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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름달 Nov 17. 2019

나는 나에게만 불친절한 사람

자신과 소통이 단절된 사람


나는 유독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한 사람 중 하나이다.

내 잘못에 대해서 지독하게 다그치는 편이고

'다 나 때문이야.'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못나서 그래'를 외치고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복잡한 감정들은 제 아무리 다그친다 한 들 말을 듣질 않는다.

마음을 아무리 설득해 보려고 해도 설득이 되지 않을 때가 다반사다.

어느덧 마음은 제 기능을 잃고 도통 움직이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뻥 뚫린 듯 공허해진 마음은 다그침에도 내성이 생겼는지 지독한 다그침에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타인의 아픈 마음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줄 줄 알고 사무치게 공감해 줄 줄도 알면서

내 내면에는 귀를 기울여 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결국 나는 자신과의 소통이 단절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타인에겐 친절한 사람이지만 정작 나에겐 불친절 한 사람인 나.

한 번쯤 무력하게 멈춰버린 마음에게 조용히 귀를 기울여준다면 

나의 내면의 소리에 고개를 끄덕여 준다면

상처투성이가 된 내 마음도 나에게 반응을 해 주려나?


거절이 뭐죠?


나의 고질병 중 하나는 바로 ‘거절 못하는 성격’이다.

거절이라는 단어는 왠지 나에겐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성격 탓에 반대로 상대방에게 거절당했을 때도 나는 굉장한 상실감을 느낀다.


거절을 제대로 못하다 보니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약속을 이중으로 잡아서 결국에는 누구 한 사람과의 약속을 변경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든지

괜히 수락해서 해야 할 일을 두 배로 만들어 골머리를 앓는다든지.

대게 자주 상대방의 요구에 수락을 한 뒤에 후폭풍처럼 몰려오는 부작용에

‘아 그때 거절할 걸.’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꽤나 자주 있는 편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프리랜서로 수업을 할 때였다.

학생 대부분이 직장인이다 보니 수업을 유동적으로 잡을 때가 많은 편이다.

오래간만에 친구들과의 선약이 있던 날이었다.

한 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음 날 업무적으로 급하게 중국어를 사용할 일이 있다며 도와줄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나는 결국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선약에서 먼저 일어나야 했다.


친구들과의 선약이 당연히 우선이었고 나는 그 부탁을 거절했어야 하는 것이 백 번 맞다.

하지만 어째서 나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친구들을 두고 학생에게 가야만 했을까?

언제부터 나는 나의 사정보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 더 중요해졌을까?

그에 따른 부작용은 실망감을 내비치던 친구들의 표정이 수업 내내 불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어두운 낯빛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찝찝하던지 그 어떠한 보람도 뿌듯함도 없었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제대로 거절을 못한 탓에 이쪽도, 저 쪽도 실족하게 하는 일이 빈번하다.


나의 입장보다 타인의 입장이 더 우선순위 되는 삶.

좋은 사람이고 싶은 그 욕구가 만들어 낸 불필요한 과잉 친절.

한 번의 거절이 어려워 생기는 부작용.

그 후폭풍을 온전히 감당해야 할 사람은 나 자신.


거절 못 한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거절을 못해서 오히려 나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자발적으로 손해 보기


나는  약간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처럼 자발적으로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하는 편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퇴사를 결심한 어느 날 직장 상사에게 정말 어렵게 퇴사 이야기를 꺼냈다.

감사하게도 상사는 내 입장을 충분히 이해를 해 주었다. 

그 덕에 좋게 좋게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퇴사는 원래 최소 한 달 전에 이야기하는 것이 예의인지라 나는 최대한 한 달 안에 아름답게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사는 두 달 정도 더 일을 하고 퇴사를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거절이 어려운 나는 그 부탁을 수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두 달을 더 다녔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고 상사는 굉장히 미안한 기색을 내비 추며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사람이 구해지지 않아서 혹시 조금만 더 일을 해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다른 일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거절하지 못했다.

나의 퇴사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졌다는 생각에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결국 자발적으로 상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기한을 정하고 더 일을 하겠다고 했다.

자발적인 결정이었지만 나는 상당한 스트레스받고 있었다.

사소한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 돌연사를 해 버리는 개복치가 따로 없었다.


퇴사 이야기를 한 게 두 달 전인데 아직도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에 한 번,

원래 퇴사를 결정하고 다른 일정을 잡아 둔 모든 일을 미뤄야 한다는 사실에 두 번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마음이 떠난 상태에서 두 달이 넘도록 일을 한다는 건 또 어떻겠는가.

두 달하고 조금의 시간은 매일매일이 고역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꽤나 자주 자발적으로 손해를 보는 타입이다.

직장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면서 자발적으로 돕고, 헌신하는 타입.

희생과 함께 적잖은 스트레스가 항상 동반이 된다.

또 내심 나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게 되면 굉장히 서운함을 느낀다.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나는 항상 나를 힘들게 한다.


타인에겐 좋은 사람일지 몰라도 나는 나 자신에게만큼은 썩 좋은 사람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손해 보는 바보 천치가 딱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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