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쓰는 캐리어는 하나로 충분해

날씨가 좋으면 옷이 가벼워

by 표류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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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9박의 표류에 앞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했던 것은 바로 항공권이었다. 처음엔 6박의 여정이었고, 부족한 것보단 넉넉한 것이 좋을 것 같아 1인 1 캐리어에 맞춰 항공권도 1단계 높은 이코노미 클래식으로 정했다. 라이트로 봤던 가격이 클래식으로 바뀌니 가격도 오르는 건 인지상정.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기간을 9박으로 늘리고 세비야의 표류가 추가되니 저가항공권을 알아봤는데, 이때도 짐의 무게가 엄청났다. 캐리어 1개당 10만 원이 우스웠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짐덩어리 었다. 고작 9박을, 그것도 날씨도 좋을 때 가는데,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할까? 순간 머릿속은 꼼수로 꿈틀댔다.


2인 1 캐리어가 어떨까 하는.


아파트형에 4박을 머무를 예정이니 햇반과 누룽지와 블럭국을 넣고 라면도 몇 개 챙겨야 했다. 여기에 내 옷은 밖에서 입을 옷 3벌과 잠옷뿐. 나머지는 남편 몫이었다. 갈 때도 이미 한 벌 입으니 총 4벌은 싸가는 것과 다름없다 여기기도 했다. 덕분에 캐리어는 여유 있었다. 혹시 몰라 무게도 쟀는데 12킬로가 되지 않았다. 빨래는 중간 숙소인 세비야에서 무료로 제공된 1회용 세제를 사용해 썼으니 더 들어가는 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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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수화물로는 평소 들고 다니는 책가방을 각각 1개씩 챙겼다. 소매치기가 많은 나라라 하니 남편의 크로스백까지 하나 더. 총 3개였다. 귀중품을 위한 복대도 각자 착용했다. 이것까지 가방이라고 본다면 총 5개는 되긴 했다.


햇반과 라면은 하루가 다르게 줄었다. 물론, 기념품도 늘긴 했다. 기념품은 마지막 여행지에서 사는 것이 룰이라고는 하지만 코르도바에 예쁜 것이 유독 많았다. 그것도 유리로 된 것이라 남편의 가방에만 쏙. 캐리어는 가벼워졌는데 남편의 가방만 무거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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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코르도바에서만 산 것은 아니었다. 바르셀로나로 돌아간 첫날에도 바로 소비했다. 그렇게 했는 데도 캐리어 안에 내 책가방까지 담을 수 있었다. 몬세라트를 가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몬세라트에서는 1박을 할 예정이었기에 바운스 어플을 통해 숙소 근처에 있던 짐보관소를 찾았던 상태였다. 짐은 캐리어 단 하나로 착하게 결제했다.


몬세라트에서도 돌아간 바르셀로나 시내에서도 기념품 소비는 이어졌다. 여러 개의 과자와 초콜릿, 그리고 장난감들이었다. 이것들을 모두 넣었는데도 캐리어는 다행히 터지지 않았다. 유리 기념품만이 남편이 스스로 짊어진 짐이었다. 남편에게는 미안하나 남편도 예쁘다며 쿵짝을 맞췄으니 공범이라면 공범이다.


캐리어는 1개로 충분했지만 살짝은 불안하기도 했던 표류기다. 캐리어가 돌길을 따라 덜컹거리며 가듯, 우리 역시 갖은 장애물에 한 번씩 휘청거리며 간신히 나아갔다. 딱 봐도 소매치기로 보이던 부류도 여럿 봤다. 이때마다 짐이 적어 다행이라고 위안 삼았다.


딱 하나 아쉬운 건 스페인의 파란 하늘을 담아 오지 못했던 점이다. 마음까지 화창해지던 그 순간을 기록으로나마 풀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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