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전 10시 남편과 달리기

by 제니앤

"안 추워?"


남편이 점퍼도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얇은 저지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왔다.


"응, 안 추운데?"


대답을 듣고 나니 왠지 내가 입고 있는 오리털 패딩이 과하게 부한 것 같다. 결국 나도 패딩을 차에 벗어 두고, 러닝벨트를 티셔츠에 찬 뒤, 트랙에 들어선다.


월요일 오전 10시.

동네 공원 조깅 트랙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남들 다들 일하느라 바쁜 이 시간에 부부가 달리기를 시작한다.




지난 주 금요일, 남편은 의사 국시의 마지막 필기 시험을 보았다. 4년 동안의 공부가 드디어 끝이 났다. 작년 10월에 봤던 실기 시험에 합격했고, 올해 본 필기 시험을 가채점 해 본 결과, 곧 의사 면허가 나올 것 같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평일 아침에 한가하게 달리기나 하고 있는 것이다.


진로를 고민하던 남편은 5년 전에 중위로 전역하고, 1년 동안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공부를 했다. 전국의 의전원에 다 떨어지고 오직 제주대학교 의전원에 붙었다. 그래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달랑 우리 세 식구가 오게 된 거였다. 생활비는 모아 놓은 돈을 쓰다가 다 떨어지면 마이너스 통장을 써야겠다며 우리는 별 대책도 없었다.


"의대생한테는 마이너스 통장을 잘 만들어준대. 졸업만 하면 금방 갚을 수 있으니까."


철없는 우리에게 양가 부모님이 지원을 해주셨다. 우리 부모님은 의사 사위 보겠다는 일념으로, 시부모님은 결혼할 때 보태준 것이 많지 않다며 이번 기회에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양가 부모님의 지원에, 남편은 4년 내내 장학금을 탔다. 의대 공부는 어려웠지만 남편에게 잘 맞았고 남편은 공부를 재밌어했다. 의대생 아빠로 어느 새 아이가 둘이 되었다. 의대 공부 4년이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그 끝이 드디어 온 것이다.


남편에겐 이제 꿀 같은 두 달의 휴가가 있다. 3월부터는 병원에서 인턴으로 수련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두 달 동안 뭐하고 놀 거냐고, 그 시간에 배송 기사라도 해서 돈 좀 벌어오라고 타박했지만, 남편은 쉬고 싶다고 했다. 막상 쉬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뾰족했던 내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래, 당신, 4년 동안 가시방석에서 공부하느라 고생했지, 쉬는 게 좋겠다.


두 달 간 우리는 달리기도 하고, 제주도 오름을 오르기도 하고, 복잡한 집안 곳곳을 비우기도 하고, 아이들과 마음 편히 놀아 주고, 푹 자면서, 휴식을 누리기로 했다. 이제 우리에게 언제 또 올지 모를 긴 휴가를 제대로 쉬어 보자.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히 또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지금 쉬는 대신 오래오래 돈 벌어와야 해, 여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손은 약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