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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앤 Aug 22. 2023

엄마와 주부의 삶도 충분히 아름다운 걸

책 『취향 육아』를 읽고


요즘 이 책을 읽는 중인데 매 챕터마다 너무 좋아서 반하는 중이다.



'짓다'란 동사를 좋아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니까 내게 필요한 것들을 살뜰히 지어주신 분들의 수고를 떠올리게 된 후로. 육아하고 살림하며 글을 쓰는 요즘 나의 생활은 온통 '짓는'일로 고여 드는구나, 하는 걸 스르르 알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나는 온갖 것을 - 모락모락 밥을 짓고, 편안한 공간을 짓고, 잘 마른 옷을 다려 새 옷처럼 좋게 짓고, 복사꽃처럼 웃음 짓고, 안개처럼 한숨짓고, 가만 눈물짓고, 그날 집 안의 공기와 온도를 지어다 얼기설기 생활을 짓고, 숫제 마음을 짓고, 복받친 감정의 이름을 짓고, 아른아른 꿈을 짓고, 가족의 이야기와 기억을 너울너울 지어서는 또 그렇게 소복소복 글을 - 짓는다. '짓다'란 말 안에는 기본적인 생활을 직접 만들어가는 이의 단단한 주도성과 정성 깃든 보드라운 마음이 나란히 녹아 있다. p59



전업주부로, 아이 둘 엄마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다보면 내 삶이 하찮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단지 엄마로, 주부로 사는 삶이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보여준다. '짓다' 라는 단어로 풀어낸 엄마와 주부의 삶을 보라. 아름답다. 괜시리 내가 엄마인 것이, 주부인 것이 고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왠지 위로받는 느낌이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이 세상 속에서,


'그냥 그렇게 집에서 천천히, 집안과 가정만 돌보고 살아도 괜찮아요.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있어요. 이봐요, 아름답잖아요. 당신도 그래요.'


라고 내게 말해주는 것 같다. 세상에 뒤쳐져서 쫓기던 내 마음이 안도감을 얻는다. 엄마로만 살아도 괜찮아. 주부로만 살아도 괜찮아.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되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돼. 지금 모습 그대로 충분히 아름다워.


이 책은 매 챕터, 느리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주부와 엄마의 삶을 아름답고 가치롭게 볼 수 있게 해 준다. 메리 카사트의 그림을 보여주는 부분도 그렇다.


메리 카사트, 젊은 엄마의 바느질, 1900



그림 속 엄마는 무심히 바느질을 하면서 아이에게 몸을 내어주고 있다. 걸리적거리니 비키라고 할 법도 한데, 무릎을 내어주고 한쪽 팔을 약간 들어올려 아이에게 품을 내어준다. 아이는 그런 엄마가 당연하다는 듯, 흔들림 없는 눈빛과 폼으로 엄마에게 기댄다. 엄마이자 주부로, 현실의 삶을 살아내는 이 여인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워 보인다.


주부로, 엄마로 살면서 집안과 가족들의 온갖 시중을 받아내다 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이러려고 대학을 나왔나 싶고, 꿈 많고 능력 있던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갔나 싶다. 엄마와 주부라는 역할 속에 나의 자아는 푹 파묻혀 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듯, 한 걸음 떨어져 나를 바라본다면, 지금을 충실히 살아내고 있는 내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웅크린 어깨를 다시금 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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