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가 내 안에서 점차 사라져 버릴 때 즈음 감정의 변화도 찾아왔다.
우울감, 자기부정, 슬픔, 절망감, 무기력함 등 온갖 부정적이면서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하지만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은 아니었고 그런 감정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발버둥으로 간신히 빠져나왔다 들어갔나를 반복했다.
온종일 죽상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잘 웃기도 했고, 잘 울기도 했다.
친구들을 만나서 기분전환도 했고
맛있는 걸 먹으면 곧잘 기분도 좋아졌다.
아무 생각 없이 밀린 드라마를 몰아보며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기도 했다.
우울감이 들다가도 금세 감정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걸 보며 일시적인 우울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 기복은 심했다.
좋을 땐 좋지만 싫을 땐 극단으로 달렸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설마 우울증인가 싶어 우울증 자가진단을 해 보았다.
심각한 단계는 아니었고 우울증을 향해 다가가기 직전인 ‘무기력증’의 단계와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무기력증이라니.
이게 웬 말인가. 최근 고민이 많았던 탓일까?
관계에 대한 허망함
미래에 대한 불안감
경제적인 걱정
큰 충격을 받을 만한 일도 인간관계 속에 큰 상처를 받은 일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모두가 하는 고민들이었다.
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무기력하게 만든 것일까?
내 마음이 나약해진 걸까?
자도 자도 자고 싶다.
감정의 변화에 앞서 나의 생활 패턴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도통 기운이 없고 잠만 자고 싶었다.
단순히 피로감에서 찾아오는 수면욕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서 외치는 “5분만”과도 달랐다.
몸은 물을 잔뜩 머금은 솜처럼 무거웠고 잠시라도 몸을 일으키면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눕는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잠이 든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시야에는 온통 어둡고 컴컴한 방 안이 보인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열두 시간 이상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도 피로감은 좀처럼 해소가 되질 않는다.
그렇게 하루가 다 지나갈 무렵, 그제야 마음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한다.
“내일은 꼭 할 일을 하자”라는 다짐으로 죄책감을 상쇄시켜본다.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다.
먹고 싶다는 욕구는 허기가 져서 먹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먹어도 먹어도 속이 텅 빈 것처럼 헛헛하고 공허하다.
그러다 보니 속이 더부룩해지는 것이 일상이다.
배는 채울 만큼 채워졌으니 몸은 당연히 무거워지고 무거워진 몸은 액체처럼 흘러내려 소파에 착 하고 달라붙어있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체중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고 외적으로 변해가는 형편없는 내 모습에 자괴감을 느낀다.
“다이트는 내일부터.”라는 지키지도 못 할 약속을 스스로와 맹세하고 만다.
이렇게 살찐 모습은 다시 자존감을 좀 먹고 낮아진 자존감은 또다시 먹는 것으로 채워버리니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가 없다.
‘쟤 요즘 왜 저러고 살아?’
‘아직도 그러고 있나?’
누구도 직접 대고 말한 적 없는데 나는 대체 누구의 마음의 소리를 들은 걸까?
스스로가 만들어 낸 ‘자격지심’이라는 소설 제목.
하락할 대로 하락한 자존감 탓에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내 상태를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한다.
‘내 상황이 이렇다. 이래서 힘들다.’라는 이야기조차 구구절절 꺼내고 싶지 않다.
아니, 사실 꺼낼 에너지도 없다.
그런데 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은 타인들이 나에게 관심을 끊는 것이 괜찮은 것은 또 아니다.
알아서들 알아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에 혼자서 상처 받고 혼자서 실망하고 북 치고 장구치고 꽹과리까지 치고 있다.
결국 이 무기력함의 증상은 인간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해 나가는 감정의 기능까지 상실해 버리게 만든다.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무려 서른 살의 투정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걸까?
순식간에 마음 깊숙이 잠식한 무기력증으로 인해 내 몸과 마음은 병이 들기 시작했다.
무기력함 보다 더 나를 괴롭혔던 건, 그 무기력함으로 인해 무능력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성취감이 있어야 보람을 느끼는 성격 탓에 나는 무슨 일을 하던지 빠른 시간에 성과를 내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인정 욕구가 상당히 강한 편이라 주어진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향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직장에서나 인정받고 성취욕까지 달성해 두 마리의 토끼를 쟁취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기력에게 잠식을 당하고 난 뒤부터 그 어떠한 성과도 빠르게 낼 수가 없었다.
성취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니 하루의 끝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분명히 열심히 해 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어떠한 수확도 거두지 못했기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느낌이 들고 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주변의 상황을 탓했다. ‘집중할 수 없는 분위기였어.’
혹은 ‘하루 안에 다 끝낼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 지속되기 시작하면서 결국 자기 비하로 넘어가고 말았다.
‘나는 게을러’, ‘나는 무능해’,‘나는 한심한 사람이야.’
차라리 속 편하게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이뤄나가자 라는 마음가짐만 있어도 견딜 수 있을 텐데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 마음은 끊임없이 무기력한 몸을 재촉하기만 한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해야 할 일은 내일로 미뤄지고 내일모레로 미뤄지고 코앞에 닥쳐서 급하게 해결하려다 보니 일의 완성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형편없는 마무리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일에 대한 만족감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의미도 사라져 가고 있었다.
무기력증에 걸려버린 나는 점점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무기력이라는 덫에 걸려버렸다.
무기력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제자리에 서서 갈 길을 잃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과거로 나를 소환하거나 이룰 수 없는 미래를 꿈만 꾸게 했다.
무기력증에 걸렸다고 해서 꿈을 이루고 싶은 욕망이나 희망까지 잃어버리는 건 아니었다.
무기력한 상태에서도 하고 싶은 무언가는 있었고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꿈으로 이루리라라는 희망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내일로 미룰 뿐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희망에 한 발자국 다가서기 위해서는 오늘도 꾸준히 나아가야만 하는데 도통 에너지를 쏟을 힘이 없으니 일단 꿈도 하루 정도는 미루고 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나보다 앞서 가던 사람들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가버렸고 나보다 뒤에 있던 사람들은 점차 나를 앞질러 나를 스쳐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덩그러니 혼자 멈춰 선나는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직면해버리고 말았다.
몸은 움직일 힘이 없는데 마음은 조급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마음은 불안하니 미칠 지경이다.
나는 왜 덫에 걸린 생쥐처럼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춰 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