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만큼 가벼웠던 스페인의 영수증

무게만 나간다고 지출(지식)의 무게도 쌓이냐고요.

by 표류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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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에 있어서 뜻밖에 놀란 점은 바로 영수증의 가벼움이었다. 빳빳하고 하얀 자태로 자신을 뽐내는 한국의 영수증과는 달리 흐느적거리던 스페인의 영수증은 깃털만큼이나 가벼웠다. 신기했다. 마치 우연히 외서를 집었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


처음 외서를 들었을 때도 가벼움에 놀랐었다. 지면은 꼭 신문지 같았지만 책 넘김도 좋았기에 우리나라의 책도 이렇게 나오면 정말 좋겠다 싶었다. 솔직히 책에서 중요한 건 내용인데, 어째서 겉표지나 책의 무게가 중요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벽돌책을 읽다 정형외과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 이러한 마음이 더 강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책들이었다. (누군가는 전자책을 보라 하겠지만 종이가 집중이 더 잘되는 편이기에 여전히 종이로 읽고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외형적인 것에 집중할까? 어째서 영수증마저 곱디고운 새하얀 얼굴을 해야만 할까? 영수증이란 그저 지출 내역만 알려주면 되는 것 아닐까? 영수증의 얼굴이 곱다고, 또 무게가 나간다고 해서 내가 사용한 지출의 무게가 더 나가진 않을 것이다. 그건 오로지 소비자의 판단이며 본인의 벌이나 가치관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책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 가벼운 책이라고는 없다. 엄청나게 얇다면 가벼울 수도 있겠지만 이 마저도 빳빳한 질감에 무게가 나간다. 얼굴만 곱게 화장한다고 그 사람의 내면이 밝지 않을 것처럼 책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저 겉모습에만 치중한다. 간혹 오래되거나 잘 팔리는 책들은 새로운 형태로도 나오는데, 보통 종이책이 하드커버가 되어 더 무거워지니 한숨만 나온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 독자들의 지식이 더 쌓이는 것도 아닐 텐데 출판사들은 지나치게 예쁜 것들만 강조한다.


혹시 책을 읽는 독자나 영수증을 드는 소비자들이 있어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걸까? 영수증도 그러니 책에 무게가 나가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걸까? 같은 가격이라도 살만한 책이라면 가벼운 책을 택할 나 같은 사람에겐 왜 선택권이 없을까? 참을 수 없는 종이의 무거움에 푸념하는 밤이다.


제발, 보이는 것에 대한 굴레에서 벗어나 우리도 좀 가벼워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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