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표름달 Nov 17. 2019

버릇처럼 찾아온 말, 아 무기력해

부족한 어른


어릴 적 내가 꿈꾸던 서른 살의 모양새는 완전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어른의 형태는 이랬다.


변변한 직업 하나는 가지고 있고, 진로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더 이상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의연한 모습.

가격에 상관없이 먹고 싶은 것 실컷 사 먹을 수 있고  

갖고 싶은 건 고민 없이 내 힘으로 다 가질 수 있는 상태.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서른의 모습은 말 그대로 고민 없는 진짜 어른이었다.

그런 내가 드디어 서른을 만났다.


그러나 나의 모습은 내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직업을 가졌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인간관계에 전전긍긍하며 골머리를 앓았다.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은 적어도 열 번 이상 고민하고 지갑을 열어야만 했다.

그렇게 난 지지리 궁상인 서른 살의 나를 만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부족한 어른.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한 어른.

그저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었던 서른 살.

나는 무기력증에 걸려버렸다.


문제를 몰라서 문제


소위 말하는 칠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을 포기한다는 의미)에 살고 있는 나는 온전하게 전부를 이루진 않았지만 적어도 포기를 하고 살고 있지는 않았다.

인생의 일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곱 가지씩이나 시작도 하기 전에 자포자기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특히 대입, 취업, 결혼은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서른 전에 이루고 싶어 하는 과제가 아닐까?


명문대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가르치는 달란트가 있다는 말에 사범대학교를 나왔고

부모님의 사업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나름의 유학생활도 할 수 있었다.

대기업 사옥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가르치는 일에 소소한 만족과 보람을 느끼며 일찍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십 대 청춘의 중반 즈음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자는 아니지만 마음에 꼭 맞는 좋은 배필을 만나 웨딩마치까지 올리며

서른 전, 나름 비교적 어려운 과제들을 일사천리 하게 이뤘다.

나는 평범한 그저 보통의 존재로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 한 크고 작은 일들로 상처 받고 힘들어한 적도 있었지만

인생을 송두리째 불행으로 질질 끌려갈만한 일은 아니었다.


죽을 만큼의 힘든 고민도 아니었고

생사가 걸린 문제도 아니었다.

때때로 남들보다 많은 것들을 이루고 해결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극심한 무기력증에 걸리고 말았다.


문제를 모르겠는데 정말 문제였다.  


조금 유별나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


어릴 적 나는 조금 유별난 아이 었다.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친구를 사귀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즉석으로 별명을 만들어준다거나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을 단체로 집으로 데려와 엄마를 당황스럽게도 했었다.

초등학교 내내 시골 동네에서 자랐는데 길에 죽어있는 온갖 생명체를 땅에 묻어 공동묘지를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애도하게 한 적도 있었다.

어릴 적에는 특히 가정형편이 녹록지 않았는데 10평 남짓되는 작은 집을 조금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우리 식구 겨우 들어갈 만한 그 작은 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를 데려와 북적거리게 했고 

형편없는 시험성적에도 그래도 내 뒤에 몇 명이나 더 있다며 도리어 큰소리를 치며 부모님 복장 터지게 만드는 딸이었다.


이런 나를 보며 우리 부모님은 항상 나를 ‘유별난 아이’라고 칭했다.

그 유별남은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했다.

여전히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의 역할을 도맡았고

여전히 살아있는 모든 생물체를 사랑하며 인생의 성적에 대한 비교의식 없이 나는 나대로 사는 성인이 되었다.


성격 형성의 중요한 시기가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의 경우 유아기에 인격형성이 시작되어 그 이후 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 유아기, 청소년기 때에도 성격에 큰 변화는 없었다.

엄마의 말을 빌리면 사춘기도 조용히 지나간 편이라고 했다.

반항심이라든지 고립적이라든지 눈에 보이는 큰 변화는 없었다.

우울, 부정적, 무기력함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으로 성인을 맞이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나는 조금은 유별나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쾌활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겨왔다.

희한하게 사춘기처럼 극심한 성장 통을 겪은 건 서른 그 무렵이었다.


성격의 변화가 생겼다.

심경의 변화도 생겼다.

그 무렵, 나는 내 형편에 대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내가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도무지 진짜 나를 찾을 길이 없을 만큼 내가 누군지 혼동이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부끄러움이라는 걸 느끼는 어른이 된 걸까?


버릇처럼 찾아온 말 “나 왜 이렇게 무기력하지?”


외향적인 성향을 가진 탓에 나는 누구에게나 에너지 넘치는 이미지로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독서와 같이 고상한 취미보다는

여행, 사진 찍기 등 활동적인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보다는 여럿이 함께하는 시간을 훨씬 좋아하는 편이며

여유로움보다는 다소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에 활기를 느끼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내 입에서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이 생겼다. 

“나, 왜 이렇게 무기력하지?”

처음에는 단순히 조금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내 상태를 간과한 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느 순간 당황스러울 만큼 내 안의 활기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몸은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지기 시작하고 욕구의 기능이 점차 상실되어갔다.

“혹시, 나 우울증인가…?”

그제야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울증의 초기 증상 정도가 아닐까?라는 노파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우울증이라고 하기에는 감정은 생각보다 차분했고 통제가 불능한 지경은 아니었다.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별안간 잃어버린 느낌이 강하게 찾아왔다가도 적절한 의미부여로

억지로라도 버텨나 갈 수 있었다.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간혹 들었지만 그런 극단적인 생각이 찾아올 때면 이성은 제 기능을 톡톡히 발휘해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을 잘 떨쳐 내주었다.

혹시 ‘누적된 피로가 원인이 아닐까?’라고 스스로 자가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긴 뒤 나를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그렇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내 의식과 생활패턴에 심각한 변화가 찾아왔다.

활동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여럿이 보내는 시간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바쁜 시간을 보낼 여력이 사라져 버렸다.

“나, 왜 이렇게 무기력하지…?”

그렇게 나의 활기는 무기력이라는 막대한 블랙홀 안에 힘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