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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an 28. 2024

쿠팡 상하차 회고록

밖은 춥더라.


6:49 기상


  

바로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물 끓여서 한잔 마시고 나감. 마스크를 깜빡했음. 넥워머 챙기길 잘했다. 굿.

  

쿠팡 셔틀을 타려면 7시 43분까지 범어역에 도착해야 함. 집에서 범어역까지 버스 타고 이동시간 20분. 버스 정거장까지 달림.

  

아침 공기가 정말 차가웠다. 오늘따라 추운 것인가. 손끝이 시려 주먹을 꽉 쥐었다.

  

814번 버스를 타고 범어역에 내림. 쿠팡 셔틀은 범어역 1번 출구에서 탈 수 있다. 아 범어 네거리 대각선 반대편이네. 멀어서 또 달렸음. 이때가 7시 38분이었나. 물 마시지 말고 그냥 나올걸.

  

지하철역 쪽으로 내려갔다. 횡단보도 안기다려도 되고, 또 밖은 추우니까. 범어역은 정말 크다. 달려가는 나를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봤다. 


괜히 뻘쭘한 마음이 들어, '열심히 사는 사람 처음 봄?' 하고 속으로 말해보았다.

  

42분에 도착. 범어역 1번 출구 앞은 바람이 쌩쌩 불었다. 칼바람에 손이 베일 것 같은 느낌. 벌벌 떨면서 혹시 버스를 놓친 건 아닐지. 버스가 오는 방향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하루 공치는 건가?'


불안감이 엄습할 무렵, 주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쿠팡 동지들일까?

  

다행히 버스가 왔다. '쿠팡 사월'이라고 적힌 버스가. 

  

늘 버스가 서는 자리가 있는지 사람들은 벌써 가서 줄을 서있다. 고인 물들이었네.

  

결국 나는 가장 먼저 와서 맨 끝에 타게 되었다. 내가 그런 남자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이 입구에서 뭔가를 폰으로 찍고 탑승한다. 탑승권인가.

  

기사님께 폰에 데이터가 없다고 하니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라고 태블릿을 가리키셨다.

  

어리바리하지 않은 척, 빠르게 누르고 자리를 찾으려 버스 좌석을 둘러봤다. 

  

다들 2인석에 한 명씩 앉아 있길래, 그냥 가까운 빈자리에 앉았다.

  

5분 전까지만 해도 버스를 놓친 게 아닐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버스에 앉아 있으니 벌써 성공적으로 하루를 시작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이런 남자다.

  

버스 안 공기는 훈훈하다. 손을 녹이려고 외투의 지퍼를 내리고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끼워 넣었다. 


잘까 음악을 들을까. 블루투스 이어폰을 들고는 왔지만 딱히 뭐 다운로드하여 놓은 노래도 없다. 혹시나 버스에 와이파이가 있을까 해서 들고 왔지만, 역시나 없다.

  

그냥 눈을 감고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한다.

  

혹시 나중에 브이로그라도 올릴까 싶어, 영상도 짧게 한두 개 찍으며 궁상을 떨었다.

  

'아 잠깐, 이거 대구 1,2 센터로 가는 버스가 맞나?'

  

안내 문자에서 버스 타기 전에 물어보고 타라고 하던데, 깜빡했다. 종종 다른 센터로 가서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들어서 다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바퀴는 굴러가고 있다. 이제 와서 기사님이나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물어봤자, 도착지는 바뀌지 않는다. 도착하기 전까지는, 나는 옳은 버스에 탄 것도 아니고 잘못된 버스에 탄 것도 아니다.

  

불안을 몰아내려 마음의 평안을 속으로 되뇐다. 편하게 쉬면서도 바른 자세로 앉아 있으려고 했다. 똑바른 자세로 앉아서 쉴 수는 없는 걸까?

  

8시 30분쯤 쿠팡 물류센터 도착. 사람들이 주섬주섬 일어선다. 덩달아 나도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기사님께 "여기 1,2 센터 맞죠?" 하니까 그렇다면서 고개를 끄덕이신다.

  

다시 살짝 기분이 좋아진 나.

  

얼른 내려가서 사람들이 줄지어 가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센터 안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출입 등록 같은 걸 하고 있었다. 기둥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따라 쿠팡 와이파이에 연결했다. 

  

쿠팡 내부 시스템 말고는 다른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는 시스템인 듯했다. 

  

'마누라한테 카톡이라도 하려고 했더니, 야박하는구먼.'        

  

아무튼 쿠펀치 어플(쿠팡 근로 통합 관리 시스템이랄까)에 QR코드를 띄우고 나도 출입 등록하는 줄에 섰다. 


삑!

  

QR코드를 찍으니 직원분은 신규 근로자 교육받는 곳으로 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사실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었는데, 대충 눈치껏 이동했다. 

  

신병 교육장에는 이미 몇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자리마다 투명한 칸막이가 세워진 테이블 하나에 세명 씩 지그재그로 앉는 식이었다.


코로나의 흔적을 뒤로하고. 앞에서 왼쪽 세 번째 줄에 앉았다.


잠시 후, 출입 등록을 하던 직원분이 교육장 안으로 들어왔다.


'교육 담당인가?'

  

나는 그 직원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 위에 올려 둔 인적사항, 보건 안전 관련 조사 등의 양식을 작성했다. 


9시가 되어 신규자 교육이 시작되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교육. 그런데 처음 반틈은 교육 자료 영상을 음소거한 채로 재생시켜 두고 업무나 출퇴근 규칙 등을 설명해 준다. 이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우리한텐 뭐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닌가 보지.

  

성희롱 교육을 희롱하는 교육이 끝나고. 다른 교육 담당이 들어왔다. 


산업 안전 보건 관련 교육 시간.  


안전 관련 사고는 꽤 일어나는지. 진심으로 교육한다. 난데없이 서서 스트레칭도 시킨다. 부상에는 진심이구나.


목, 어깨, 허리를 중점적으로 풀었다.

 

열 시쯤 교육을 마치고 나와서 사물함에 휴대폰을 비롯한 소지품을 넣었다. 교육 중에 사물함에 쓸 자물쇠를 팔길래 2000원 주고 샀다. 


쿠팡에서 일할 때 말고는 쓸모가 있을까 싶다.


다음은 실습 교육.

  

세 줄로 서서 실습을 진행했다. 쿠팡에서 일할 때 쓰는 도구들을 돌아가며 한 번씩 다루어 보는 식이다.

  

실습을 마치고, 내가 속한 허브(상하차) 조는 먼저 따로 빠져서 일터로 이동했다. 


물류센터 내 횡단보도를 건너 옆 건물. 


교육 담당은 다음번에는 9시까지 이쪽으로 오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자 이쪽으로 오세요."


어미를 따라가는 새끼 오리들 마냥 졸졸졸 따라갔다.

  

옆 동의 휴게실에서 따로 또 교육을 받았다. 상품을 팔레트에 적재하고 비닐랩으로 감는 요령을 중점적으로 알려준다. 나중에 하차하는 사람이 일하다가 적재된 상품이 무너져서 다칠 수 있으니 아래쪽을 세 번 이상 감아주라고 한다. 


교육을 받던 중 휴게실 TV뒤에서 웬 비둘기가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다들 본체만체하는 게 코미디의 한 장면 같아서 웃음이 났다.

 

교육을 마치고 물류창고로 이동. 창고에 들어가기 전, 교육 담당은 화장실이 이쪽저쪽에 있다고 알려준다. 밥 먹을 때 말고는 갈 일이 없을 듯하다.

  

안전화 외 조끼등을 착용하고 배정된 일터로 이동. 오른쪽 안전화에 깔창이 없어서 양발의 균형이 안 맞았다. 나의 골반과 척추는 괜찮을까. 하지만 이 일을 하자고 안전화를 사기에는 배보다 배꼽이 큰 노릇이다. 


그냥 낡아빠진 안전화를 대충 신었다. 지퍼도 제대로 안 올라가서 헐거웠다.


'뭘 따지고 앉았냐.'


8명 정도였던 신규자들은 각 구역 담당들이 와서 두세 명씩 데려간다.

 

내 첫 임무는 레일을 따라 내려온 상품들의 바코드를 찍고 트럭에 박스를 적재하는 업무.


배정된 레일에는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레일 하나당 2인 1조로 일하는 게 원칙이다.


반갑다, 뭐다 할 인사도 없이 고개를 한번 까딱이고는 박스를 계속해서 옮겼다. 


어차피 서로 일용직이고 하니 친해질 필요도 없는 건가. 상하차 세계의 문화는 조금 낯설다.

 

뭐 그런 감상은 날려버리고 박스를 쌓기 시작했다.


"봉지나 작은 박스류는 뒤편으로 던지고 나머지는 여기 쌓으면 돼요."


내가 어리바리하기도 전에 친절하게 알려주는 청년. 그때부터 상하차 디펜스 게임이 시작되었다. 


몬스터의 웨이브처럼 내려오는 택배 물품들을 묵묵하게 처리해 나갈 무렵.


너무 추워서 손가락 끝에 감각이 둔해져 갔다. 창고에 비치된 온도계를 슬쩍 보니 -7도씨.


계속 일하다 보면 땀나고 하겠지. 트럭 안이 오히려 따뜻하다.

  

정신없이 일하고 있으려니, 감독이 와서 누가 먼저 밥 먹을 거냐고 묻는다.


"제가 먼저 갔다 올게요."


냉큼 먼저 대답하는 그. 오줌이 마려운가?


나는 딱히 상관이 없어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

  

내 점심 식사시간은 12시 20분부터 1시까지다.


몇 분뒤, 친절한 청년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제 40분간은 경험치 2배 이벤트다.


'돈 받으면서, 휴대폰 디톡스에, 근력 훈련까지!', '월세! 월세! 월세!' 따위의 말을 뇌까리며 고객님들의 소중한 상품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앞니가 시려오며, 마스크를 가져 올걸하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그가 돌아왔다.


'점심시간! 공짜 밥!'


"식사하고 오세요."


"안전모랑 조끼랑 여기 두고 가면 되나요?"


"아 네, 편하신 대로..."


벌써 군침이 돌았다. 침착하게 장구류를 벗어두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복도에는 음식 냄새가 났다.


몇몇 사람들이 식판을 들고 줄을 서있는 게 보였다. 


오늘의 메뉴는 뜨끈한 뭇국과 카레밥, 그리고 탕수육. 밑반찬으로는 김치와 미역줄기가 있었다.

  

'너무 과식하면 안 된다. 먹을 만큼만 담자.'

  

하지만 내 손은 밥과 탕수육을 퍼담고 있었다.

  

국그릇을 손으로 집어 식판에 담았다.

  

"맛있게 드세요."

  

배식하는 청년.

  

대충 아무 자리에나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첫 입은 역시 탕수육 한 젓가락. 매콤한 핫소스에 식어빠진 탕수육이 만나 내 혀 위에서 춤을 춘다.

  

'몸에 안 좋은 맛! 너무 좋아!'

  

미역줄기를 한 젓가락 집어서 씹었다.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육체적 노동이 조미료인가.

  

카레와 함께 흰쌀밥을 한술 떴다. 야무지게 입에 넣는다.

  

'카레는 맛이 좀 심심하네.'

  

카레가 묻은 숟가락을 입으로 쪽 빨아 뭇국에 담갔다. 나박 썰기로 썰린 무를 국물과 함께 두 점.

  

국물은 합격이다.

  

카레의 심심한 맛을 달래준다.

  

먹다 말고 식당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시간은 어느새 12시 30분.

  

별안간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 체할 것 같았다.

  

'주화입마인가!'

  

다시 식판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식사는 좀 온전하게 즐기고 싶다.

  

밥이 좀 많아 카레를 한 숟가락 더 퍼담아 먹었다.

  

20분간의 식사를 마쳤다.


  


'또 과식을 해버렸군.'

 

어차피 힘쓰면서 다 태워버릴 거니까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마시면서 입을 대충 헹구고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휴게실에는 남자만 열댓 명 있었는데. 다들 쉬는 것에 골몰하는 느낌이었다. 

  

사찰인지 성당인지모를 경건함 마저 드는 공간. 여기 눈감고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명상이라도 하는 걸까.

  

구석에 빈 의자가 있어 그쪽에 앉았다. 나도 눈을 감고 쉬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슬며시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한다.

  

40분 딱 맞춰서 쉬는 게 맞나? 5분 정도 미리 들어가야 하나? 그 친절한 청년이 혹시 내가 농땡이를 부린다고 생각할까?

  

다시 심마가 찾아왔다.

  

눈을 감았다.

  

'이제 다섯 시간만 더 일하면 퇴근이군.'

  

아직 한참 멀었지만 퇴근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안정된다.


...흠칫!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선다. 


12시 55분. 


'그냥 일하러 가야지.'


엉덩이를 들어,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안전화가 약간 헐거워 바닥에 슥슥 소리를 내며 끌린다.


레일에 복귀했다.


그 친절한 청년은 트럭 안에서 박스를 쌓고 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며 따봉을 날렸다.


포르투갈에서 하던 버릇이다. 거기선 숨 쉬듯이 따봉을 날렸었다.


"네?"


그 청년은 저 사람이 왜 저러는가 싶은지 갸웃거린다.


"아, 아닙니다. 하하."


나는 멋쩍게 웃으며, 박스를 옮기러 갔다.


박스를 쌓으며 레일을 뒤로 물리기를 몇 차례. 


현장 감독이 와서 다른 일을 할 것이라고 따라오란다.


도착한 곳에는 나와 같은 신규자 두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 놓인 상품들 보이시죠? 이 칼로 포장된 랩 해체하셔서, 저기 끝 쪽 레일 위로 박스들 올려 주시면 됩니다."


얼떨결에 칼을 넘겨받고 바로 업무에 투입되었다.


이곳에 놓인 상품들은 제법 무게가 있거나, 부피가 커서 일반 레일로 이동하지 못하는 듯했다.


비닐 랩을 뜯고 박스를 레일 위로 올리기를 반복하니 등이 후끈하게 땀에 젖어간다. 


'오히려 따뜻하니 좋구먼.'


우리 신규자 세 명은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은 채로 소처럼 일만 해댔다.


여섯 팔레트쯤 해치우니 끝이 났다.


일감이 없어 우왕좌왕하기 시작할 무렵, 다시 감독이 찾아왔다.


"원래 계시던 곳으로 복귀하셔서 업무마저 해주시면 됩니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레일로 복귀했다.


또다시 바코드를 찍고 박스를 쌓는다.


라면박스와 쌀포대가 참 많았다.


잠시 후


다른 현장 감독이 찾아와서 다른 업무로 이동한다고 또 따라오라 했다.


이번 업무는 자키라고 불리는 수동 지게차를 이용하여 적재된 팔레트를 트럭에 옮겨 싣는 것과 다른 사람이 적재해 놓은 팔레트를 비닐랩으로 포장하는 것, 둘이었다.


"자키 써보신 적 있나요?"


"아뇨, 처음입니다."


"괜찮아요. 알려드리죠."


그렇게 대략 10분 간 자키 사용법을 배웠다. 사용법 자체는 간단했지만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 보였다.


"여기 이 구역에서 나오는 팔레트들을 레이블 확인해 주시고, 아까 보여드린 트럭에 옮겨 주시면 됩니다."


"넵."


"비닐 랩 감는 것도 한번 보여드릴게요."


그는 키높이만큼 쌓인 팔레트를 아랫단부터 주위를 돌며 비닐로 칭칭 감았다. 


처음 시작할 때 랩은 어떻게 고정하는 것이 좋은지, 아랫단을 어떻게 감아야 하는지, 랩을 마지막에 끊을 때는 어떻게 끊어야 쉽고 빠른지 등을 설명해 줬다.


"아시겠죠?"


"네, 네."


"아, 저는 잠깐 부르는 곳이 있어서 잠시 대기해 주세요."


"네."


감독관은 어딘가로 걸어갔고, 나는 잠시 그 자리에 혼란한 채로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팔레트에 상품을 쌓던 사람 한 명이 다가왔다.


"이거 좀 빨리 감아서 빼주세요."


"아 네, 네."


앞에 키 높이만큼 쌓여있는 팔레트를 가리키미 그가 소리쳤다.


급한데 뭐 하고 거기서 있느냐는 느낌.


'감독이 대기하라고 했는데, 괜찮겠지 뭐.'


옆 구석에 있는 비닐랩을 들고 그 팔레트를 감아대기 시작했다.


낮은 자세로 팔레트를 서너 바퀴를 도니까 은근히 힘이 들었다.


'아 그냥 트럭에 박스 쌓는 게 나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좋을 대로 일을 골라서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시키는 대로 하면서 돈 받으러 온 곳.


둘둘 팔레트를 교육받은 것처럼 꼼꼼하게 감고 있을 때였다.


"저기요, 사원님."


다른 감독 조끼를 입은 사람이 나를 불렀다.


"지금 이렇게 당겨서 감고 계시잖아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고 적당히 탄탄하게 주위에 둘러 주시면 돼요."


내가 답답했는지 비닐 랩을 줘보라며, 받아 들고서는 감는 시범을 보여준다.


"지금 상품 쌓는 사람보다는 빠른 속도로 감아 주셔야 돼요."


음. 나는 폐급인가.


"넵, 넵."


지적을 한 번 받고 나니 어디를 향하는지 모를 화가 났다.


그렇지만 내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일하자 일. 돈 받으면서 운동도 하고 좋네.'


그렇게 되뇌면서 비닐랩도 감고, 끙끙거리면서 자키로 이리저리 팔레트를 옮겨 다녔다.


한 번은 트럭에 팔레트를 싣다가 자키가 트럭에 연결된 턱에 걸려서 못 움직이고 있기도 했다.


2시간쯤 지나니 이 일에도 조금씩 몸이 익어갔다. 자키도 제법 잘 다루게 되었다. 물론 내 기준으로.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 20분간은 또 휴게실에서 쉬었다.


몸은 힘들어도 시간은 참 잘 갔다.


마지막 30분이 참 느리게 느껴졌다.


5시 55분쯤 되어 물류 센터에 노래가 나오며 레일이 멈춰 섰다.


'끝이구나.'


생각보다 할만한데?


사람들은 물류센터 중앙으로 모여 줄을 섰다. 


퇴근 명부를 기록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얼른 줄을 섰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 이름을 적어 넣고는 걸음을 옮겼다.


물류센터를 나서기 전, 뭔가를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신발 갈아 신는 걸 깜빡했네.'


안전화를 신고 다시 달렸다.


6시 15분에 퇴근 버스가 떠난다고 하여 마음이 또 급해졌다.


친구들이 선물해 준, 양쪽 발의 균형이 잘 맞는 내 운동화를 신고 나는 듯이 달렸다.


밖에는 많은 인원이 보안검색대로 통하는 줄에 서 있었다.


'늦진 않았군.'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사물함에 들러 짐도 찾았다.


오랜만에 휴대폰을 보니 반가웠다.


주차장으로 가 오늘 아침에 타고 온, '쿠팡 사월'이라고 적힌 버스에 올라탔다.


"기사님 이거 범어역 가지요?"


"네."


아무 자리에나 대충 털썩 앉았다.


등이 땀에 젖어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가는 동안 잠도 못 잘 것 같고, 글이나 써야겠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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