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은 어제 저녁으로 끓였다가 남은 닭장국이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 첫째도, 둘째도 잘 먹었던 메뉴인데 어제는 둘째가 먹지 않아 아까웠다. 왜 갑자기 또 취향이 바뀌셨을까.
괜찮아, 뭐.
내가 먹으면 되니까.
요리했는데 식구들이 안 먹으면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부 7년차는 이제 그러지 않지. 식구들이 잘 안 먹을 수도 있으니까 무조건 내가 잘 먹고 좋아하는 걸 요리한다. 닭 한 마리 대신 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닭가슴살을 넣고, 포슬포슬하고 맛 좋은 감자를 넣어 꼬숩게 끓였다. 애들은 국에 넣은 감자를 잘 안 먹는데 떠줄 때 감자만 빼고 떠주면 되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들면 남아서 다음 날 먹어도 괜찮고, 집밥으로 식비를 아꼈다는 뿌듯함도 지킬 수 있다.
오늘 점심은 이렇게 닭장국과 까만 점이 점점 늘어가는 바나나와, 귤과 홍시, 방울토마토, 그리고 그릭요거트 하나다. 점심에 내가 먹고 싶은 걸, 내가 먹을 만큼 먹을 수 있다는 건 주부의 특권. 다른 식구들이 잘 안 먹는 걸 털어내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맛있으니까 괜찮아.
넓다란 식탁에 나만 먹을 만큼 차리고 혼자 앉으면 가끔 외로운 기분이 든다. 조용하고 텅 빈 집안이 혼자 앉은 자리로 훅 덮쳐 오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내게는 차주부가 계시지.
삼시세끼 라이트를 켜놓고 차셰프의 요리 솜씨를 보노라면 웬일인지 외롭지 않다. 나 말고도 남을 위해 요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 라는 위안이랄까. 먹고 사는 삶의 중요성과 필수불가결함이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랄까.
예능 프로그램을 반찬 삼아 점심을 맛나게 먹고 일어난다. 자, 이제 또 일해야지. 설거지, 빨래, 청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