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 찬 거울과 업(業)
#20251210 #습 #업
인터넷 어디에선가 찬물 샤워에 대한 효능을 보았다. 찬물을 뒤집어쓰는 순간은 괴롭지만, 그때 분비되는 도파민이 좋은 도파민이라서 니코틴이나 코카인을 할 때의 도파민과는 달리 오래간다는 것이었다. 그걸 보고 나는 샤워 마지막에 잠깐씩 찬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핸드폰을 내려놓는 게 조금 과감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나는 따뜻한 물을 맞고 있는 걸 좋아한다. 시간과 비용이 가능한 한 아주 오랫동안 따신 물을 맞고 있고 싶다. 세상에 그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근데 따뜻한 물로 오래 샤워하면 화장실 거울에 김이 잔뜩 서린다. 그런 거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마지막에 찬물을 틀면 조금은 김이 가시지만, 그래도 오래 쌓인 김이 그렇게 쉽게 빠지진 않는다. 김이 조금은 옅어져서 뭔가 아른거리기는 해도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
따뜻한 물 다음에 찬물이라고 했지만, 비율은 거의 98대 2 정도일 것이다. 한 번 샤워하고 나면 거울에 김이 아주 잔뜩 서려 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몸은 아늑하고 따뜻하니 좋다. 찬물로 하면 싫지. 찌릿하고, 말 그대로 등골이 서늘하니까. 특히나 요새는 추워서 물이 아주 얼음장 같다. 처음에 환자한테 찬물 샤워를 권할 때, 뭣도 모르고 3분 동안 물을 맞아보라고 했는데, 정작 내가 할 때 시간을 재보니 3분도 아주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1분 정도라도 해보라고 했다.
따뜻한 물 샤워는 내 몸은 즐겁지만, 거울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다. 샤워 이후에 면도라도 할라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할 수가 없다. 명경지수明鏡止水, 대원경지大圓鏡智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거울을 내 인식認識이라고 본다면, 내 습관은 내 인식을 가리고 더럽히는 쪽으로 쓰는 것은 아닐까?
따뜻한 물 샤워를 오욕락五欲樂으로 보고, 찬물 샤워를 그 반대되는 것으로 본다면, 그리고 거울에 서린 김을 습習과 집착執着의 결과果로 본다면. 한 샤워(생生) 마치고 김이 잔뜩 서린 거울(인식)을 보면서 후회하진 않을까 걱정된다. 만수래만수거滿手來滿手去의 태어나고 죽음 속에서, 만에 1을 더해도 만이고, 만에서 1을 빼도 만이겠지만, 티도 안 나고 안 보인다고 해서 안 해서야 되겠는가.
화장실 문을 확 열어제껴야 하는데.
거울이 없는 경지는 못 해도
거울을 깨끗하게 만들지는 못 할망정*
오히려 거울을 더럽히고 간다니?
그러고 보면 몸이란 놈 참 지랄 맞다.
눈으로는 예쁜 거, 잘생긴 거, 감동적인 거 봐야 하고
귀로는 아름다운 멜로디, 화음, 클래식, 가요 들어야 하고
코로는 맛있는 거, 향기로운 거 맡아야 하고
혀로는 단 거 신 거 쓴 거 짠 거 기름진 거 감칠맛 나는 거 먹어야 하고
몸으로는 부드러운 거 따뜻한 거 입고 덮어야 하고
그뿐이랴, 철마다 그때그때 봐주고 먹어주고 입어주고 해야 하니까.
아니지. 눈, 귀, 코, 혀, 몸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잘못은 그런 걸 자꾸 찾는 영혼에 있다. 그게 삶의 전부인가? 거기에 끝이 있을까? 구해도 구해도 끝이 없는데(求不得苦) 그게 삶의 전부인 양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어쨌거나 지금의 내가 걸려 있는 것들은 다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다. 지금 넘어서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날 붙들고, 구렁텅이로 떨어뜨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끊어야 한다. 내일이 아니고 바로 지금.
* 신수와 혜능의 게송
출처: https://blog.naver.com/venuslv/12263161, 육조단경(六祖壇經) |작성자 행복으로의 초대
신수
身是菩提樹(신시보리수) 몸은 곧 보리의 나무요,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은지라.
時時勤拂拭(시시근불식)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勿使惹塵埃(물사야진애) 티끌과 먼지가 들러붙지 않도록 할지어다.
혜능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보리수 본래 없고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명경 또한 대가 아님이라.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어디에 먼지 앉고 때가 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