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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스마트폰

by 제니앤

"엄마, 핸드폰 좀 그만하고 나 봐봐."


"아빠, 게임 좀 그만해."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찔렸던 아이의 말.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핸드폰 하지 말아야지, 수백 번 마음 먹다가도 허하고 심심한 마음에 늘 붙들었던 스마트폰. 정말 스마트폰은 내 영혼의 단짝임에 틀림없다. 이렇게나 나를 채워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스마트폰아, 너야말로 나를 추앙해주고 있구나.


스마트폰은 나의 피난처이자 쉼터다. 심심할 땐 드라마와 예능과 각종 컨텐츠들을 제공해 주고, 여러 단톡방들과 sns 알림은 나로 하여금 무료하고 우울할 틈이 없게 만든다. 스마트폰과 함께라면 나는 세상 바쁘고 즐겁고, 충분하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들은 아직 이 스마트폰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모른다. 그저 자꾸 엄마를 자기들에게서 빼앗아가는 존재일 뿐. 한참 놀다가도 "잠깐만, 잠깐만, 엄마 이거 카톡 답장 좀 보내고.", "어, 어, 알았어, 잠깐만. 이것만 확인할게." 하면서 시선과 집중이 스마트폰에게로 쏠린다. 아이들은 뚱하니, 불만스러운 얼굴이다.


좋아!


너희들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엔 스마트폰 안 할게. 아침에 일어나서 어린이집 등원 하기 전. 어린이집 하원 후 밤에 잠들기 전. 하루에 7-8시간 정도. 스마트폰을 끊어 보자!


그렇게 야심차게 이번주 월요일을 시작했고, 이제 작심삼일이 지나고 있다.






1. 아이들이 많이 웃는다


 까르르 깔깔 아주 숨 넘어가게 웃는다. 아이들이 신나게 웃어 제끼는데 스마트폰이 손에 없어서 못 찍은 게 아쉽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렇게 다양한 눈빛과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구나 싶다. 덕분에 잘 준비를 하려면 아이들 저항이 좀 더 거세다. 엄마아빠랑 더 놀고 싶다는 어필을 마구 해댄다.



2. 오랜만에 종이책을 편다. 


아이들이 TV를 보는 타임. 나도 같이 앉아 보기엔 아이가 너무 똑같은 걸 반복해 봐서 지루하다. 아이는 본 걸 또 봐도 지겹지가 않은가? 맘에 드는 게 있으면 같은 걸 또 보고, 또 보고 한다.


이 시간에 내가 스마트폰을 안 하면 뭘 하지?


좋은생각 에세이 공모전 수상 후 부상으로 받은 1년 정기구독권. 안 읽은 좋은생각 잡지가 한쪽에 쌓여간다. 이미 7월이 되었지만 6월호를 집어 든다. 어쩜 이렇게 일상 속에 좋은 이야기들이 많을까? 4천원짜리 잡지에서 배우는 인생이 많다.


아이들의 질투는 이제 스마트폰에서 책으로 옮겨간다. 둘째가 재빨리 와서 자기 것이라며 잡지를 빼앗아 간다.




3. 쉼


스마트폰이 손에 없으니 처음엔 불안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내가 어색했다. 내가 뭔가 많이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단톡방에서, SNS 에서 즐거운 일들이 잔뜩 일어나고 있는데 나만 빠진 것 같다.


며칠이 지나니, 내가 들리지 않는 소음에 시달려 왔다는 걸 깨달았다. 스마트폰은 무음으로 돼 있지만 재빠르게 올라오는 각종 알림들. 나도 빨리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까봐 조바심 냈던 순간들. 조급히 움직이던 마음과 손을 멈추니 진정한 침묵이 찾아왔다. 처음엔 낯설었던 그 침묵이 이제 내게 진짜 쉼을 가져다 주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편안하다.


 이제는 아이들도 나도 이 새로운 습관이 마음에 든다. 이 습관이 완전히 자리잡을 때까지 꾸준히 이어가 봐야지. 굿바이,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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