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힐링

by 제니앤

어젯밤, 극심한 두통이 시작되었다. 둘째가 얼마 전 코감기에 걸렸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나도 옮아버린 것 같았다. 코 안쪽부터 물코로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 몇 번 훌쩍이고 코를 풀어도 나오지 않는 경험을 한 뒤, 머리 전체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난 꼭 코가 막히면 머리가 아프더라."

이런 두통은 두통약을 먹어도 좋아지지 않는다. 콧물과 코막힘이 해결될 때까지 기분 나쁘게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법이다. 밤에 두통에 시달리며 꼭 해야할 일들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미션 리더로 지금 두 가지의 미션을 이끌고 있는데, 이 미션을 준비하는데에만 하루에 2시간 30분이 걸렸다. 아픈데 쉬지 못하다니, 안 돼. 너무 무리하고 있네. 미션 리딩은 조만간 좀 쉬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여전히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이다. 다시 그 기분 나쁜 두통이 시작되었다. 머리가 아프니 아이들의 요구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내가 보인다. 남편은 엄마에게 된통 당한 둘째 아이를 달래면서 약을 권했다. 혹시나 싶어 먹었지만 역시 효과가 없었다.

"거 봐. 두통약은 소용 없다니까. 빨리 이비인후과 다녀와야 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단골 이비인후과에 갔다. 내 앞에 15명이나 대기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틈새 시간에 영어공부든, 독서든 하고 있을텐데, 아프니까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러고서 넷플릭스에 저장해둔 재벌집 막내아들을 틀었다. 2화를 보는데, 회장님이 초밥을 먹는다.

'아, 나도 연어초밥 먹고 싶다.'

그동안 점심은 계속 집밥을 먹었다. 냉장고를 파내서 잡곡밥과 쌈채소를 곁들여, 싸고도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 애썼다. 오늘은 아프니까, 먹는 것에도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아. 점심은 연어초밥을 사먹자.

코 안쪽 깊숙한 곳까지 막고 있던 콧물들이 의사 선생님의 석션에 쑤욱 빨려나왔다. 코가 시원해지면서 곧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두통도 사라졌다.

"머리만 안 아파도 살 것 같네. 진짜 안 아픈 게 제일이야."

아플 땐 왜 더 배가 고플까. 아침도 평소보다 많이 먹은 편이었는데 10시부터 배가 고팠다. 연어를 먹고 싶은데, 연어 집은 11시에 연다. 순간 24시간 하는 순두부찌개 집에 갈까 싶었다. 아니야, 먹고 싶었던 것, 맛있는 걸 먹자. 아프니까.



연어 집에 왔다.


평일 오전 11시엔 아무도 없었다. 집과는 달리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식당이, 따스한 조명과 브라운 톤의 인테리어가 마음에 든다.




따뜻한 장국이 맛있었다. 제주도는 춥지도 않은데, 따뜻한 국물이 희한하게 땡겼다. 호록 호로록, 장국을 셀프 바에서 몇 그릇이나 리필해 와 마셨다.






먹고 싶었던 연어 초밥이 왔다. 간장에 찍어먹어도 맛있고, 양파 샐러드와 함께 먹어도 맛있었다. 10p. 한 피스, 한 피스 먹는 게 아까웠다. 맛있었다. 다 먹고 나니 더 먹고 싶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포만감이 느껴지면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왜 초밥은 늘 흰밥으로만 만들까? 잡곡밥 초밥을 파는 집도 있을까? 희한한 의문을 떠올리며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아유, 염색을 오래 안 하셨네."

염색을 하러 왔다. 염색을 그동안 얼마나 안 했던지 까만 머리가 귀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원장님은 샵 블로그에 샘플로 쓰시려고 나의 비포 머리를 사진으로 찍으셨다. 흰머리도 매우 많이 나와서, 아이에게 흰머리 한 올에 20원을 주기로 했는데, 아이는 흰머리를 뽑아 500원이나 벌었다.

원장님은 뿌리부터 꼼꼼히 염색약을 발라 주신다. 머리카락일지라도, 돌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래서 미용실은 늘 나의 힐링 코스에 포함된다.


랩을 야무지게 감싸 주셨다. 어쩐지 어느 영화에서 본 외계인 같지만, 염색이 잘 될 것만 같다. 색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하고 티비를 본다.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돈 아낀다고 몇 달을 안 오던 미용실. 아프니까 왔다.

오늘 애들은 소세지나 구워줘야겠다. 국은 아마 과거의 내가 얼려놓은 미역국이 있을거야. 염색 끝나고 집에 가면 아이들 데리러 갈 때까지 좀 더 쉬어야겠다. 쉼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줘서 고마워, 내 몸아. 아파서 힐링이었어. 오랜만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전 10시 남편과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