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곁에서 쉬었다 가렴
요즘 눈을 감으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이다.
혼자 힘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그저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한 완벽한 무중력의 상태.
이런 느낌이 들 때면 먼 훗날 언젠가 딸아이도 경험하게 될 그런 순간을 위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재이야. 이담에 네가 최선을 다한 일에 실패를 맛보고, 그때마다 좌절을 겪고.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을지라도, 망설이지 말고 언제든 아빠를 찾아오너라.
지금의 아빠처럼 지치고 힘들 때, 아무도, 어디도 찾아갈 수 없는 사람은 마치 우주에 버려진 비행사처럼 죽음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는 것 같은 깊은 절망감과 외로움뿐이란다.
그러니 언젠가 너 또한 그렇게 힘든 일로 아빠를 찾아올 때쯤이면 넌 이미 충분히 고통받고 지쳐 있을 테니 혹, 아빠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그저 아빠 곁에서 잠시라도 좋으니 쉬었다 가려무나."
있어도 안 가는 것과 없어서 못 가는 것은 지구와 화성만큼이나 다르다.
그래서 상실감은 존재함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20140317(8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