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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혜 Oct 29. 2024

오랜만에 외로움을 엿보다

요즘 매일 여행 예능만 본다. 지구마불 세계여행 시즌1과 2를 다 봤고,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1을 시작했다. J인 나로서는 P들의 여행이 흥미롭기만 하다. 나는 절대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언젠가 저렇게 훌쩍 떠나보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태계일주의 기안84는 지구마불보다 더 심각한 무계획이다. 아무 대책 없이 떠난 여행 첫 날, 도와줄 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그는 자꾸만 주문에 실패하고 먹고 싶었던 걸 못 먹는다. 시원한 콜라를 마시고 싶은데 "냉장고에 있는 콜라 어디에 있어요?" 를 묻지 못해 결국 상온에 있던 콜라를 사 오고, 치킨을 먹고 싶었지만 또 말을 못해서 닭가슴살 비빔밥만 사 온다.


혼자 호텔 방 바닥에 앉아 저녁 거리를 먹으면서 그는 외롭다고 절규한다. 얼마나 청승 맞아 보이는지 엄마로 빙의해서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려 주면서 잔소리를 왕창 퍼붓고 싶은 욕구가 든다. 그러면서도 너무 현실적이라서 안쓰럽다.





오랜만에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상태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아, 맞아, 외로움이 저런 거였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정신없이 아이들과 남편과 부대끼는 통에 몇 년 간은 외로움이 뭔지 잊고 살았다. 그러면서 혼자 있기를 많이 꿈꾸곤 했다. 혼자라면 많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울 거라고 상상했다.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낯선 땅에서, 완전히 혼자, 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 날, 진짜로 외롭겠다. 외로우면서 동시에 우울하고 쓸쓸하고 심심하고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그런 기분. 알 것 같다. 그 외로움은 고통스러운 것이라서 사랑과 우정과 안정적인 관계를 추구하게 되곤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새삼 지금 내가 속한 관계들에, 때로는 밉고 지긋지긋했던 사이들에,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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