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
나에겐 찐득한 관계인 친구들이 몇 있다.
그중 고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자주 어울려 다니게 된 친구들이 있는데, 이 친구들과 나는, 뭐랄까... 내기에 미쳐있었다.
당구장 요금 내기나, 옳고 그름 가리기와 같은 내기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울고 웃게 한 내기는 '가위 바위 보, 술(밥) 값 내기'다.
고등학교 다닐 때야 뭐, 매점 갈 때 말고는 돈을 만질 일이 없으니(요즘 고등학생은 어떨지 모르겠다) 이런 내기를 할 일이 없었다.
이 내기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때는 대학교를 가고,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부터 인 듯하다. 그때부터 슬슬 모여서 술을 마시곤 했으니.
나는 남고를 나왔는데, 남자들끼리 모여서 할 일이라곤 대부분 피시방, 당구장, 술, 밥, 카페 정도였다. 우리는 그런 행사 끝에 계산을 할 때마다 더치페이를 하기보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한 두 명이 몰아서 내는 문화를 만들어 갔다.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그런 쪽으로 죽이 참 잘 맞았다. 아, 아마 친구 한 둘은 그런 성향(?)이 아니었는데 짓궂은 녀석이 있어 물을 흐려버린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근묵자흑이라고 하던가.
'공짜로 밥 먹을 기횐데 왜 안 해?'따위의 말을 하며 서로를 부추기기도 했다.
나는 그런 느슨한 친구 모임에 생기는 긴장감이 좋았다. 어쩔 때는 밥보다도 내기 자체를 기다리기도 하면서 내 마음속의 주객이 전도되기도 했다.
한창 그러고 놀았던 때는 만원 한 장에 울고 웃었는데, 그때가 좀 그립다.
그 만원 한 장이 소중한 만큼 내기에 졌을 때 기분이 안 좋았고, 다른 친구가 기분이 안 좋은 만큼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닫힌 그룹 내의 행복의 총량은 보존되는 것일까.
자칫 잘못하면 친구 사이를 해칠지 모르는 문화지만, 정말 친한 친구들이라는 믿음 때문인지 우리는 선을 아슬아슬하게 잘 탔던 것 같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제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또 가위 바위 보를 할 생각에 들뜨는 나를 발견하며 흠칫한다.
어쩌면 이제 다들 성숙해서 그런 내기를 안 할지도 모르겠다.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우정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