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 이야기
2025년 3월 22일 발생한 산불이 여전히 진화되지 않고 있다. '괴물 산불'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3월 29일 오전 현재 사망자 29명, 중경상자 41명 등 총 7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산불 피해 영향 구역은 4만 8천238헥타르(ha)로 서울 여의도 면적(290ha)의 166배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전 국민의 마음은 그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이재민은 4193세대에 688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듯 산불의 발생빈도는 점점 많아지고 규모는 커져서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점점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게 다반사인 우리는 이번에도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이다. 이왕 고칠 것이면 잘 고쳐야 한다.
산림보호법 제37조 3항에 따르면 산불이 둘 이상의 시, 도에 걸쳐 발생하면 산림청장이 통합지휘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산림청에서 담당하고, 민가와 시설물로 확산된 불은 소방청이 맡는다. 따라서 한정된 자원 활용에 담당 업무가 다른 두 기관 사이에 우선순위가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다. 산불 진화는 특수한 상황이고 위험한 경우가 많다. 영화에서도 산불 진화는 위험하다고 건물화재 쪽으로 전출을 원하는 대원의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산불 지휘체계 일원화에는 자원의 편중과 전문성이라는 문제가 항상 있게 마련이고, 이번 산불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의 문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는 우리가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 Only the Brave>(2017)는 2013년 6월 28일 발생 미국의 중서부인 애리조나주 야넬힐(Yarnell Hill) 산불로 순직한 프레스콧 소방서 소속 그래닛 마운틴 핫샷 대원 19명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실화가 바탕이기 때문에 극적이거나 억지 설정보다는 잔잔한 일상과 도전을 중심으로 그려가고 있다. 등장인물이 많아 집중이 잘 안 되고 산만할 수 있는데, 실화 특유의 진지함이 묻어 나오는 건 장점이다.
남편을 불하고 나눠 갖기는
쉽지 않죠
2010년 미국 남서부 지역은 장기 가뭄으로 바짝 말라 있었고 일련의 산불이 발생하여 많은 피해를 준다. 애리조나주 프레스콧(Prescott)의 소방감독관인 에릭 마쉬(조슈 브롤린 분)는 현재 2진 급인 자신의 팀 ' 크루 7'을 훈련시켜 핫샷으로 만들고자 전력투구한다. 인생을 허송세월하다가 갑자기 생겨버린 딸에 정신이 번쩍 든 마약 중독자인 브렌든 맥도너(마일즈 텔러 분)를 팀원에 포함시키는 등 훈련에 집중한다.
영화는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남자들간의 끈끈한 우정과 단합을 바탕으로 팀은 마침내 평가를 통과하고 핫샷이 된다. '그래닛 마운트 핫샷* Granite Mountain Hotshots'이라고 이름 붙여진다. 팀은 엘리트 소방관으로 곳곳의 산불에 출동하며 명성을 드높인다. 그러던 중 프레스콧 근처에 산불이 발생한다. 천연기념물인 '엘리게이터 주니퍼 Alligator Juniper'를 구하고 지역사회 피해도 막아낸다.
2013년 6월 28일 애리조나주 야넬힐(Yarnell Hill)에서 벼락으로 작은 불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팀은 출동한다. 현장에 가보니 처음 가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어 산불은 점점 커져갔다. 방어선을 구축하는 작업을 하던 중 고정익 화재진압비행기인 탱커의 잘못된 살수로 일은 꼬여가게 된다. 기상 상황은 급속히 악화되고 대원들은 안전지대로 철수하게 되는데...
*핫샷: 산불 발생 초기 단계에 방어선 구축을 위해 투입되는 최정예 엘리트 소방관.
땅을 파고 나무나 덤불을 제거하여 불이 넘어오지 못하게 경계선을 만든 뒤, 맞불을 놓아 불을 끄는 등의 방법을 통해 진화작업을 한다. 현재 미국 전역에 약 2000여 명이 활동한다고 한다.
김용호 등(2022)에 따르면 산림청의 산불 진화인력은 총 2만 1천 명 규모이다. 이를 세분화해 보면 공중진화대 104명, 재난특수진화대 435명, 전문예방진화대 10,110명(, 감시원 10,561명이다. 공중진화대, 미국의 핫샷에 비교되는 재난특수진화대가 핵심이며, 나머지 인력은 시도에서 비상설로 모집하여 산불이 많은 기간에만 운용한다. 당연히 전문성이 떨어진다.
산림청 소속 특수·공중진화대는 지상에서 산불을 진화하는 핵심 인력이다. 특수진화대는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2018년 창설됐다. 지방산림청 5곳과 국유림관리소 28곳에 배치되어 있다. 고성능진화차량에 연결관 지름 13~65mm 호스를 최장 2킬로미터(km)까지 펼쳐, 작은 산불은 물론 대형 산불과 야간산불까지 진화한다. 또한 공중진화대원은 급경사나 암석 지역, 고압선이 있는 곳에 투입돼 산불을 진화한다. 두 직군 모두 관할지역은 넓고 인원은 적어 꼭 가야 하는 지역에만 간다.
가장 효과적인 진화장비인 헬기는 보도에 따르면 2025년 3월 현재 50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나마 기령이 20년을 초과한 헬기가 33대(66%)에 달하고 , 러시아제 카모프 헬기(29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부품도 구하기가 힘들어 8대가 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서는 매년 불조심 강조기간(2/1~5/15)에 맞춰 외국에서 헬기 7대를 임차해 왔는데, 올해는 1월 LA산불이 일어나면서 미국이 헬기 국외반출을 막아 2대만 가까스로 구하는데 그쳤다.
영화에서는 이미 발생한 산불을 막기 위해 맞불(Backfire)을 놓는 장면이 주요 방재작업으로 나온다. 맞불(Backfire)은 불의 진행을 막기 위해 일부러 불을 놓는 행위이다. 불의 진행 방향 앞에 미리 불을 놓아 화재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가연물질을 미리 태워 버리는 것이다. 두 개의 불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사이의 공기가 뜨거워져 상승하는데, 그 때문에 기압이 떨어지고, 저기압은 주변의 공기를 끌어들인다. 이로 인해 양 불이 더욱 서로에게 다가가게 된다. 이때는 이미 가연물질이 다 소화되어 버리고 난 후여서, 불이 꺼지거나 세가 크게 약화되어 끄기가 쉬워진다.
잘못하면 기존불에 맞불이 합쳐져 더 불길이 커질 수 있어, 풍향과 면적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특히나 지형과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변화는 우리 상황에서는 위험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맞불이 성공적으로 사용된 경우가 몇 차례 있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유정에 저지른 화재를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진화하기도 하였고, 1966년에는 우지베키스탄의 메탄가스정(Urta-Bulak gas field) 화재를 무려 30kt의 원자폭탄(히로시마는 15kt)을 터뜨려 진화한 케이스도 있다.
맞불은 관용적인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 정치적이거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의 공격에 맞받아 칠 때 사용된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세력 간의 어느 정도 안정과 평화가 찾아 올 가능성도 있지만, 잘못하다가는 상황이 최악으로 커질 수도 있다. 맞불의 과학을 통해 눈치를 잘 보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김용호⋅백은선, 산불 대응체계 개선을 통한 소방 업무영역 확대 방안 연구, 한국화재소방학회 논문지 제36권 , 제4호, 2022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