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함은 마음이 공허할 때 주로 찾아온다.
속이 헛헛한 것 같고,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그럴 때 말이다.
무언가로 가득가득 채워주어야만 해결이 될 것 같은 그런 순간이 종종 찾아오곤 한다.
나는 대게 건강하지 못한 것들로 속을 채워갔다.
그에 따르는 부작용은 더욱더 감당하기 어려웠다.
왠지 모르게 헛헛한 속은 시도 때도 없이 먹는 것으로 채우고 나니 체중은 급격히 증가했고
텅 빈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을 의지하기 시작하니 돌아오는 건 상처뿐이었다.
소비하는 것으로 구멍 난 가슴을 메워보려 하니 당장 다음 달 카드 값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분명히 계속 채워 넣었는데, 어째서 나는 더 공허한 것일까?
결국 공허함은 억지로 무언가를 채워 넣는 다고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쓸모없는 채움은 계속해서 무기력과 공허함의 악순환을 만들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습관을 조금 바꿔보기로 결심을 했다.
본격적으로 움직여 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가장 먼저는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해결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지?’에 대한 생각은 굳이 별도로 시간을 내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작정하고 시간을 내면 생각이 더 갇히는 느낌이었고 의식적으로 원인을 꼭 찾아내야 할 것만 같았다.
혹시나 어수선한 공간이 정리가 되고 나면 정신도 조금은 쾌적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통 먼지투성이인 좁은 집.
이런 공간에서는 의욕을 다진다고 한 들 금세 다시 먼지로 뒤덮일 것만 같았다.
'그래 청소가 우선이다.'
주변이 정돈되면 마음도 정돈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청소를 먼저 하고 쌓인 설거지를 처리한 다음에 깨끗하게 씻자.
우선 집과 몸을 단정하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보기로 했다.
청소기를 돌릴 때
설거지를 할 때
샤워를 할 때
전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쏟아져 나오길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무의식 중에 나온 대부분의 생각은 '우울해'라든지 '한심해'등등의 자기 비하였다.
그런 자기 비하 사이에서 '좀 잘해보고 싶은데...'라는 강한 염원도 섞여있었다.
청소와 정리정돈을 말끔히 하다 보면 무언가 의욕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작 그 청소와 설거지에 에너지에 쏟고 나서는 녹초가 되어버렸다.
깨끗해진 집 소파에 기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세 시간, 네 시간을 그냥 보내고 나면 나에게 돌아오는 한 마디는 '정말 한심해...' 뿐이었다.
무기력함은 제 아무리 극복하려고 노력해도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와 내 삶을 헤집어 놓았다.
정말 지독한 병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언제부터였을까?
더 이상은 이렇게 간과할 수 없었다.
조금 노력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행동 범위가 점차 줄어들고 움직일 에너지를 상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하기도 귀찮은 지경이 왔다.
말을 내뱉을 에너지가 없으니 당연히 사람들을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지를 않으니 내가 요즘 느끼는 기분이나 감정 역시 나눌 길이 없었다.
은둔형 외톨이처럼 집에만 콕 박힌 채 낮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와 간간히 대화를 나누고
저녁 늦게 퇴근하고 돌아온 신랑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우울한 생각들을 머릿속에 가득 메우다가 이내 스스로를 격려도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다그치기도 했다.
어떻게 해도 해결되지 않는 감정들을 끝끝내 스스로와 타협하고 해결하려 안간힘을 썼다.
기분이나 생각을 나누지를 않으니 생각은 내 안에 꽁꽁 갇혀 더 이상 자라지를 못했다.
곧 생각이 이대로 멈춰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우울감은 겉으로 자꾸만 드러났고 노파심에 여동생은 신랑이 없는 시간과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최소화시켜주려 노력했다. 동생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나눴고 또 물었다.
그동안 미처 꺼내지 못했던 생각들은 엉킨 머리카락으로 꽉 막힌 하수구처럼 좀처럼 뚫리질 않았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리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을 하나둘씩 꺼낼수록 주고받는 대화는 계속 확장되어갔다.
머릿속에 가둬두었던 생각들이 예상치 못한 질문과 대답 속에서 조금씩 감정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도 생각을 나누다 보면 꽤나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생각은 머릿속에 갇혀 단정 짓기 일쑤였다.
제한된 생각은 좀처럼 뻗어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 상처가 내 아픔이 혹여 라도 약점이 될까 두려웠던 마음이 아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은 용기를 내보기로 마음먹었다.
무기력의 절정에 이르렀던 서른 살의 마지막 달.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공간이 바로 집이었다.
6년 동안의 살림살이는 걷잡을 수 없이 많아졌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 작은 집이었다.
뜯어져서 덜렁덜렁 거리는 거실의 회색 벽지는 보기만 해도 우울함 그 자체였다.
안 그래도 작은 집에 온갖 망가진 가구들이 한 자리씩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금방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집이었지만 벗어 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터라 더욱이 무기력해졌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 궁리를 했다.
사실 우리 수중에 있는 잔액과 상황을 살펴보면 이 집도 감지덕지였다.
비슷한 금액 대에 환경이 더 좋은 곳을 찾으려고 하니 마땅한 집도 찾을 수 없었다.
당분간은 여기에 계속 머물러야겠구나를 체념했을 때 이 공간을 더 이상 무기력의 블랙홀처럼 사용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상황은 바꿀 순 없지만 환경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낡은 가구들 몇 개를 새 것으로 바꾸자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거 하나 교체한다고 해서 이 총제적 난국이 변할 것 같지는 않았다.
긴 고심 끝에 ‘일단 버리자’를 결심했다.
낡고 오래된 가구들,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들과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아낌없이 버렸다.
발 디딜 틈 없이 꽉꽉 채워져 있던 쓸모없는 소모품들을 다 버리고 나니
그제야 어떤 걸로 채워야 할지 보이기 시작했다.
우울 감을 자극했던 뜯어지기 일보 직전의 회색 벽지는 요즘 인테리어 대세에 맞춰 네이비톤으로 셀프 도배를 했고 아이보리색인지 누런색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커튼을 떼어 벽지 색깔과 어울리는 화이트 네이비 투톤으로 맞췄다.
물건이 비어진 공간에 새로운 것으로 억지로 채우려 할수록 오히려 조잡스러워졌다.
싹 비우 고나니 집이 꽤 넓어졌다.
나에게 찾아온 무기력함 역시 더 채울 곳 없이 꽉꽉 가득 찼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공허함과 헛헛함 탓에 그동안 무엇으로 채워야 메워질까 고민을 했는데
나에게 지금 필요했던 건 채움이 아닌 비움이었다.
채움보다 더 어려운 과제 비움.
낡고 오래된 그 자리에는 온갖 먼지로 뒤덮여있고 곰팡이로 물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비워야지만 비로소 깨끗하게 치울 수 있고 깨끗해진 자리에 어울리는 것으로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공허함을 채우기보다 내 안에 가득 담긴 불필요한 감정들을 비워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채우는 것만큼 비워내는 것도 꼭 필요한 훈련이었다.
조금의 변화만 있었을 뿐 작은집은 1평조차 늘어나지 않았음에도 몇 평은 더 넓어진 기분이었다.
그동안 그렇게 싫어했던 이 공간이 조금은 좋아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무기력증에 빠진 내가 비워야 할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이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가지지 못한 열등감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비교의식
온전하지 못한 주변의 인간관계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있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천천히 들여다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