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과학이야기
연기를 이용한 통신은 일찍부터 사용됐다. 분명히 봉화는 가장 오래된 장거리 통신 수단이었을 것이다. 미국 원주민이나 남아프리카 원주민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가장 오래된 봉화의 기록은 중국 <사기, 주본기>에 나온다. 주나라 때 주유왕이 절대로 웃지않는 포사(褒姒)를 웃게 하려고 봉화를 마구쓰다가 지지세력들이 헛물만 키고, 정작 필요할 때는 오지 않아 나라가 망했다고 한다. '봉화희제후(烽火戲諸侯)'로 불리게되는 이야기다.
조선시대에 일어난 대표적인 난 중의 하나인 이괄의 난(1624)에서도 봉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병마절도사였던 이괄은 인조반정 때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켜 서울까지 점령하는 조선 최대의 난을 일으켰다. 반군 진압의 선봉장 정충신은 선발대를 보내 안산 봉수대를 점령하고, 평상시와 같은 일거(一炬)만 올리게 하여 반란군의 경계를 느슨하게 했다. 결국 이괄의 세력은 느슨해 졌다. 당시 피난의 달인 인조는 늘하던대로 멀리 공주 공산성까지 도망을 갔는데, 인근 주민이 준 떡을 맛있게 먹었지만 이름을 몰랐다. 이에 인조는 떡을 만든 이의 성이 임씨라 '인절미'라고 이름을 붙여 자신의 에피소드를 하나 더 남겼다.
가톨릭에는 매우 독특한 교황 선거 방식인 ‘콘클라베(Conclave)’가 있다. 어원은 '열쇠로 걸어 잠글 수 있는 방'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쿰 클라비'(Cum Clavis)이다.
콘클라베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고 오직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단만 들어갈 수 있다. 나이가 80세 미만인 추기경이 이에 해당한다. 이번 선거에는 135명의 추기경 중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한 2명을 제외한 133명이 교황을 선출한다. 콘클라베는 3분의 2 이상 득표하는 교황 후보가 나올 때까지 계속 투표를 한다. 정해진 기한도 없고, 투표는 누군가가 선출될때까지 무제한 이어진다.
추기경단의 투표가 열리는 장소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이 천장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인데, 안으로 들어선 뒤에는 밖에서 강제로 문을 잠가 버린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아무도 회의장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추기경단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은 새 교황이 선출되야 자물쇠가 풀린다.
콘클라베는 유폐된 교황선거를 말하는데, 13세기 처음 도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로마 인근 비테르보 지역에서 1268년 시작된 선거가 5년이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답보 상태를 보이자 시 당국과 주민들이 더는 참지 못하겠다며 추기경들을 한 곳에 감금하고 빵과 물만 공급(그것도 점점 줄였다고 한다)하면서 조속한 선출을 독려했다는데서 유래됐다.
당시 로마의 추기경인 교황의 공석은 정치적인 불안을 의미했고, 이에 따른 어쩔수없이 만든 방법이다. 전체가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황이 선출되면 이후 불안은 계속되고, 복수의 교황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강제적인 결정을 하도록 문을 잠그고 정보를 통제한 후, 가부만의 결정을 연기로 내보내게 하였다(SNS로 보내면 이젠 더 빠르다). 화백제도의 만장일치처럼, 추후의 정치적인 혼란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피선거권이 있는 사람, 즉 교황이 될 수 있는 자격은 꼭 사제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신앙을 갖은 미혼의 남자면 누구나 가능하다. 하지만 당연히 이름이 알려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교황이 되기는 쉽지 않다. 트럼프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절대로 안된다. 일반인이 교황으로 선출되면 바로 사재 서품을 한다고 한다.
`사도좌 공석과 교황 선출에 관해'라는 부제가 붙여진 교황 선거에 관한 최신 규정(교황령)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 헌장 《주님의 양 떼》(UNIVERSI DOMINICI GREGIS)'(1996)이다.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콘클라베) 규칙을 비롯해 교황의 서거확인, 장례, 즉위 절차 등을 12장에 걸쳐 규정하고 있다.이 규정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의 관습을 정리하여 시대에 맞지 않은 부분만 수정한 것이다. 이후 베네딕토 16세가 2007년, 당선에 필요한 총 득표수를 개정했고, 선거인단 추기경이 모두 도착하면 15일을 넘기지 않고 선거를 시작할 수 있다는 조항을 2013년에 추가했다. 발성에 의한 선출과 타협에 의한 선출은 모두 폐지했다.
이 헌장에서, 추기경단은 전처럼 시스티나 경당에서 감금되듯 밀집 생활을 할 필요가 없으며 요한 바오로 2세 시절인 1990년대에 신축된 '산타 마르타의 집'이라고 하는 숙소에서 거주하면서 시스티나 경당에 출퇴근하듯 투표하러 가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대신 개인적으로 돌아다니다가 기밀이 유출될 문제가 있어, 모든 선거인단은 바티칸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함께 타고 동시에 이동한다. 영화 <콘클라베>(2024)에 잘 나온다.
주교급 추기경만이 될 수 있는 수석 추기경에게는 교황 선거에서 몇 가지 역할이 부여된다. 만약 수석 추기경이 연령 제한에 걸려 선거권이 없으면, 차석 추기경이 그 역할을 대리하고, 차석 추기경도 참가할 수 없으면 주교급 추기경 중에서 최선임자가 대리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대행의 대행의 대행까지 미리 예상한 것이다.
교황이 결정되면, 연기를 피운다. 요즘에는 sns로 발표할 일이지만 직전 교황까지는 그렇게 했다.
투표를 마치면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으로 선출 안되면 검은색 연기가, 선출되면 흰연기가 피어오른다.
과거(1914년 베네딕토 15세 콘클라베 부터)에는 선거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투표 용지와 젖은 짚단을 함께 태워서 불완전 연소되어 '미정'이란 의미의 검은 연기가 나도록 했고, 결과가 나왔을 경우엔 마른 짚을 함께 태워서 '결정되었음'을 알리는 흰 연기가 나오도록 했었다. 그런데 요한 23세가 선출된 1958년 콘클라베 때는, 짚이 제대로 타지 않는 바람에 연기의 색깔이 불명확해져 회색 연기가 나온데다 양도 너무 적어서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결과가 나왔다는 거야 안 나왔다는 거야?'라며 혼란을 준 적이 있었다. 바티칸은 2005년부터 혼란을 방지하려고 화학물질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또 교황 선출 때에는 연기와 동시에 종도 울려서 정확성을 보완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출은 6분30초 동안 흰색 연기가 나오며 타종까지 한 첫 사례였다. 여기에는 TV 방송사가 좀 잘해보라는 압력도 있었다고 한다.
연막(煙幕, smoke screen)은 보병, 탱크, 항공기, 선박과 같은 군부대의 움직임이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뿜어내는 연기이다. 또한 연막을 이용하여 적의 시야로부터 아군의 움직임을 감추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새로운 형태로 이용되고 있는데, 레이더나 적외선 센서의 감지를 막아내기 위해서, 드론의 공격을 막기 위해, 또 적의 레이저 빛을 차단하기 위한 초밀도 형태의 기계를 사용한다.
연막제의 입자크기는 날씨에 따라 다른 효과가 있어서 입자가 크면 습도로 금방 사라질 수도 있다. 또 대기의 안정도에 따라 새벽같이 대기가 안정적이면 바닥에 깔리고 저기압시에는 위로 올라가게 된다. 교황 선출의 연기가 어떤 모양으로 나올지 자못 기대된다. 오전일지 오후일지도 관건이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연막을 치지 말라'고 하는데 이는 본심을 감추고 의도된 판단을 유도하고자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교황 선출 여부를 알리는 ‘성스러운 연기’의 색깔을 내는 방법은 물론 공개돼 있지 않다. 성스러운 의식에 걸맞은 신비주의인 셈이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배터리로도 쉽게 불이 붙고, 연소될 때 흰색 입자를 방출하는 염소산칼륨(potassium chlorate, KClO3)을 사용하리라 추측하고 있다. 검은색 연기를 낼 때에도 이 염소산칼륨에 검은 염료를 섞으면 된다고 한다.
바티칸 관계자들에 따르면 시스티나 성당에 2개의 회색 스토브에 연통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교황이 선출되면 흰색 연기, 선출에 실패하면 검은색 연기가 이 스토브와 연통을 통해 배출된다. 스토브 중 하나는 1938년에 설치된 것으로 추기경들의 교황 선출 투표지 소각용(떨어진 후보가 재검표를 하자고 소란을 피우는 것을 막기위해 투표 용지를 소각한다)이다. 2005년에 설치된 다른 하나는 적당한 연기 색깔을 내기 위한 것이다.
교황의 선출은 추기경단의 의사결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누가 어떤 이유로 당선이 될지는 원칙적으로 아무도 모른다. 트럼프거나 필자가 될 확률은 거의 0%이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교황은 세계 많은 사람의 의사를 대표한다.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리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는 듯하다. 신의 가호를 빈다.
참고문서
1. 시스티나 성당 굴뚝 ‘흰색-검은색’ 연기 어떻게 만들어질까, 한겨레신문, 2019.10.19
2. 위키미디어, 나무위키
3. Chakraborty, Monojit & Sangeeta, Bansal & Renu, M & Awasthi, Amit. (2019). Air-Pollution modelling aspects: an overview.. 10.1079/9781786393890.0079.
4.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