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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앤 Oct 30. 2024

주부의 점심은 외롭지만 그래도

오전 11시. 출출하다. 점심 먹을 시간이다. 냉장고를 열어 오늘의 점심을 꺼내 본다.


메인은 어제 저녁으로 끓였다가 남은 닭장국이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 첫째도, 둘째도 잘 먹었던 메뉴인데 어제는 둘째가 먹지 않아 아까웠다. 왜 갑자기 또 취향이 바뀌셨을까.


괜찮아, 뭐.

내가 먹으면 되니까.


요리했는데 식구들이 안 먹으면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부 7년차는 이제 그러지 않지. 식구들이 잘 안 먹을 수도 있으니까 무조건 내가 잘 먹고 좋아하는 걸 요리한다. 닭 한 마리 대신 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닭가슴살을 넣고, 포슬포슬하고 맛 좋은 감자를 넣어 꼬숩게 끓였다. 애들은 국에 넣은 감자를 잘 안 먹는데 떠줄 때 감자만 빼고 떠주면 되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들면 남아서 다음 날 먹어도 괜찮고, 집밥으로 식비를 아꼈다는 뿌듯함도 지킬 수 있다.



오늘 점심은 이렇게 닭장국과 까만 점이 점점 늘어가는 바나나와, 귤과 홍시, 방울토마토, 그리고 그릭요거트 하나다. 점심에 내가 먹고 싶은 걸, 내가 먹을 만큼 먹을 있다는 주부의 특권. 다른 식구들이 잘 안 먹는 걸 털어내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맛있으니까 괜찮아.


넓다란 식탁에 나만 먹을 만큼 차리고 혼자 앉으면 가끔 외로운 기분이 든다. 조용하고 텅 빈 집안이 혼자 앉은 자리로 훅 덮쳐 오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내게는 차주부가 계시지.



삼시세끼 라이트를 켜놓고 차셰프의 요리 솜씨를 보노라면 웬일인지 외롭지 않다. 나 말고도 남을 위해 요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 라는 위안이랄까. 먹고 사는 삶의 중요성과 필수불가결함이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랄까.


예능 프로그램을 반찬 삼아 점심을 맛나게 먹고 일어난다. 자, 이제 또 일해야지. 설거지, 빨래, 청소.


먹고, 사는 일들. 사소하지만 안 할 수 없는 것들.


배가 든든하니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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