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지질 여행
옛날 페르시아의 왕자 '아비탄'이 당나라로 망명했다가 핍박을 받아 al sila(페르시아어 basilla)라는 나라로 망명하여 그 나라 공주인 '프라랑'과 결혼했다.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가 '페레이둔'이라는 왕자를 나았다고 한다. 이 왕자는 아버지 사후에 원수를 갚고 나라를 되찾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영국왕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중세 이란의 서사시인 '쿠시나메'에 실려있다고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교수가 발표했다(쿠쉬나메, 청아출판사, 2014). 경주에서 나타나는 유적 중 페르시아 사람으로 보이는 원성왕릉 무사상, 처용가, 페르시아 유리구슬 등 우리와 페르시아의 오래된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물론 아직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이처럼 이란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천년이 넘는 유구한 교류의 역사가 있을 수 있다. 반드시 억지로 갖다 붙였다고만 볼 수도 없다. 우리 생을 돌아보면 알듯, 천년동안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랜 우호 관계는 서울과 테헤란에 서로의 수도 이름을 딴 거리를 명명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이어졌다.
서울의 심장부인 강남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테헤란로는 1977년 6월, 당시 골람레자 닉페이 테헤란 시장의 방한을 기념하여 명명되었다. 본래 ‘삼릉로’로 불리던 이 거리는 양국의 우호 증진을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테헤란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오늘날 테헤란로는 대한민국의 정보 기술(IT)과 벤처 기업이 밀집한 ‘테헤란 밸리’로 불리며, 명실상부한 경제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에 화답하여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도 '서울로(Seoul Street)'가 있다. 테헤란 북부, 엘부르즈 산맥을 배경으로 자리한 서울로는 테헤란로의 화려함과는 달리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록 서울의 테헤란로만큼 번화하지는 않지만, 이 길은 양국 간의 변함없는 우정을 상징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두 도시에 존재하는 서로의 이름은 양국이 쌓아온 신뢰와 협력의 역사를 증언하는 살아있는 기념비라 할 수 있다.
2025년 6월 20일(현지 시각), 이란 북부 셈난(Semnan) 주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미국의 이란 공습 바로 전에 발생해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2025년 6월 20일 17시 49분 14초 (UTC)에 규모 5.1 (Mw)로 발생했다. 진앙은 북위 35.376°, 동경 53.070° (이란 셈난 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36km 떨어진 지점), 진원의 깊이는 10.0 km였다. 진원의 깊이가 비교적 얕아, 지표면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상대적으로 컸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란 국영 통신 등 현지 언론은 일부 오래된 건물에 경미한 피해가 있었으나, 심각한 인명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진 발생 지역인 셈난 주 인근에는 이란의 우주 및 미사일 개발 시설이 위치해 있어, 일각에서는 이번 지진이 핵실험이나 대규모 폭발로 인한 인공지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최근 이스라엘과의 군사적 충돌 상황이 이러한 추측을 더욱 부추겼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번 지진은 인공지진이 아닌 자연지진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일반적으로 자연지진과 인공지진은 지진파의 형태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자연지진은 단층의 움직임으로 인해 발생하므로, 압축파(P파)에 비해 전단파(S파)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난다. 반면, 핵실험과 같은 인공지진은 폭발에 의한 팽창력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P파가 월등히 강하고 S파는 미미하게 관측된다. 전 세계 지진 관측소에서 분석한 이번 지진의 파형은 전형적인 자연지진의 특성을 보였다.
또한 이란은 유라시아판과 아라비아판이 충돌하는 경계에 위치하여, 지각 활동이 매우 활발한 국가이다. 특히 이번 지진이 발생한 셈난 지역을 포함한 이란 북부와 서부는 주요 단층대가 지나가는 곳으로, 크고 작은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따라서 규모 5.1 정도의 지진은 이 지역의 지질학적 환경에서 충분히 발생 가능한 자연 현상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 등 세계 유수의 지진 연구 기관들은 모두 이번 지진을 자연적인 지각 활동의 결과로 공식 발표했다. 따라서 군사적 긴장이라는 시기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인 데이터와 지질학적 분석에 근거할 때 2025년 6월 20일 이란 셈난 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자연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거대한 산맥과 고원으로 특징지어지는 이란의 지형
이란은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900미터가 넘는 이란 고원(Iranian Plateau)으로 이루어진 산악 국가이다. 광활한 고원을 중심으로 거대한 산맥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독특한 지형 구조를 가진다. 이란의 지형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자그로스 산맥 (Zagros Mountains)
이란의 등뼈와도 같은 자그로스 산맥은 국토의 서부와 남서부를 따라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약 1,500km에 걸쳐 활처럼 길게 뻗어 있다. 이 산맥은 아라비아판이 유라시아판 아래로 파고들면서 대규모의 습곡 작용을 통해 형성된 전형적인 습곡 산맥이다. 수많은 봉우리들이 해발 3,000미터를 넘으며, 최고봉인 자르드쿠(Zard-Kuh)는 4,200미터를 상회한다.
자그로스 산맥은 여러 개의 평행한 산줄기들이 연이어 나타나며, 그 사이사이에 좁고 긴 계곡과 분지가 발달해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은 고대부터 이 지역의 교통과 교류에 영향을 미쳤으며, 동시에 외부의 침략을 막는 자연적인 방어벽 역할도 수행했다. 또한, 산맥에서 발원한 카룬강 등은 이란 남서부 후제스탄 평야에 비옥한 토양을 공급하는 생명의 젖줄이 되고 있다. 지질학적으로는 석회암과 셰일층이 주를 이루며, 세계적인 석유 및 천연가스 매장 지대이기도 하다. 이는 고대 테티스해에 퇴적되었던 유기물들이 지각 변동 과정에서 높은 압력과 열을 받아 변성된 결과이다.
2. 엘부르즈 산맥 (Alborz Mountains)
이란 북부, 카스피해 연안을 따라 동서로 뻗어 있는 엘부르즈 산맥은 폭은 좁지만 매우 험준한 산맥이다. 이란의 최고봉이자 유라시아 대륙에서 힌두쿠시 산맥 서쪽에서 가장 높은 화산인 다마반드산(Mount Damavand, 5,610m)이 이 산맥에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다마반드산은 지금은 활동을 멈춘 성층화산이지만, 정상 부근에서는 여전히 유황 가스가 분출되는 등 화산 활동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엘부르즈 산맥은 북쪽의 습한 카스피해 기후와 남쪽의 건조한 고원 기후를 나누는 중요한 기후 경계선 역할을 한다. 산맥의 북사면은 카스피해에서 불어오는 습한 공기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풍부하여 울창한 숲을 이루는 반면, 남사면은 비그늘 효과로 인해 매우 건조하고 황량한 스텝 기후가 나타난다. 수도 테헤란이 바로 이 엘부르즈 산맥의 남쪽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3. 중앙 고원 및 사막 지대
자그로스 산맥과 엘부르즈 산맥에 둘러싸인 이란의 중심부는 광활한 중앙 고원이 차지하고 있다. 해발고도 평균 약 900미터의 이 고원은 강수량이 극히 적어 대부분 건조한 스텝 또는 사막 기후를 보인다. 특히 고원의 동쪽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루트 사막(Dasht-e Lut)과 거대한 소금 사막인 카비르 사막(Dasht-e Kavir)이 펼쳐져 있다.
이 사막들은 바다로 흘러나가지 못하는 내륙 분지에 형성되었으며, 높은 증발량으로 인해 염분과 광물질만 남아 독특한 지형을 만들어낸다. 카비르 사막은 넓은 지역이 두꺼운 소금층으로 덮여 있고, 루트 사막은 바람에 의해 침식된 기암괴석(야르당, Yardang)이 장관을 이룬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오아시스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거의 거주하지 않는다.
4. 해안 평야
이란의 저지대는 북쪽의 카스피해 연안과 남쪽의 페르시아만 및 오만만 연안에 좁게 분포한다. 북쪽의 카스피해 연안 평야는 엘부르즈 산맥과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하며,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습윤한 기후 덕분에 이란의 주요 농업 지대 중 하나이다. 쌀, 차, 감귤류 등이 활발하게 재배된다. 반면, 남쪽의 페르시아만 연안 평야는 폭이 더 좁고 길며, 전형적인 고온 건조의 사막 기후를 보여 농업에는 불리하지만, 이란 석유 산업의 핵심적인 항구와 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움직이는 땅' 이란의 지질학적 특성과 지진
이란의 지형적 특성은 그 아래에 놓인 역동적인 지질 활동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이란은 지질학적으로 ‘불의 고리’에 비견될 만큼 지진 활동이 활발한 지역으로, 이는 거대한 지각판들의 상호작용 때문이다.
이란은 유라시아판(Eurasian Plate)의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남서쪽에서는 아라비아판(Arabian Plate)이, 동쪽에서는 인도판(Indian Plate)이 북쪽으로 이동하며 충돌하고 있다. 특히 아라비아판은 매년 약 2~3cm의 속도로 유라시아판을 향해 북동쪽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이 거대한 힘이 이란의 지각을 압축하고 밀어 올려 자그로스 산맥과 같은 거대한 습곡 산맥을 형성했다.
이러한 충돌 과정에서 이란 전역에는 수많은 단층(Fault Line)이 발달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단층으로는 자그로스 산맥을 따라 형성된 주 자그로스 역단층(Main Zagros Reverse Fault), 수도 테헤란 북쪽을 지나는 북테헤란 단층(North Tehran Fault), 그리고 이란 동부를 가로지르는 여러 주향이동단층 등이 있다. 이 단층들은 판의 충돌로 인해 축적된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통로 역할을 하며, 이 과정에서 파괴적인 지진이 발생한다. 이란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대부분은 이 주요 단층대와 그 주변에서 일어난다.
이란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대부분 진원의 깊이가 얕은 천발지진(Shallow-focus earthquake)이다. 이는 두 대륙판이 직접 충돌하면서 지표면 가까운 곳에서부터 지각이 부서지고 변형되기 때문이다. 진원이 얕은 지진은 동일한 규모의 심발지진에 비해 지표면에 훨씬 더 큰 피해를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판의 충돌 형태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지진이 발생한다. 자그로스 산맥 지역에서는 아라비아판이 유라시아판을 밀어 올리면서 발생하는 역단층(Reverse fault) 지진이 주를 이룬다. 반면, 이란 동부 지역에서는 판이 서로 엇갈리며 미끄러지는 주향이동단층(Strike-slip fault)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번 2025년 6월 20일 셈난 주에서 발생한 지진 역시 이러한 지각판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축적된 에너지가 단층을 따라 방출되면서 발생한 천발지진으로 분석된다.
이란의 지질학적 활동성은 지진뿐만 아니라 화산 활동으로도 나타난다. 아라비아판이 유라시아판 아래로 섭입 하면서 마그마가 형성되고, 이것이 지표로 분출하여 화산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란 북서부에서 남동부로 이어지는 화산대는 이러한 과정의 산물이다. 엘부르즈 산맥의 다마반드산을 비롯하여 사발란(Sabalan), 사한드(Sahand) 등이 대표적인 화산체이다. 이들 대부분은 현재 활동을 멈춘 휴화산이지만, 지질학적으로는 여전히 활동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류되며, 이는 이란의 땅 아래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결론적으로, 이란의 험준한 산맥과 광활한 고원, 그리고 빈번한 지진은 모두 아라비아판과 유라시아판의 거대한 충돌이라는 판구조론적 활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란의 지형과 지질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역동적인 지구의 힘이 빚어낸 거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질학으로 만들어지고 살아가는 전형적인 나라이다.
이란은 인구 9,061만(세계은행, 2023)의 대국이다. 미국이 수십 년간 경제제재를 해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풍부한 자원덕에 지금까지 끄떡없었다. 세속화된 투르키에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신해 이슬람의 지역맹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3년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이후, 시리아의 붕괴,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당선 등 급격한 정세 변화로 구석으로 몰린 상황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역사를 통해 보면 지나가게 마련이고 또한 미래는 올 것이다. 지정학적인 위기가 어떤 식으로 끝나고 역내에 새로운 균형점이 생기는 시점에 우리는 정확한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이란은 한류의 원조격인 나라다. 2003년 '대장금'이 방영될 당시에는 9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앞으로도 이란과의 관계를 지혜롭게 설정하고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희수 교수 “신라와 이슬람 교류사 비밀 밝힐 보물 창고”, 동아일보, 2014-01-27
전영식,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