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동생이랑 잘 놀아주고, 잘 챙겨주고, 손잡아주는 오빠, 이런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이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아들도 나도 이런 동생을 원한다고 말하며 바라는 동생상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오빠 물건에 몰래 손대지 않고, 까불지 않는 동생, 바로 이런 동생 ”
둘이 서로에게 바라는 오빠상과 동생상을 듣다 보니 쉽게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오빠한테 바라는 것이 있었다. 다른 친구 오빠들처럼 나한테 친절하게 대하고 자상한 오빠였으면했다. 오빠들이 무뚝뚝하여 재미도 없고 여동생이라고 특별히 예뻐하지도 않았다. 오빠 둘에 막내인 여동생인데 그들은 어쩜 같이 놀 수 있는 남동생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딸아이의 마음이 무슨 마음인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세상에는 이런 오빠, 이런 동생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오빠와 동생이 몇이나 존재할 까 싶다.
어릴 때나 어른이 되어서도 남매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분명히 남의 집 오빠들은 친절하고 여동생에게 잘해주는 것 같은데 집에 있는 오빠들은 그렇지 않을까?
어느 누구나 밖에서 보이는 모습과 집에서 보이는 모습이 다른 면이 존재하지 않은가
남이 든 떡이 좋아 보이듯이 내 것보다는 남의 것이 더 커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 같다.
궁극적으로 이런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을 친오빠에서 찾지 않은 것이 좋을 것 같다.
훗날 배우자에게서 찾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현실의 친족관계에서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약간의 뇌물(?)이 들어갔을 때 잠깐은 가능하지만 말이다.
남편을 내가 원하는 이상형으로 만드는 것이 승산인 있을 것 같다. 단 이때도 시간과 노력은 무지 많이 들어갈 것이다. 참고로 그뿐 아니라 연하가 될 수 도 있는 변수가 존재한다.
세상에 내 맘에 꼭 들어맞는 사람은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 내 마음도 시시각각 변하는데 그때마다 변해야 하는데 사람들 각자 개성이 있어서 누군가의 마음에 꼭 들기는 힘들다.
그리고 딸아 엄마가 아들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해서 다정한 오빠로 만들지를 못했다. 하지만 자식 낳아 키워 보면 알 것이다. 부모마음처럼 자식이 되지 않는다. 아직 너의 오빠는 어리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고 좀 더 다정하고 마음의 여유와 배려가 있는 오빠가 될 수 있도록 엄마로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