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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름달 Nov 17. 2019

혼자 잘해주고 상처 받기

호구의 대명사는 나야 나.


인정 욕구에 대한 부작용은 언제나 가혹하다.

나의 경우 인정받기 위해 호구가 되길 택해버렸다.

한 번 호구가 되니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칭해준다.

마약과도 같은 그 쾌감에 나는 무리를 하기 시작했다.

형편이 어려워진 친구에게 빚을 져서 돈을 빌려주는가 하면,

모임 장소에서 여기저기 서슴없이 계산을 하거나

위로가 필요한 친구에게는 하던 일 다 내팽개치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내 물질과 시간, 나에게 주어진 범위를 자꾸만 남에게 내어주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감당해야 할 사람은 바로 본인이었다.


다음 달 카드 값에 손을 떨어야 하고

정작 해야 할 일은 미뤄지고 미뤄져 손을 놓아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깟 좋은 사람이 뭐라고

남한테 실컷 좋은 사람이 되고

나는 기껏 호구가 되어버린 것.

고마운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의 계속되는 호의는 타인들에게 당연시되기 시작했고

나는 그들에게 서운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마치 중독이라도 된 듯 끊어내지 못했던 건 내

가 호의를 중단했을 때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또한 끝나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워서였다.

타인이 여기는 당연함에 나는 상처 받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나는

그렇게 호구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


내가 가장 얽매이는 부분이기도 하면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인간관계이다.


스무 살 초 중반에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상당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쏟았었다.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나는 그 사람에게는 꼭 좋은 사람이어야 마음이 편했다.

돈독하던 그렇지 않던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일생일대에 가장 힘든 일이었다.


결혼 후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축소되면서 

의미 있고 중요한 사람들만 내 주변에 남게 되었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고민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때 보다 더 깊어졌다.

이미 축소된 이 관계들이 끝나게 되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작 남은 몇 사람들은 나에게 더 이상 영양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꽤나 중요한 사람들로만 축소된 관계였기에 더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매 순간 나에게 주어진 관계에 최선을 다했다.

아니, 필요 이상으로 대했다.

선물 공세를 한다거나 필요 이상의 시간을 내어준다거나 마음을 살 수 있는 일이라면

물 불 가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 것을 점점 내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독 내가 공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주었던 친구가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다닌 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그 순간 찾아온 무기력감은 말로 형용할 수 가없다. 

나는 내가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싫다니.

이유는 더 황당하고 용납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시기와 질투가 시발점이었다.

자연스럽게 얽히고설킨 관계 안에서 내가 그 친구의 주변인들에게 너무 잘했던 게 문제였다.

상상 이상으로 나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이 오해였고, 억울했다.

당장 가서 전부 오해라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아야만 했다.

이야기를 전한 친구의 입장도 그렇고 섣불리 이야기를 꺼냈다가

돌이킬 수 없이 사이가 더 악화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순간 속상한 마음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더 잘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풀기로 했다.

나는 도리어 스스로 나의 단점을 콕콕 집어가며

나의 이런 모습이 혹시라도 너의 마음을 어렵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했다.

물질적으로 시간적으로 감정적으로 더 많이 내어주기 시작했다.

내 감정이 채 해소되기 전에 나는 나를 있는 대로 없는 대로 긁어내며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겉으로는 나아진 것 같아 보였으나

나에 대한 험담은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그 친구에게 쩔쩔매는 게 이제는 당연시되어버리게 되었다.

그 친구는 결국 앞에서 좋은 척하며 싫은 속내를 감추지 못했고

나는 그 좋은 척 앞에 한없이 속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놓았어야 할 관계를 놓지 못한 채

이 무기력한 관계를 지속해 나갔다.

내가 놓는 순간 나는 영원히 그 친구에게 미움받게 될 게 두려워서.


나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는 관계는 진정한 친구가 아닌데,

내가 애쓰지 않아도 내 모습 그대로를 좋아해 주는 사람은 한 명쯤은 분명히 있는데,

굳이 내가 싫다는 사람을 끊임없이 내 감정을 학대해가며 놓지 못했던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


불필요한 호의


어느 날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내게 신랑이 말했다.

불필요한 호의를 베푸는 건 호의가 아니라 호구라고 했다.

평소에 주변의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 발 벗고 나서는 편인데

신랑은 항상 이해하면서도 나를 걱정했다.

그게 못내 못마땅했던 것일까? 

긴 한숨을 내쉬던 신랑은 혹여 라도 나에게 상처가 될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 지인 중에 여러모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무척이나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그 물건은 다소 고가의 물건이었다.

나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도전하려면 그 물건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그녀에게 힘이 되고 싶었던 나는 다소 무리가 되는 선이었지만 카드 할부를 긁어 그녀에게 그 물건을 선물을 해 주었다.

굉장히 뿌듯했다.

바라는 건 단지 그녀가 이번 기회에 하고 싶은 일을 꼭 찾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서 그녀는 오래 다닌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고

퇴직금으로 고가의 가방을 구입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래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아. 너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며 그녀를 격려해주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신랑의 눈에 나는 안쓰러움 그 자체였던 것이었다.

물론 네가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고 선물을 해 준 것이겠지만

어렵다, 힘들다는 그녀를 도운 것이 아니었냐.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쾅하고 맞은 듯 멍해졌다.

신랑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물론 그녀의 평소 성품을 봤을 땐, 나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는 걸 모르고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관계는 어쩌면 아무것도 서로 주고받는 것이 없을 때 유지될 수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생사가 달린 상황이 아니고서야

사소한 도움 없이도 자기 몫을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조건 없는 베풂과 나눔이라고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 조건을 따지고 기대하게 되고

그렇기에 상처를 받게 된다.

불필요한 호의는 결국 자기 자신을 상처 받게 하게 것이다.


‘호의(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

‘혼자 잘해주고 상처 받지 마라.’라는 명대사들이 쏟아지는 걸 보면

역시나 상처 받는 건 언제나 잘하는 사람 쪽이다.

다른 사람의 힘든 상황과 아픔을 대가 없이 도울 수 있을지라도

내가 베푸는 불필요한 호의가 나에게 상처로 돌아온다면 

그만 멈추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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