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기록
우리는 연결되었지만, 서로를 보지 않는다.
퇴근 시간의 지하철.
사람들은 빽빽이 서 있다.
그러나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각자의 손안에 작은 빛이 있다.
그 빛은 모든 것을 연결한다고 말하지만,
이 공간 안에서만큼은 모두를 고립시킨다.
누군가는 짧은 영상을 넘기고,
누군가는 알고리즘이 추천한 뉴스를 읽는다.
363일의 여정 동안
나는 이 장면을 세계 곳곳에서 보았다.
절경 앞에서도 사람들은
풍경보다 화면을 먼저 본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북아프리카의 푸른 하늘 아래
눈 덮인 아틀라스산맥이 햇빛에 반짝이던 순간,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기보다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도구는 그 장엄함을 기록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와 풍경 사이에
얇은 유리를 한 장 세워 두었다.
연결될수록 고립되는 역설.
전 세계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었지만,
내 발이 닿아 있는 그 땅의 흙냄새와
공기의 온도는
스크린 안으로 온전히 들어오지 못했다.
선택은 자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정교하게 설계된 흐름 위를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온 한 사람은
“잠깐만”이라는 생각으로 영상을 켠다.
다음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그리고 또 하나.
시계는 어느새 새벽을 가리킨다.
도구는 시간을 절약해 준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시간을 잃어버리는가.
한편, 오랜 세월 같은 방식으로 나무를 다루던 장인의 공방은 문을 닫는다.
기계가 더 빠르고 더 싸게 만들어낸다.
정확하지만,
체온은 없다.
산업 혁명 이후
인간은 도구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부속이 되었다.
효율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고,
속도는 미덕이 되었다.
기술은 중립적 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속도에 휩쓸리는 인간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장면은 전쟁의 현장에서 드러난다.
화면 속 점 하나가 표적이 된다.
버튼 하나가 눌린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명이 사라진다.
손에 피는 묻지 않는다.
그러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도구는 강해졌다.
그만큼 인간의 윤리적 무게도 무거워졌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문제는 성숙이다.
그리고 그 성숙의 문제는
결국 다시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3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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