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이 걸리적거려."
주짓수할 때 손톱, 발톱이 길면 상대방을 다치게 할 수 있고, 내 손과 발도 다칠 위험이 있어 손발톱은 항상 짧게 깎고 체육관에 간다. 그래서 나는 손톱이 짧은 채로 지내는 것이 편해졌는데, 지금 손톱이 길어서 걸리적거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밀접접촉자가 되었다. 작년에 같은 일이 있었을 때 2주간 등원을 못했는데, 그래도 올해는 완화되어서 일주일 등원 금지다. 하지만 일주일 뒤에 붙어 있는 신학기 준비 방학. 결국엔 또 2주 어린이집에 못가게 생겼다. 그 2주 동안 주짓수도 못 가게 생겼다. 내 유일한 취미 생활도 2주 동안 멈춤.
하루에 1시간 다녀오는건데 그 1시간을 아이들이 허용해주지 않는다. 다른 가족, 친척들과 떨어져 우리 식구만 제주도에 내려와 살게 되고, 남편은 바빠서 시간을 자주 같이 보내지 못하다 보니, 아이들은 둘 다 엄마 껌딱지로 자랐다. 아빠가 봐주려고 해도 10분 안에 "엄마" 를 부르며 울고 떼쓰는 아이들. 아이들의 울음 소리와 짜증에 예민한 남편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이다.
"아이들을 체육관에 데려가 볼까?"
잠깐 상상해 본다. 1분도 안 돼 "엄마 놀아줘, 안아줘." 하며 달라붙을 아이들. 같이 주짓수 수업을 듣기에는 아직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 어서 커서 같이 다닐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슴이 답답하고 갑갑하고 막막하다. 앞으로 2주 간 나를 위한 시간은 허락되지 않고, 아이들에게 내 시간과 체력과 마음을 전부 써야할 것이다. 자유가 사라졌다.
잠시 생각해본다. 내가 주짓수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아이들을 맡길 데도, 봐줄 사람도 없다. 그럼 방법이 없다.
"관장님, 저 운동 2주 동안 정지해 주세요."
어차피 안될 일에 집착해서 얻는 건 없다. 속상해 하고 우울해 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럴수록 더욱 나만 힘들 뿐이다.
주짓수는 2주간 정지하고, 어떻게든 가보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어쩔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 삼기로 했다. 분주하고 활기롭게 돌아가던 일상은 잠시 멈추고, 아이들과 같이 그냥 먹고 놀고 자는 시간으로. 이 시간 동안 아이들과 더 눈 마주치고, 더 자주 웃고, 아이들의 귀엽고 예쁜 모습들을 더욱 담아 보자.
존스홉킨스 의대 소아정신과 의사인 지나영 교수는 진단도 어렵고 치료도 어려운 자율신경계 관련 질병에 걸렸다.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적이어서, 일이든 인간관계든 운동이든 뭐든 즐겁게 열심히 하며 살던 그에게 갑자기 찾아온 병은 그로 하여금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겨우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 상태가 호전되었지만, 조금만 무리해도 극도로 피곤해져 버리는 그는 발병하기 이전의 활기찬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지나영 교수는 책 『마음이 흐르는 대로』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역시 이제는 내 병을 이기고 완전히 다 나아서 예전의 일상을 되찾겠다는 집착을 버리기로 했다. 그보다는 병으로 인해 달라진 내 삶을 소중히 여기고, 순간순간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살고자 한다. 인생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것이다. 지금 당장 힘들고 갑갑하고 아파서 서러울 때도 많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스스로가 뿌듯해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24시간 아이들 위주로 돌아가는 삶은 처음엔 갑갑하고 힘들겠지만 나는 곧 적응할 테고 이 시간은 금세 지나갈 거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아쉽지만 잠시 포기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준다. 그렇게 현재에 충실한 삶은 아이들과의 친밀한 관계, 여유로움, 삶을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 등과 같은 또다른 빛나는 열매들을 내게 안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