 금액의 크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담보 삼아 정직하지 못한 수단으로 이익을 취하려 한 그 비양심적인 과정에 실망한 것이다.


상거래의 기본은 신뢰이며, 그 신뢰는 보여준 것과 주는 것이 일치할 때 완성된다. 이런 눈속임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소비자에 대한 기만을 넘어,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작은 불씨와 같다.


돌이켜보면 지난번 오리털 파카를 샀을 때도 그랬다. 솜털 대신 잡털로 가득 차 있던 그 옷을 보며 항의하다 지쳐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그때의 침묵이 오늘의 빈약한 꽃바구니를 키운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이 든다. 촛불을 훔쳐서 성경을 읽는 행위가 용인되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없다.


아내와 내가 살아갈 세상,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마주할 세상은 적어도 눈속임이 지혜로운 상술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비록 플랫폼 측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상황은 일단락되었지만, 내가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명확하다.

부당함에 익숙해지지 않겠다는 나 스스로의 다짐이자, 정직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향한 작지만 단호한 기록이다.


오늘 받은 이 빈약한 꽃바구니는 내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아내를 향한 내 진심만큼은 훔치지 않은 온전한 빛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유라시아의 먼 길을 함께 건너오며 쉰여섯 번의 계절을 묵묵히 견뎌온 당신에게, 그 어떤 화려한 꽃보다 정직하고 깊은 내 사랑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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