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공모에도 경력이 필요한가요?

공모대상 제한 없음이라면서요.

by 표류자차

얼마 전 브런치를 써먹은 일이 있다. 한 공모전 때문이었는데, 창작품만 내는 것이 아닌 글쓴이의 경력까지 적어내야만 해서였다. 분명 <공모대상 제한 없음>이라 쓰여있었건만 말로만 그렇고 사실은 아닌 것인지 적어야만 했기에 떠오른 것이 브런치였다.


브런치에 글을 적는다고 내가 작가일까? 여기서 작가님, 작가님 하는 거야 일종의 규칙이라 여기는 게 나다. 책을 쓴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제대로 발표한 적이 없기에 작가라고 하기에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글을 짓는 일이 작가라면, 같은 뻔뻔스러운 어조로 이곳 브런치를 소개했다. 그 이후부터 자꾸만 눈치를 보게 된다. 어차피 버릴 것도 없건만 눈치를 봐서 뭐 하려고 이러는 것인지.


내게 경력을 묻는다면 무수히 많은 문턱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신춘문예 심사에 언급되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고 글을 잘 쓴다는 착각을 하지 말라는 뼈 때리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이건 아까운 편에 속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죽어야만 나온다는 라디오 작가 채용에 응시해 두 차례 면접에 가기도 했다. (라디오는 정말 어쩌다 사람을 구한다 하더라도 알음알음 채용이라 공식 공고가 거의 뜨지 않는다. 나는 공식 공고 지원이었다.) EBS와 아리랑이었다. 아리랑은 영어에 자신도 없었고 이걸 해야 하나 같은 의심도 스스로 있던 터라 면접부터 망했다. EBS는 메인작가보다 먼저 보는 막내작가 면접이라며 내가 쓴 글을 무척이나 만족스럽게 보셨다는 PD님과 심도 깊은 시간을 갖기도 했다. 제작비 문제로 월급이 굉장히 적을 것을 걱정해 주시던 내용이었다. 의심이 많고 부정하는 성격임에도 이건 분명 된 것 같은 면접이었다. 다음에 보는 것이 기정사실 같았다. 하지만 연락은 없었고, 그래서 물었고, 막내작가 자리 자체가 없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새로 시작한 라디오 프로그램은 메인 작가 1명으로만 구성되어 진행되었다.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봐도 작가진은 1명이었다.)


경력 따위는 쌓을 수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이마저도 내가 부족했기에 그렇겠지. 내가 노력하지 않았기에 그렇겠지. 대기업은 매년 인턴 공고라도 여러 군데서 나온다는데. 내가 가려는 쪽은 들어가는 문 자체가 언제 열릴지 모르는 철옹성 그 자체였다. 그나마 내가 창작하는 쪽의 창의인재(청년대상) 공고는 국가의 지원으로 매년 나오긴 하는데 면접 때 보니 어마어마한 분들 속에 내가 있었다. 당연히 뽑힌 분도 이미 등단까지 한 능력의 경력자셨다.


TV 쪽에서 활동을 잠시 하긴 했지만 막내까지만 하고 나갔기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덕분에 바깥에서 이전의 세상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방송국에 박혀 있었다면 지금의 시선은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르게 등단했다면 그 세계에만 빠져 정작 세상은 더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이라고 안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한쪽 방향으로만 빠지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해서다.


떨어진 자의 자기 위안이라 보더라도 할 수 없다. 내가 나를 위로하지 누가 할까? <공모 대상 제한 없음>이라는 공모전조차 사실상 작가의 경력을 따지려는 한 공모전을 보고 나니 내 발자취를 돌아보게 된다. 창작품 공모라도 블라인드이길 원하는 게 너무나도 큰 바람일까? 처음엔 안 보다가도 막바지 최종에서는 그 '경력'이라는 것이 중요한 채점 기준이 될까 무섭고 또 무섭다.


당연히 해당 일에 몸 바쳐 투신하는 분들 역시 존중되긴 해야 할 거다. 하지만 그런 사람 위주로만 보겠다는 건 다른 분야에 대한 배척일 수 있지 않을까? 그 속에 없더라도 그곳을 애정할 수 있다. 끊임없이 도전 중일 수 있다. 창작이라는 분야마저 그놈의 스펙이 필요한 것 같아 씁쓸해진다. 무엇보다 내가 실력이 없어 떨어진 건데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아쉬운 점이다. 지금껏 최종의 문턱에서 떨어졌으면 딱 여기 까지라는 걸 알아야 할 텐데 여전히 도전 중이라 그렇다. 더 이상 눈치는 보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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