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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제주 방언. 번역 없이도 볼 수 있네?

by 제니앤


남편 따라 제주도에 온지 이제 4년차다.


제주도에서 살게 되다니 다들 좋겠다고 부러워했는데, 나는 이곳이 영 타지 땅 같아서 외롭고 낯설었다. 비행기 타고 와야 하고 배 타고 와야하고 육지랑 떨어져 있다 보니, 외국이 아닌데도 외국에 살고 있는 느낌. 첫 애가 돌 될 무렵 여기에 왔는데, 가족의 도움도 친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이 진정한 독박 육아를 하며 제주에서의 첫 1년이 참 힘들었다. 거기엔 낯선 말도 한몫 했다. 지역 공동체에 스며들지 못하고 계속 타지 사람으로 겉도는 느낌이었달까.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고, 같은 반 아이 엄마들과 연락처를 주고 받고 단톡방을 만들게 되었다. 그 엄마들은 제주도 토박이였고 나만 '육지 사람' 이었는데, 그들끼리 이야기하다보면 나를 의식하지 않고 제주 방언으로 톡을 주고 받았다. 그 대화를 보다보면 당최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데령 살라캔."


"어멍네 오늘도 못가클."


'캔, 클, 맨, 마씸' 등등 생전 처음 본 어미들의 향연에 한국어가 맞나 싶었다. 이들은 사투리를 심하게 쓰시는 어르신들도 아니고 내 또래 젊은 엄마들이었는데도, 외국어를 한글로 옮겨 적었나 싶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근데 아까 말한 데령 살라캔 이 무슨 말이야?"


한참을 혼자 고민하다가 '에라이, 궁금하니까 물어보자' 하고 그 엄마들에게 사투리가 궁금할 때마다 물어보았다. 내 우려와는 달리 그들은 흔쾌히 사투리 과외 선생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또래 엄마들에게 사투리를 배우고 사투리로 이루어지는 톡에도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새 나도 조금씩 제주 방언을 쓰고 있었다.


제주 방언은 어미가 유난히 짧다. 뱃일과 물질을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다보니, 길게 말하면 전달이 어려워 말끝이 더욱 짧아졌다고 한다. 게다가 심한 바람 때문에 말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것도 한몫 했다. 이렇게 어미가 짧은 문장을 쓰다 보니 너무 편해서, 끝까지 말해야 하는 서울말이 오히려 나는 귀찮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서울말로는 "밥 먹었어?"가 제주 방언으로는 "밥 먹언?" 만 하면 끝이니 참 효율적이다.


제주 방언을 하나, 둘 배우면서 육지 친구들에게도 써 먹어 보았는데 정말 하나같이 아무도 못 알아들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제주 방언은 다른 지역 방언들에 비해 더욱 잘 알려지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경상도 분들이라 어릴 때부터 경상도 방언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경상도 사투리는 통역 없이도 잘 알아들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지라도 TV나 다른 대중매체에서 경상도나 전라도 방언이 자주 노출되면서 더욱 익숙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제주 방언은 드라마에서 메인으로 쓰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 새로 나온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대사의 대부분이 제주 방언으로 이루어져서 신선했다.



나는 제주도 온 지 1~2년은 지나서야 사투리가 익숙해졌는데 이 드라마 배우들 대단하네, 토박이들은 좀 어색하게 느낄지 몰라도 나는 완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요즘 제주 방언을 연구해서 만들었나 보다, 배우들은 어떻게 연습했지? 싶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하단의 번역이 거슬릴 만큼 사투리를 듣고 이해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그만큼 내가 제주도 살이에 익숙해졌구나, 신기하면서도 반가웠다. 드라마 내용보다 사투리가 재밌어서 본 드라마는 이게 처음일거다.


제주 방언엔 'ㅇ' 소리가 많이 들어가서 동글동글하면서 소리가 정감 있고 예쁘다. 이병헌, 차승원, 이정은, 신민아 등 호화 캐스팅에 이미 드라마는 넷플릭스 1위를 달리고 있지만, 투박하지만 이색적이고 귀여운 우리말인 제주 방언을 듣는 재미로도 이 드라마가 계속 흥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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