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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름달 Nov 17. 2019

서른 살이 되었다

쉿! 서른의 꿈


서른 살, 꿈이 생겼다.

하지만 서른이 가진 꿈의 무게는 좀처럼 가볍지 않았다.

수많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내가 가진 꿈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좀처럼 당당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정말 가까운 지인들에게 비밀 얘기하듯 조심스럽게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서른의 꿈은 그랬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라는 결연한 다짐과 함께 직장을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퇴사라는 결심이 가지고 올 후폭풍에 대해서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프리랜서로 연명하며 ‘작가’라는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렸다.

그 희망이 이토록 나를 괴롭게 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서른, 꿈을 꿔도 될까요?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라는 희망찬 말은 왜 이토록 이루기 힘든 것일까?

사람마다의 행복의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추구하며 살아왔다.

장래희망도 상당히 다양했다.

이십 대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다양한 분야에 과감하게 도전하며 살았다.

하지만 항상 넘지 못하는 딱 한 계단 앞에서 꿈은 좌절되어왔었다.

의지박약이었던 것인지 그 의지를 뛰어넘을 만큼 간절하지 않았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십 대에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에 대해서 조금의 후회도 없는 걸 보아하니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던 것일 확률이 더 높을 수 도 있다.


이십 대의 실패와 좌절은 당연한 것이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삼십 대에 시행착오와 실수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강하다 보니 서른에 가진 꿈에 대한 책임감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서른의 꿈은 무모하지 않으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했다. 

서른에 찾아온 작가라는 꿈은 한 발 내딛기 전부터 많은 걸 주저하게 했다.


조금만 더 일찍 찾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5년만 아니, 3년만, 아니 1년 만이라도.

강력하게 찾아온 간절한 꿈 앞에서 스스로에게 몇 번을 물었는지 모른다.


서른 살, 꿈을 꿔도 될까?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해도 되는 나이 일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만일 실패할 경우 돌아갈 자리가 있을까?

내 나이답지 않는 이상적은 꿈은 언제나 스스로를 초라하고 작아지게만 만들었다.

그 누구도 그런 꿈을 갖은 나를 한심하다고 질책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친구들은 어느덧  점차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거나,


싫든 좋든 적어도 자신의 삶은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 달리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몫은 해내는 어른 같았다.

서른 살에 가진 간절한 꿈은 좀처럼 당당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감추고만 싶고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체해야 했다.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에 “저는 작가 지망생이에요.”라는 말 대신 

언제나 나는 “저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대답을 했다. 

글을 쓰는 일에는 수입이 일전 한 푼 없었지만 프리랜서로 종사하는 일은 수입을 가져다주니 뭐가 정이고, 부냐 라고 따진다면 사실상 틀린 말은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서른에 작가 지망생?’이라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꿈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을 수 없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큰 성과를 내게 되면 힘들었던 과정들을 당당하게 이야기해야지.

그때는 좀 어른 같아 보이겠지?라고 생각하며

결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꿈을 이뤄내야 한다는 책임감은 부담감이 되었고

기대감은 어느새 두려움으로 간절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꿈은 어느새 조급함으로 변해있었다.

혹시라도 이 꿈을 포기하고 돌아갔을 때, 나를 맞이해 줄 그 무엇도 없으면 어떡하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능한 서른하나, 혹은 서른둘을 맞이하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 더 노력하려 애썼다.

하지만 시간은 조금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은 채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이뤄내질 못했는데…


하루에도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고 독려하면서도

꿈을 가진 사람은 결코 초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다독이면서도

여전히 확신이 없는 불안한 나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서른 살, 꿈을 꿔도 될까?


서른답게 사는 게 뭔데


나이가 들수록 겉과 속을 동시에 가꿔야 하기에 분주하다.

겉모습은 서른처럼 보이지 말았으면 좋겠고

내면은 서른의 나이답게 성숙했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세월은 붙잡을 수 없기에 점점 외모는 나이다워지는 것 같은데

내면은 나이다워 지기는커녕 유치하기 짝이 없다.

반면 어른답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만 커진다.


여전히 관대하지 못하고 

작은 것에도 상처 받고

사소한 것에 연연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결론은 아직도 어른이 되기는 글렀구나 라는 생각에 괜히 무력해진다.


서른씩이나 됐으면 모든 걸 통달한 듯 어른의 모습을 갖춰야만 할까?


"나 다운 게 뭔데?"라는 드라마 속 명대사처럼

"서른 다운 게 뭔데?"라고 간절히 묻고 싶다.


나에게 서른이란, 숫자와 상관없는 그냥 나 자체인데

세상에서 말하는 서른이 갖춰야 할 것은 백만 가지, 천만 가지, 만만 가지…  


못난 서른


결혼을 하고 약 6년 동안 신랑과 나는 18평 남짓 되는 작은 투룸 빌라에 살았다.

결혼은 멋모를 때 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정말 결혼에 대한 환상만 잔뜩 가지고 일찍 가정을 꾸렸다.


서른 전에는 아이도 둘은 낳고

대학원에 진학을 해서 공부도 좀 더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보람되게 살아야지 라는 비현실적인 이상에만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신랑 혼자만의 월급으로는 택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 둘은커녕 하나도 제대로 건사할 형편이 아니었다.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아버님의 불찰로 급격하게 가정이 기울어 버렸다.


그러는 동안 주변 친구들은 적절한 시기에 하나, 둘 씩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집을 매매로 입주하는 친구도 있었고

분양받아 입주한 집이 몇 배가 뛴 친구도 있었고

시댁에서 전셋집을 마련해주어 30평이 훌쩍 넘는 곳에서 첫출발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6년 동안 대체 나는 뭘 한 거지?라는 생각에 18평의 남루한 빌라가 그렇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빌라 1층에는 중국집이 세 들어와 있었는데 모두들 우리 집을 부를 때 그 중국집 상호로 칭했다.


스물다섯 살. 내가 결혼을 할 무렵

내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졸업반이거나 취업에 전전긍긍하는 취준생이었다.

그동안 비교대상이 없었을 때에는 18평 남루한 투룸 빌라에도 아무렇지 않았던 내가

비교대상이 생기면서부터 열등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른 살이 되면 더 이상 성적과 등수의 경쟁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의 네임벨류로 취급당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더 이상의 경쟁의식도 열등의식도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서른의 경쟁은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집 평수, 자동차 브랜드, 회사의 평판, 직함, 연봉, 결혼의 여부, 남편의 직업 등등.

나 자신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나 이룬 것으로 평가를 받게 되어 버린다.


‘잘 산다’의 기준이 전부 재력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딱 그런 시기 30대.

노력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것들 투성이.

세상이 만들어 낸 서른이 갖춰야 할 기준 때문에 2030 세대에서는 칠포 세대라는 단어가 등장을 해 버린 건 아닐까?

이런 상황들이 나 다운 삶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비교와 열등의식 속에 못난 서른 살을 만들어 버리진 않았을까.


나의 가치는 내가 소유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지로 판단해야 하는 것인데 말인데

그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아, 서른 되기 싫다.


서른이 되기도 전부터 내가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말은

“아, 서른 되기 싫다.”였다.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아서 나오는 말이 아닌 건 분명했다.

서른을 코앞에 두고 어떤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내용은 즉슨 이랬다.


삼십 대 여자 세 명이 미팅카페에 간다.

자신의 신상정보를 적은 뒤 선호하는 남성상에 대해 간단한 설문 조사지를 작성한다.

그러고 나서 자리에 앉아 자신이 설문지에 적은 적합한 남성이 다가오길 기다린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어떠한 남자도 오지 않는다.

기다리다 못한 세 여자는 직원에게 한참을 기다렸는데 왜 아무도 오지 않냐고 묻는다.

직원은 난처해하며 이렇게 대답한다.

“아, 죄송합니다. 남성분들이 선호하는 나이가 아무래도 대부분 20대라….”

내가 직접 겪은 일도 아닌데 그 직원의 대답이 왜 이리 뼈저리게 아프던지.

사회에서 생각하는 30대 여성의 이미지가 이러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은 그토록 청초해 보였는데,

어느 순간 아이라이너의 굵기와 길이는 자존감이 되어버리고

미용실에 가면 요즘 트렌드에 맞춘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더라면

이제는 최대한 어려 보이는 스타일을 선호하게 되고

취향에 맞는 옷을 과감하게 골랐더라면

이제는 이런 옷을 입으면 주책인가? 싶기도 하게 되고

“신분증 한 번만 확인할게요.”라는 말은 자랑이 되어버리고

최근들은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 “대학생인 줄 알았어요.”


서른이 되고부터는 나답게 사는 법을 조금씩 잊어버리게 된다.

보이는 게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20대는 삶 전체의 주인공 같은 삶이었다면 30대는 왠지 조연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든다.

더 이상 청춘도 아니고  싱그러움도 나를 비추던 스포트라이트도 전부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다.

서른은 왠지 나이 값 하고 살아야 할 것만 같고

30이라는 숫자에 점점 나를 가둬버리고 만다.


지금 서른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위로는

“나이 따위 신경 쓰지 말고 너답게 살아라!” 가 아닐까?


지금은 늦었어요


서비스직으로 근무할 당시 나보다 한참 어린 직장 선배가 나에게 물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시간을 앞당기시겠어요? 아니면 돌아가시겠어요?”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가겠다고 답했다.


한 살이라도 젊어져서 하고 싶은 것 후회 없이 하겠다고 답했다.

선배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지금 선배의 나이인 스물다섯 살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

딱 다섯 살만 젊어지면 왠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배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자신도 조금 더 어릴 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중학생 즈음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뭐든 도전할 수 있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지금 나에겐 스물다섯이면 세상도 바꿀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선배는 지금 자신의 나이가 무엇을 도전하기에도 애매한 나이라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었다. 

매 순간 돌아가고 싶었다.

열일곱 살 때도, 스무 살 때도, 스물다섯 살 때도, 서른인 지금도 항상 더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매 순간 나는 내가 늦었다고 생각했고 늦었다고 생각한 내 모습에 항상 무기력했다.


스물다섯 살의 선배에게 “지금 아직 늦지 않았어요! 도전해요 제발”이라고 백 번 천 번 외쳐도

선배는 분명 자신이 늦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도 누군가가 돌아오고 싶어 하는 나이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살은 왠지 안정적이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서른 살에 장래희망이 있다는 부끄러운 사실이

도리어 나를 계속해서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누군가는 “내가 서른 살만 됐어도.”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을까.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는 말버릇처럼 이야기한다.


"네 나이만 됐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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