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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신을 분별하다.

의로움으로 시대를 거스른 자

by Yolo On
장자의 권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당시 아브라함의 시대는 전형적인 부계혈통을 따르는 부족사회였다. 그러한 사회의 모든 권한은 첫 째 난 아들 즉, 장자를 통해 대물림된다. 이는 당시의 불문율과도 같아서 이를 어긴다는 것은 당시의 부족사회를 유지해 나가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당시의 이런 관행을 과감하게 깬 인물로 '장자의 축복은 태어남으로 얻는 자연적인 권리가 아니라 신의 뜻에 부합한 자에게 주어져야 한다'라고 생각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짚어볼 일은 당시에는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이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제물은 처음 난 짐승이 최고의 것이듯, 처음 난 자식을 바치는 게 최고의 인신공양이었다. 이러한 인신공양의 역사는 전 일류적으로 행해지던 관습으로 지금까지도 사이비 종교에 의해 종종 발생하며, 신라시대 에밀레 종이나 심청전의 심청이처럼 다양한 문화적 뿌리를 갖고 있다.


아브라함은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유아 사망률로 인해 당시엔 몸종이든 노예든 근친상간이든 자신의 피를 받은 아들이 죽지 않고 자란다는 것만도 큰 축복이었으며, 그중 성년이 된 장자는 모든 것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장자임에 틀림없는 이스마엘을 제치고 이삭을 장자로 선포하기에는 당시의 시대 분위기상 족장 아브라함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로 인해 이웃 부족의 침략이 정당화될 수 있는 문제이며, 부족 내의 질서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그를 내보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스마엘이 아브라함 가문의 장자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만에 하나 자신이 늙고 병들거나 죽은 이후에 이스마엘이 나타나 장자의 권리를 요구한다면 이삭의 신변은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브라함 : 네이버 이미지검색 아브라함과 이삭 - 페르디낭 올리비에

이러한 상황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여호와께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었다. 그 의미는 아브라함이 가장 아끼는 것으로 그의 믿음을 시험하려는 여호와의 의도 + 이삭을 인신공양 제물로 바칠 때에 자연적으로 부여되는 장자의 권한을 신께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알리 수 있는 사건인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당시의 이방신들을 섬기는 여타 부족들과는 달리 자신의 신 여호와는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결코 원하시지 않는다는 놀라운 깨달음과 분별력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한 길을 떠날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 만약 그곳에서 여호와께서 이삭을 제물로 거두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고, 자신이 깨달은 믿음대로 살리신다면 이삭은 공식적으로 장자의 권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당시에 성행하던 인신 제물을 요구하던 거짓 신들과 참 신인 여호와를 분별하기 시작한 최초의 각성한 인물


그렇게 장자의 권리를 얻게 된 이삭도 결국 한 배에서 나온 두 아들에 이르러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다. 당시의 관례대로 장자 에서에게 권리를 줄 것인가? 여호와의 뜻에 가까운 야곱을 택할 것인가? 이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급기야 리브가의 도움으로 앞이 안보인다는 이유로 야곱에게 축복을 하게 된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은 다른 감각기관이 발달한다. 아무리 속이려 해도 앞 못 보는 사람의 후각, 청각, 촉각은 쉽게 속일 수가 없다. 즉 앞을 못 보는 자신의 상황을 이용하여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야곱에게 주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겪은 장자 선택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며 대내외적으로 떳떳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야곱 : 네이버 이미지검색 야곱과 천사(초벌화) - 레옹 조제프 플로랑탱 보나

그러고 나서 야곱을 어디로 보냈는가? 그가 유일하게 살 수 있는 모계 부족에게로 보내게 된다. 모계는 그가 누구의 씨인가 보다는 그가 우리 집안의 여자에게서 난 사람인가 아닌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만일 부계혈통의 다른 부족으로 갔다간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며 장자의 권리를 훔친 자라는 불명예로 당장 잡혀 죽게 되었을 것이다.

요셉은 야곱의 축복을 받을 만한 자식인가?

그렇게 2 대에 걸쳐 당시 사회의 규율을 어기고 강행한 믿음에 따른 장자 선택은 결국 욕심 많은 야곱에 의해 자신이 아끼는 것을 감싸느라 요셉을 잃게 되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요셉은 누가 봐도 재수 없는 인간이다. 형들의 생각엔 이미 온 유대 지역에 소문이 다 나서 누구나 알고 있었을 할아버지 이삭과 아버지 야곱의 장자 계승의 불만이 급기야 요셉을 장자로 결정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요셉이 장자가 되면 자신들이 죽거나 쫓겨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일 테고, 결국 요셉 하나를 죽이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라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구약시대 믿음의 조상들은 당시의 사회질서를 흩트리는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여호와의 뜻을 분별해 따랐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맹목적으로 아들을 죽이라는 신의 음성이 참 신의 것인지 거짓 신의 것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의 말씀 이해는 오늘날 교회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만 이해하는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이제 막 글을 읽기 시작한 아이에게 성경을 주고 읽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집트의 총리대신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요셉은 부흥회마다 들먹이기에 합당한 축복받은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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