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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루미너리스'의 배경 호키티카

뉴질랜드 지질 기행 2

by 전영식

엘리너 캐턴(Eleanor Catton, 1985~ )의 소설 '루미너리스(Luminaries)'는 1866년 뉴질랜드 골드러시 시대, 금을 찾아 뉴질랜드 서해안 호키티카에 도착한 영국인 '월터 무디'가 우연히 12명의 남자들이 모인 비밀 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알게 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다룬다. 황도 12궁을 모티브로 한 12명의 남자들과 그들의 운명이 황금과 얽히는 이야기를 통해, 탐욕과 운명, 그리고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그려낸다. 실재 당시의 하늘에 떠 있던 천체를 작품 속 각 인물에 반영하여 스토리를 만들어갔다.


Catton_at_Guildhall_15_October_2013_•_Barrowman_Fergus Barrowman.jpg 20133년 맨부커상 시상식장에서 엘리나 캐턴, 위키미디어: Fergus Barrowman


엘리너 캐턴은 2013년에 이 작품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방대한 분량(번역판 1권 528쪽, 2권 676쪽)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구성과 흡입력 있는 스토리로 평론가와 독자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 소설은 그녀의 두 번째 소설이었지만 고 맨부커상 최연소 수상자였다. 맨부커상은 당초 영연방 출신 작가들에게만 시상을 했는데, 2013년부터는 국적에 상관없이 영국에서 출간된 영어소설로 대상을 확대했다. 캐턴은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으로 현재 국적은 뉴질랜드다.

루미너리스 표지.jpg 루미너리스 번역본 표지, 출처: 다산책방


호키티카

1875년의 호키티카 시내 전경, 위키미디어: public domain

그레이 마우스에서 6번 하이웨이를 타고 한 시간 정도(40Km) 남하하면 호키티카(Hokitika)가 나온다. 19세기 중반 골드러시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현재는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를 갖은 작은 마을이다. 인구는 3,000명(2024년 기준), 면적은 3.4㎢ (서울대공원의 2/3다)이며, 사람들은 관광업, 목축업, 임업과 포우나무(옥)에 종사하고 있다. 오후 5시만 되면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아 안 그래도 한산한 동네엔 아무도 없다.


호키티카의 시그니쳐인 타운 클럭, 뒤편에 St. Marry 성당이 보인다. ⓒ 전영식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1860년대 후반, 호키티카는 서해안에서 가장 번성하는 도시 중 하나였다. 당시 인구는 최대 25,000명에 달했으며, 100개가 넘는 호텔과 수많은 상점들이 성업하여 활기 넘치는 사회를 형성했다. 호키티카 강어귀의 항구는 국제 무역선들로 북적였고, 서해안의 금 생산량 대부분이 이곳을 통해 운송되었다. 당시 도시는 무법천지 같은 분위기도 있었으나, 동시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하구 쪽에서 찍은 Hokitika River, SH6 bridge와 서든 알파인 산맥, 위키미디어: Michal Klajban


Mouth of the Hokitika River과 SH6 bridge, 위키미디어: Eli Duke

호키티카 강의 하구에는 모래퇴적층이 있어 항구로 들나드는 배에 큰 위험이 되었다. 소설에서도 모래톱 때문에 좌초한 배의 무덤이 언급될 정도다. 물론 현재는 없다. 1.2km에 달하는 SH6 bridge는 남섬에서는 보기 힘든 제법 긴 다리이다. 위쪽 바다가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에 있는 태즈만 해이다.


포우나무


호키티카는 뉴질랜드의 소중한 광물인 포우나무(Pounamu), 즉 옥의 주요 산지 중 하나이다. 마오리어로 '그린스톤(green stone)'을 의미하는 포우나무는 마오리족에게 영적인 의미와 문화적 중요성을 지니는 귀한 돌이다. 전통적으로 포우나무는 무기, 도구, 장신구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종종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가보로 여겨졌다. 영화 <모아나>에서 나오는 녹색 돌이 그것이다.


20250421_133648.jpg Pounamu 원석, 그레이 마우스 역, ⓒ 전영식


옥은 퇴적암이나 화성암이 변성작용을 받아 생기는 변성광물이다. 채굴은 변성대를 찾아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호키티카 지역에서는 강가의 돌 중에서 옥이 포함된 바위 내지 자갈을 골라내어 이를 가공한다. 소설에서도 백인들과는 다르게 직감적으로 포우나무를 찾는 마호이 원주민이 나오는데, 그만큼 예로부터 원주민에게도 중요한 돌이었다.


오늘날에도 호키티카에는 포우나무를 가공하고 판매하는 많은 상점과 작업장이 있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아름다운 포우나무 조각품, 목걸이, 그리고 기타 공예품을 구매할 수 있으며, 일부 상점에서는 옥 세공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도 있다. 포우나무 산업은 호키티카의 경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고 방문객들에게 선보이는 역할을 한다. 가격은 착하지 않다.


Pounamu objects in the Otago Museum, 위키미디어: Szilas


골드러시


1861년 오타고 지방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뉴질랜드에서도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아 뉴질랜드로 몰려들었고, 이는 뉴질랜드 경제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골드러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새로운 금을 찾아 진행되었다. 뉴질랜드 남섬 동해안에서 시작하여 서해안까지 대략 5년 정도 걸린 샘이다. 기간 동안 새로운 정착촌이 건설되었고, 독특한 문화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곳의 금은 주로 사금이었고 그래서 강의 퇴적층에 묻혀 있던 금을 골라내는 작업을 주로 했다. 초기에는 하천변 퇴적지에서 노동집약적인 팬으로 간단하게 채굴되었지만, 사람이 몰려들고 욕심이 커지면서 고압식 물을 분사하여 강둑의 자갈층을 씻어내며 금을 채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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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을 채취하던 당시의 물대포, ⓒ 전영식


중국인 노동자 '쿨리'

소설에서도 나오듯, 골드러시 시기에 많은 중국인이 '쿨리'라는 이름으로 뉴질랜드에 와서 금광 노동자로 일했다. 정확한 숫자는 찾기 어렵지만, 금광 노동자 중 상당수를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은 주로 금광 주변에 거주했으며, 퀸스타운 부근 애로우타운(Arrowtown)에는 중국인 유적지가 남아있다. 더니든(Dunedin)에도 중국인들이 많이 정착하여 현재 차이나 가든이 세워져 있다.


호키티카 해변의 일몰


호키티카는 한때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항구 중 하나였고 수천 명의 광부와 상인 드리고 이들을 통해 한몫 잡으려는 각종 인간군상이 모였던 도시이다. 광산 지역의 운명이 그렇듯 지금은 다 떠나고 과거의 영광만 남은 작은 마을이 되었다.


20250421_174215.jpg 호키티카 해변에서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 ⓒ 전영식


호키티카의 해변에는 언제나 육지에서 떠내려온 나무들이 연안류로 이동되어 가득 메우고 있다. 관광객들은 이를 배경으로 테스만 해를 바라보며 환상적인 일몰을 즐긴다. 소설 속의 궂은 날씨는 아니지만 160년이 지난 과거의 일들이 아련하게 펼쳐지는 듯하다.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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