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티끌? 뭣이 중헌디!
#20210221 #주식
학교 선배 한 분이 투자로 돈을 많이 벌어서 일을 그만둔단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면서 전문투자가가 되겠다고 했단다. 나는 요양병원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서 돈을 얼마나 받는지는 모르는데, 실은 요양병원이나 1차 의료기관에서 봉직의로 일하면서 어느 정도 살 수 있다고는 알고 있다. 나중에 자기 전문 분야가 없으면 서러울 수 있다고는 하는데, 딱히 의사 일에 뜻이 없다면 굳이 고된 전공의 생활을 견딜 필요는 없겠지.
면허를 딴 이후에 꼭 의사의 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의학전문기자, 변호사, 제약회사 등등. 실습 나오는 학생들에게 항상 ‘면허 따고 의사 일을 할 거냐’는 질문을 하는데, 3년 동안 딱 한 명 안 하겠다는 친구를 봤다. 다른 일이 맞으면 그거 하면 되지. 다만 의대는 직업학교라 다른 일이 맞는지 안 맞는지 경험해 볼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냥 의사 일을 하기가 쉽다. 나도 많은 사람들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왔다. 현역으로 입학해서 유급 없이 졸업하고, 바로 모교 병원에서 인턴을 거쳐 전공의(레지던트) 생활을 하고 있다. 올해 전공의 생활을 마치면 군대에 갈 거고,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동기 중에는 바로 군대에 간 친구도 있고, 1차 의료기관에서 봉직의로 일하는 친구도 있다. 봉직의는 전문의보다는 못하지만, 확실히 전공의보다는 많이 벌던데.
나는 아직도 일에 대한 대가로 돈을 받는 게 잘 와 닿지는 않는다. 몇 개의 숫자가 통장을 스쳐 갈 뿐이라 그런 걸까. 그래도 돈이 많으면 좋을 거 같다. 뭐든 과감하게 할 수 있을 거 같다. 옷이나 게임기를 잔뜩 산다든지, 여행을 많이 간다든지. 그리고 통장에 돈이 없어서 갑자기 큰돈이 들어갈 일이 있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는 일도 없겠지.
실은 부럽다. 돈이 많은 생활이 어떤 건지 누려본 적이 없어서 모르고, 막연하지만 돈이 많으면 좋을 것 같다. 근데 만약 내가 투자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지금 하는 정신과 수련을 그만두지는 않을 거 같다.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 선배는 고난의 길이 예정되어 있었다. 우선 내과 수련 자체가 힘들다. 몇 달에 한 번씩은 중환자실 생활도 해야 하고, 계속 당직도 서야 한다. 게다가 전공의가 부족하니 있는 전공의들은 환자를 몇십 명씩 보면서 바쁘게 일해야 한다. 3년 수련받으면 끝인가? 세부·분과전문의 때문에 1~2년을 더 해야 한다. 힘들지.
나는 내 전공이 재밌다. 병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게 환자의 치료에 도움은 덜 될 수 있겠지만, ‘이 병이 이런 면도 있구나’ ‘이렇게 이해할 수 있구나’ 하는 게 재밌다. 특히 내가 재밌어하는 정신분석 관련 이론들은, 환자들이 아닌 나에게 먼저 적용해볼 수 있기에 더 와 닿고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처럼, 세상을 보는 현미경의 배율을 높이는 것 같다. 그리고 몸도 그렇게 힘들지도 않다. 다만 그만큼 마음이 지칠 때가 있지만.
물론 그 선배도 투자로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내과 지식과는 다른 지식을 쌓아야 할 거다. 나와는 다른 분야의 현미경을 갖는 거지. 나도 연습 삼아서 몇몇 기업의 SWOT 분석을 해보고 있는데, 아직 숫자들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업의 가치를 아는 것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돈을 벌려면 단순히 오를 것 같아서 사고, 팔고 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사는데 돈 많이 필요하다. 필요할 때 돈 없으면 서럽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도 해야 한다. 돈 때문에 쪼잔해지는 거 누구나 다 싫은데 그래야 할 때가 온다. 돈은 딱 그러지 않을 정도만 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보고, 먹고 싶은 거 먹어보고. 가고 싶은 데에 가 보고. 내 자유에 걸림돌만 되지 않으면 좋겠다. 문제는 어디까지 가질 수 있고, 어디까지 누릴 수 있느냐이다.
나는 그 선배가 어떤 생각으로 일을 그만두는지 모른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고, 힘들어서 일 수도 있지. 둘 다일 수도 있다. 그 선배가 큰돈을 좇은 것처럼, 나도 사람들의(특히 나 자신의) 마음/정신에 관심이 많고, 그걸 공부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물론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길게 글을 쓴 것도 방어기제일 수 있다. 어떻게든 내가 남은 전공의 생활을 그만두지 않고 잘 지내기 위해서,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지식화(intellectualization)와 합리화(rationalization)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돈 많으면 좋겠지. 그리고 살아가는데 돈이 당연히 필요하고. 다만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생각하기에, 살아감에 있어서 돈을 많이 버는 그 자체가 내 삶의 목적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어쩌다가 월급 모아서는 내 집 하나 못 갖는 사회가 되었는데, 아버지 말씀대로 꼭 집을 사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집만큼 돈이 오르는 것도 없기도 하고. 증권사 객장에 아줌마, 대학생이 나타나면 팔 때가 되었다는 말이 있던데, 거품이라는데 언제 꺼질지도 모르겠고. 주식을 안 하는 내가 바보인가 싶기도 하고. 요새 사회가 흘러가는 걸 보면 불안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차분하게 걸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