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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름달 Nov 17. 2019

나는 무기력증에 걸렸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


나는 무슨 일에 도전할 때 특히나 맹목적인 낙관주의에 빠질 때가 많다.

대부분의 무기력함은 내가 원하는 걸 이루지 못했을 때 혹은 내가 원하는 걸 손에 얻어내지 못했을 때 찾아왔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큰 노력 없이 원하는 것을 재빨리 얻어내 왔다.

그렇기에 그동안 인생을 조금은 호락호락하게 여겨왔다.

내가 바라기만 하면 알아서 길이 척척하고 열릴 것이라는 헛된 희망에 가득 찬 채 살아왔다.

물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들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긍정적인 생각에 조금의 의심도 보태지 않는 것이 문제다.

무조건적으로 잘 될 것이라는 맹목적 낙관주의 말이다.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걸 꽤나 오랜 시간 이뤄내지 못했던 것이 바로 서른에 생긴 꿈이었다.

결연한 다짐으로 꿈에 대해 도전했다. 

시작함과 동시에 이미 머릿속에서는 거창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단 시간에 이뤄낼 수 있는 꿈이라고 단단히 착각한 것이다.

도전하는 매 순간 긍정적인 생각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늘 낙방이었다.


예상과 달리 내 바람은 빠른 시간 내에 실현되지 않았다. 

지나친 낙관주의는 낙방의 쓴 고배를 마실 때마다 부침개 뒤집어지듯 큰 낙담에 빠지고 말았다.

도전할 때 나왔던 긍정 에너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극단의 끝을 달리는 것이다.

그 좌절감은 꽤나 긴 시간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며 스스로를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해 버리고 만다.


개구리 왕눈이 노래 가사처럼 일곱 번 넘어져도 울지 말고 일어나야 하는데

꽤나 긴 시간 침체기 속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앓고 또 앓는다.


나의 낙담은 단순히 작가가 되지 못했다는 실망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꽤나 오래 머물러야 할 이 한심한 시기와 과정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사람들 앞에서 떳떳한 사람이 되지 못하겠구나.라는 상실감이 일 순위였다.


부끄러운 딸 

무능한 아내 

한심한 친구라는 꼬리표를 스스로가 만들어 놓고 괴로움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잘 될 거라는 확신, 지나친 긍정 에너지에 대한 배신감의 결과는 언제나 무기력함이었다.


설마 나, 인정에 목마른 거야?


나는 나, 너는 너

남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철저히 잘 분리하며 살아온 내가 주변을 의식하기 시작했던 건 서른이 될 무렵쯤이다.


나는 요즘 보기 드문 사형제 중 장녀이다.

어릴 시절을 되돌아보면 부모님은 우리 사 남매에게 성적이나 공부를 지나치게 강요한 적은 없었다.

잘하는 부분에 있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인정을 아끼지 않았다.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전폭 지지해주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함께 찾아주는 부모님이셨다.

그런 가정환경 탓에 나는 비좁은 집도, 바닥을 치는 성적에 대해서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다.

인정 욕구에 미치도록 목말랐던 적도 없었다.

지금의 나와는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나는 장녀이기 때문에 사형제 중에서도 늘 선두주자였다.

평범하게 대학에 입학해 졸업을 했고 

사람들이 들어서 알만한 회사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만족하며 사회생활을 했다.

내가 사회초년생일 당시 동생들은 대학입시에 전전긍긍하는 학생이었고

내가 결혼을 할 무렵 갓 대학에 입학해 취업 준비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였다.


서른이 될 무렵, 동생들은 취업을 했고 나는 퇴사를 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로 다짐했던 시기였다.

둘째 동생은 이름만 말해도 바로 알 수 있는 대기업 정사원으로 입사를 했고

셋째 동생은 유명 방송국에 취업을 했다.

그때부터 아빠의 어깨가 으쓱해지기 시작했다.

동생들의 자랑을 일삼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일화가 있다.

나에 대한 아빠의 자랑이었다.

아빠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닌, 나를 대신해 나의 남편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인생 처음으로 '작가 지망생'이라는 꿈이 부끄러웠다.

그 뒤로 나는  ‘작가 지망생’이라는 다섯 글자를 꽁꽁 숨긴 채 아빠 지인 분들에게 프리랜서라고 나를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집으로 돌아와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스펙을 쌓아야 할까?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두가 부러워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 할까?

설마, 지금 나 인정에 목마른 거야?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던데 꿈이 있는 사람은 빛이 난다던데

나는 왜 이토록 하고 싶은 것으로부터 당당하지 못 한 거지?

내가 작가로서 인정받는 날이 온다면 내 꿈은 보다 떳떳해질 수 있을까?

그렇게 내 꿈은 지금까지도 비밀이 되었다고 한다.


자존감의 훼손


어느 날, 오래간만에 지인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나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무리 속에 한 지인은 우리보다 훨씬 더 풍족하고 풍요로움 속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구입한 명품 가방과 지갑 등 좋은 물건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며 말했던 금액은 나의 한 달 생활비 었다.

다른 지인들은 각자 다르게 반응을 했다.

누군가는 부러움의 눈빛으로 그녀를 동경을 했고,

누군가는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형편을 한탄했다.

나는 겉으로는 큰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은 묘한 요동 이쳤다. 

내심 그녀가 부러우면서도 시기도 났다.

단순히 그녀가 값비싼 명품을 소유하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명품 가방에 열광하거나 소유욕이 있는 편이 아니다.

만약에 그녀가 명품 가방을 살 금전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분명히 나는 곳으로 나의 욕구를 충족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왜 관심에도 없는 명품 때문에 마음의 미묘한 요동이 있었을까?

그건 그녀가 가진 것에 맞설 무기가 내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나의 삶을 비교하며 찾아온 열등감이 나의 무력함과 마주하고만 것이다.

그런 비교의식에서 나의 자존감은 상당히 훼손당하고 말았다.

내 생각이 조금만 건강했었더라면, 그녀와 나의 삶이 다른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와 나의 추구하는 욕구마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 느낀 무력함은 꽤나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나는 왜 더 내세울 게 없을까?

나는 왜 가진 게 없을까?

나이 서른에 왜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살고 있을까?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그렇게 한심하게 여기며 자책을 했다.


내가 그녀만큼 풍족한 삶을 살았더라면 조금은 달랐을까?

만약 그 명품 가방과 맞설 더 과시할 만한 무기가 있었더라면 나는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없는 무언가를 내세우며 그녀에게 부러움을 샀더라면 괜찮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나의 자존감 훼손을 방지시킬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분명 나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의 자존감을 훼손시킬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시와 인정 욕구도 사람을 참 못나게 만들지만

열등감 때문에 자신의 자존감에 스크래처를 내는 것만큼 못난 것이 없다.

어쩌면 나에게 그 순간 가장 필요했던 건 명품 가방에 맞설 더 대단한 무기가 아니라

진심을 다해 그녀가 가진 것에 대해 부러움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니었을까?

그랬더라면 적어도 자존감 훼손을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너는 노력하지 않았잖아?


꽤나 가까운 지인은 노력형 인간이다.

서른 중반쯤 늦은 나이에 소설 작가의 꿈을 이뤘고, 

지금도 드라마 작가라는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본인도 꽤나 게으른 편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자기 관리를 상당히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랜서이자 전업 작가로 전향한 그는 자신이 일에 할애하기로 한 시간은 되도록 지키기 위해 열심을 다한다.

그렇게 꾸준하게 쌓인 노력과 시간은 역시 그를 배반하지 않았다.

점점 좋은 결과로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그는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갔다.

한결 같이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를 보며 나는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끈기도 의지도 부족한 나의 일상은 마치 준비 운동도 하지 않은 채 장거리 마라톤을 전력 질주하는 꼴이다.

힘찬 포부로 세차게 달리기 시작했지만 중간 지점부터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이내 주저앉아 호흡이 진정될 때까지 휴식을 취하기까지 한다.

지인은 세 달이면 만들어 내는 걸 나는 꼬박 반년에서 일 년이 걸린다.


그렇게 꾸역꾸역 완주한 나의 결과는 늘 낙방, 실패로 돌아왔다.

그에게 허구한 날 신세한탄을 늘어놨다.

내 나름에는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을 들인 것 같은데 

죽을힘을 다해 달리지는 못했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의 호흡을 유지하며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친절하게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의 위로는 충격 그 자체였다.


“네가 요즘 잠깐 노력하긴 했지만 꾸준히 노력하진 않았잖아?”


그의 말에 나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요즘 노력했던 것처럼만 한다면 앞으로는 잘 될 거라는 그런 의미에서 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위로에 나는 상당히 무력감을 느꼈다.


“뭐야? 내가 노력했는지 안 했는지 왜 자기가 판단해?”라는 생각에 순간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도 했고 너무 힘겹고 지쳐서 잠시 쉬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노력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그의 열심에 비해 나의 열심은 턱없이 부족했던 결과라고 생각하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빠른 시간성과를 내는 게 가장 좋겠지만 내 호흡은 일정한 속도로 장거리를 완주하기에는 상당히 역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도통 나는 속도를 내지 못하는 거지?

단지 완주가 목표였던 내 노력이 게을렀던 탓일까?

노력에도 기준치가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무기력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 뒤에도 꾸준히 노력한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무너져 내린 나의 마음속에는 나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는 보이지 않은 채 지적하는 말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나의 부족한 노력보다 그것을 마주하게 한 그에 대한 서운함이 더 컸던 것이다.

열등감이 주된 원인인 무기력함은 그렇게 나를 더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

힘내서 일으킬 긍정 에너지를 송두리째 빼앗아 가 버린다.


내가 정말 노력했다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떳떳해도 됐을 텐데.


미래형 허세


지금 내가 당장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 열등의식 탓에 나는 미래의 가장된 나를 계속해서 소환해 왔다.

입이 마르고 닳도록 내가 달고 살던 말은 ‘내가 잘 되면’ 혹은 ‘신랑 하는 일이 대박 나면 이었다.


부모님께는 자랑할 만한 딸이 되고 싶었고

동생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언니가 되고 싶었고

남편에게는 대단한 아내가 되고 싶었고

친구들에게는 부러워할 만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막연하게 미래에 대해 큰소리치며 살았던 건 아니었다.


소위 요즘 말로 ‘존버’만 한다면 신랑의 사업도 내가 꿈꾸는 일들도

대박까진 아니더라도 소박하게 실현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문제는 그 ‘존버’ 할 에너지가 내 안에서 소멸된 지 오래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지만 마음만 미래에 있을 뿐 현실은 오늘의 할 일을 열심히 내일로 미룰 뿐이었다.

노력이 힘들다는 이유로 무기력을 앞세워 버리면서.

나의 과거는 미화되고

미래는 부풀려지고 

그 반면 현재는 초라함 그 자체였다.


미래에 대한 환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환상 속에 미래의 나는 굉장히 대단하고 멋있는 사람이었지만

현실의 나는 무능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 일 뿐이었다.

미래와 현실의 괴리감은 상당히 컸다.

하루, 일주일 , 한 달, 일 년이 지나도록 미래의 나와 현실의 나의 거리는 당연히 좁혀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무능하고 한심한 현실의 나 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당당하게 만나는 사람마다 

미래의 나에 대해서만 소개했다.

내가 부릴 수 있는 허세라고는 미래의 나뿐이었다.


너, 아직도 소설 쓰니?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 비밀이었다.

서른에 작가가 꿈이라니 이렇다 할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않는 이상은

끝까지 숨겨야 할 사실이었다.

정말 가까운 주변 지인들 직계가족만 알 만큼의 국보급 비밀이었다.


어느 날,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만큼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단란한 이야깃거리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때,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듯 한 질문 하나를 받았다.


“너 아직도 소설 쓰니?”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누구지? 누가 말했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면서

대상모를 일름보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그 질문에 모두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이 되었다.

내 기억 속에 그때 그 분위기는 굉장히 싸늘한 했다. 

그렇게 착각할 수 있을 만큼 나는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부끄러웠다.


모두의 시선이 마치 ‘이미 다 알고 있었어.’를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근데 그 나이에 소설이라니, 정말 소설을 쓰고 있네’이라는 눈빛으로 해석했다.

당장 뛰쳐나오고 싶었다.


그때 왜 나는 당당하게 “네. 저 소설 쓰고 있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한 채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뜸을 들여야만 했을까?

결국 나는 그렇다 아니다 라는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 한 채 얼버무릴 뿐이었다.

그 이후에도 그 순간의 잔상이 상당히 오래갔다.


별 것 아닌 일 같아 보일지 몰라도 꽤나 큰 상처였던 것 같다.

그 사람의 말투가 문제였을까?

누가 말했어도 나는 부끄러웠을까?

만약에 나랑 단 둘이 있는 시간에 조심스럽게 그 질문을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는 명쾌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

그 일이 지금처럼 상처가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다시 그 일에 대해 회상을 해 보았다.

다시 떠올렸을 때 메아리처럼 퍼지던 그 질문과 동시에

나를 바라보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표정이 떠올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놓고 나를 무시하거나 한심하다고 이야기를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이 지었던 난처한 표정은 난처해하는 내가 안쓰러워서 지었던 표정이었을 수도 있다.

단지 나는 그 순간 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떳떳하지 못했을까?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 사람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응원에는 큰 고마움이나 관심이 없었고

도리어 가깝지 않은 사람들의 평가에 심하게 매몰되어 있었다.

나는 나 스스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목표였고 목적이었다.


다른 사람의 반응과 시선에서 의연해질 수 있다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이 무력감에서 조금은 벗어 날 수 있을까?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


나는 집사다.

우리 집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24시간 중 하루 평균 16시간 정도를 수면에 사용한다고 한다.

고양이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나 수면을 취할 때의 모습을 보면

몸이 마치 바닥과 혼혈 일체가 된 듯 카펫처럼 펑퍼짐해진다.

그 모습은 꼭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감에 빠져있을 때와 비슷하다.

톡톡 건드려도 귀찮은지 눈만 끔뻑일 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그 모습이 내 모습 같아 알 수 없는 고양이의 마음을 가끔을 알 것도 같았다.


예전에 한 포털사이트에서 ‘고양이 주인 말 다 알아들어 단지 무시할 뿐’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사처럼 고양이는 훈련을 통해 습득하는 동물이 아닌 관찰을 통해 습득하는 특징이 있다. 

더우면 선풍기를 직접 조작할 수 있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을 정도라고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다.

상당히 영민하고 똑똑한 동물이다.


기사처럼 정말 고양이는 훈련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의사표현이 정말 확실하기 때문이다.

백날 훈련시켜도 하기 싫은 건 곧 죽어도 하지 않는 것이지 못 하는 게 아니다.

좋음, 싫음, 분노, 피곤함, 배고픔. 귀찮음이 표정과 행동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주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사랑을 심하게 갈구하지도 않고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심기를 건드리면 심하게 화를 내기도 하고

귀찮게 하면 상대도 안 해버린다.

마구 혼을 내도 “너는 짖어라 나는 내 할 일 할런다.” 식이다.


타인의 시선에 심하게 민감하고 눈치를 보고 심기를 건드려도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웃어넘기고

귀찮음에도 거절하지 못하고 싫은 소리 한마디에 하루 종일을 의기소침해 있는 나로선

고양이의 약간의 이기적인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저렇게 감정대로 살아가도 실컷 사랑받고 살 수 있다니 말이다.

똑같이 무력감에 퍼져있어도 그들과 나의 마음가짐은 많이 다르겠지.


두 마리의 고양이와 같이 펑퍼짐하게 퍼져 있다가 눈이 마주쳤다.


“나도 너희처럼 마이웨이로 살아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  


명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확실히 씀씀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 만 원짜리 티셔츠를 사면서도 살까 말까 고민했더라면

월급쟁이가 된 후로는 십만 원짜리가 그때 만원의 값어치를 하게 돼버린다.

각 사람에게 백만 원을 똑같이 나누어 준다면 사람마다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분명히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백만 원을 투자할 것이다.

서른이 된 후, 친구들을 만나면 주된 대화가 명품으로 이루어지는 걸 보며

서른의 씀씀이가 이렇게나 커졌구나를 실감한다.


사실 나는 명품에 큰 관심은 없다.

명품의 종류도 잘 모를뿐더러 요즘 유행하는 신상 명품이 뭔지도 잘 모른다.

그렇기에 그 대화가 시작되면 나는 굉장히 의기소침해진다.

한 번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유난히 명품에 대한 대화가 길어졌다.

한 친구는 고가의 가방을 구입했다고 했고 한 친구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미 고가의 가방을 남자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음에도 결혼식장에 매고 갈 어울리는 가방이 갖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의 입에서는 브랜드 이름이 오고 갔고 사진도 공유했지만

나는 그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사실 명품 백, 명품 지갑에 큰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앉아있는 내가 어찌나 초라해 보이던지

당장 "집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볼게"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마치 관심 없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왠지 나도 결혼식장에 매고 갈 화려한 백 하나는 있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치관에 혼란이 오는 것 같았다.

괜히 내가 가지고 있는 지갑이 부끄러워지고 꽁꽁 감추고 꺼내고 싶지 않아 졌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사실 제대로 된 명품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 때문에 상당히 긴 시간 마음 한 편이 찝찝했다.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라보며 나를 값어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할까?

서른 먹도록 명품 백 하나 없는 초라한 사람으로 여기려나?

순간적으로 관심에도 없는 명품 백을 하나 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날의 기분은 굉장히 무기력했다.


그날 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친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에겐 없지만 나에게 있는 것들을 나열해주었다.

그녀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과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단지 다름을 알려주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명품 백은 없지만 명품 백 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물건들이 집 안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에 우리에게 똑같은 백만 원이 주어진다고 한다면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분명히 투자하는 것도 다를 것이다.

설득력 있는 그녀의 말에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나에게 그녀의 명품 백 만큼이나 가치 있는 물건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내가 초라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가치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갖지 못한 것에 심하게 매몰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를 행복 한 척하게 하는 것


나는 행복한 것과 행복해 보이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가진 게 많을수록 

친구가 많을수록 

여행을 많이 다닐수록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가진 게 없을수록 과시하게 되고

관계가 불안정할수록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 마냥 의식하게 되고

여행을 다녀오면 꼭 인증샷을 올려야 하고, 눈으로 보는 것보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나는 행복해 보이려고 애를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행복하지 않았다.

초라해 보이는 내 모습에 당할 평가가 항상 신경이 쓰였다.

과시 속에 꾸며진 나의 모습과 현실의 나는 괴리감이 상당했다.

행복한 척은 내가 꿈꾸는 행복한 모습이었지 진짜 행복은 아니었다.

나는 아마, 나다운 모습에 스스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고 또한 나다운 모습을 사랑해 줄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나 자신과 타인을 불신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가짜 행복에 속아 행복한 척 자신을 더 우울하게 했고 사소 한 것에 감사하는 방법을 잃어버려갔다.

내 기준에서의 행복은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을 손에 쥐고 얻었다고 자부하지 않았다.

그저, 사소하지만 작은 것들을 행복이라고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나를 행복한 척하게 하는 것.

그것은 다시 해석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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