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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lo On Oct 10. 2022

가난한 선악과

솔직하면 실망은 해도 상처로 남진  않는다.

"나도 즐기고 싶은데…."


유일하게 다니는 피아노 학원만 핼러윈 파티를 하지 않는다며 딸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등교를 했다.


어려서부터 아쉬운 표정은 지어도 막무가내로 떼를 쓰거나 장난감 코너 앞에 누워본 적이 없는 딸아이.


딸아이와 내가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하면서부터 가난한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해주었다.


내 주머니 사정으로 사주기 힘든 걸 딸아이가 원하면 '저런 거 있잖아. 안 돼.' '다음에 사줄게.' 하지 않고,     


"재이야. 아빠가 지금 저걸 사줄 만큼 돈이 많지 않아 미안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대신 돈 안 들고 놀 수 있는 것을 찾아 딸아이가 원하는 만큼 함께 놀았다.


VIPS 앞을 지나던 어느 날 "아빠 나 저기서 밥 먹고 싶어." 하는 딸아이에게 선뜻 "그래."라며 들어가지 못하는 내가 너무 초라 했지만,


그때도 나는 "재이야. 저기서 점심 한 끼 먹기에는 아빠 주머니 사정에 비해 너무 비싸다. 대신 우리 간단하게 먹고 있다 집에 가서 맛난 거 해 먹자."      


그리곤 집에 들어와 냉장고에서 남은 음식을 모아 김밥을 해 먹거나 이것저것 같이 요리를 하곤 했다.



세상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할 수 없는, 또는 해선 안 되는 일들이 훨씬 많다.


할 수 없다고 좌절해서 마음의 상처를 만들거나 앙금으로 두어선 안 된다.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미련에서 빨리 마음을 거두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즐겁고 만족스러운 일들을 찾으면 된다.


우리의 삶은 하나도 부족한 게 없는 풍요로움 속에서가 아니라 부족하고 아쉬운 가운데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에 있다.


신이 우리에게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부여한 것도, 그 죄를 볼모로 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거리만큼의 긴장감을 잃지 말고, 그 죄와의 거리보단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신의 존재를 잊지 않게 하려고 하심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에 대한 가치는 선악과 단 하나를 제외하고 허락된 무한한 선택의 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 해선 안 되는 단 한 가지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데에 진정한 자유의지의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너무 갔네.     

20131031(8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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