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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Nov 01. 2022

바람의나라

얼마나 가졌냐 vs 가진 것에 만족하느냐 

#20221101 #바람의나라 #만족


 오랜만에 또 바람의나라를 하고 있다. 무용(無用)의 시간을 어떻게든 녹이고 싶어서다. 나온 지 20년이 넘은 게임이라 그런지(1996년 출시), 그 많던 서버들도, 사람들도 대부분 없어져서 고인물들만 남았다. 화려한 캐시 아이템을 두르고, 레벨도 높은 사람들뿐이라 뉴비들은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다른 사람들이 화려한 기술이나 화려한 장비들을 선보일 때면, 나도 갖고 싶고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초등학생 때 바람의나라는 레벨 제한이 11까지였고, 그 이후에는 돈을 내거나 PC방에서야 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그때의 나는 PC방에 갈 수도, 돈을 내고 기간제 계정을 살 수도 없었기에, 레벨 11이 될 때까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다 해보는 것이다. 실수로 레벨 11이 되어버리면 체험판은 끝나고 내 모험도 같이 끝났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찾아보면 다 나오지만, 당시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그래서 신기한) 아이템들도, 갈 수 없는 곳들도, 잡을 수 없는 몹들도 많았어서, 고렙들이 화려한 아이템과 기술들을 펼치는 걸 보면서 부러워할 따름이었다. 


 다시 바람의나라를 한 건 고3 수능이 끝나고 나서였다. 서울대 논술시험도 마치고, 고등학교 졸업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떠오른 게 이거였다. 이제는 레벨 제한이 없어진 이 게임을, 전에는 내가 할 수 없었던 기술들과, 잡을 수 없었던 몹들과, 다닐 수 없었던 장소들을 다니면서 아주 천천히 레벨을 올렸다. 환수(幻獸)라는 펫 개념도 생겨서, 키우는 게 너무 즐거웠다. 환수를 다음 단계로 진화시키려면 내구도 100짜리 아이템을 끼고 몇 시간 이상 접속해 있어야 했는데, 이 아이템이 너무 약해서 (몹한테 100대 맞으면 깨졌다) 어디 가지도, 뭘 하지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어야 했다. 그래도 그 시간마저 즐거웠다. (컴퓨터 켜놓는다고 엄마한테 혼난 건 비밀) 그때 레벨 99까지 키우는데 3일이면 된다고 했는데, 나는 1달이나 걸렸으니 그 안에서 헤매는 걸 얼마나 즐겼는지는 말 다 했지 뭐. 그때는 승급까지는 어려워서 못했던 거 같다. 

손각시귀신호패는 2010년 이벤트 아이템이었다. 신기해서 갖고 있다가, 이제야 쓸모없는 템인 걸 알아서 버렸다.


 시간이 흘러서 본과 3학년 때였나, 1달 남짓한 방학에 할 게 없어서 또 잠깐 했다. 기술을 배우려면 직업학교에 가서 제물을 바쳐야 했는데, 스킬 트리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거기까지 갈 필요 없이 재료만 있으면 바로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승급도 쉬워져서 2차 승급까지 하고 3차 승급을 준비하다가 혼자서는 못해서 말았다. 레벨도 99까지였던 게 100 넘어서까지 있게 되었다. 


 다시 바람의나라를 한 게 지금이다. 직업도 4개였던 게 10개로 늘어났고, 4차 승급이 마지막이었던 게 8차 승급까지 생겼다. ‘영웅의 길’이라는 초고속 렙업용 퀘스트가 생기면서 레벨 올리기도, 승급도 더 쉬워졌다. 나는 단숨에 6차 승급까지 마쳤다. 레벨이 높아짐에 따라 돌아다닐 수 있는 곳도 늘었고, 들 수 있는 아이템도 많아졌고, 쓸모 있는/없는 아이템을 가릴 수도 있게 되었다.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었던 템들도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잡을 수 없는 몹과 레이드와 아이템들이 있었다. 환수의 모습들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의 모습들이 귀여웠는데. 




 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발전한(?) 게임도 놀랍다. 근데 이게 끝이 있을까? 게임이야 서버 종료하면 끝이 나겠지만. 내가 열심히 레벨을 높이고 템을 모으고 키우는 것은 그 게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리기 위함이다. 그 안에서 자유롭고 싶다. 어디든지 가고 싶으면 가고 (몹에게 맞아서 죽을 걱정 없이), 몹도 잡고, 원하는 아이템도 얻을 수 있는 자유. 나보다 레벨이 높고, 멋진 아이템을 끼고, 무엇보다 과금러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런 자유. 

출처: <진격의 거인> 131화


 세상을 사는 것도 비슷한 게 아닐까? 우리가 스펙을 쌓고, 돈을 버는 것도 이 세상에서 자유롭기 위함이 아닌가? 스펙이 좋아야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고, 또,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 더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마냥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근데 그게 끝이 없다. 스펙을 아무리 쌓아도 나보다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고, 돈을 아무리 벌어도 나보다 많은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계속 비교한다면 나는 언제나 불만족하겠지. 하지만 팔다리가 없어도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있고(...), 사람마다 저마다의 행복이 있는 걸 보면 인생의 방점(傍點)을 어디에다 찍느냐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느냐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모교의 모 교수님께서 환자들과 면담하면서 느낀 걸 말씀해주셨다. 환자가 주어진 환경에서 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는 걸 알아차렸을 때 좋아지는 걸 느끼셨다고 했다. 그게 설령 단순히 ‘기다리는 일’일지라도, 행동의 주체가 자신이란 걸 깨달으면 기다리고/말고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게임 내의 나도 이전보다 레벨이 높아지면서 다닐 수 있는 곳도 많아지고, 몹에 쉽게 죽지도 않고, 구할 수 있는 템도 많아졌다. 현실 세계의 나도 돈은 많지 않지만 나름 고스펙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지금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또 가진 것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고민하는 게 더 옳고 생산적인 고민인 듯하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나 자신만을 위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쓸 것. 어떻게 써야 더 잘, 더 옳은 방향으로 쓰는 것인지 생각해야겠다. 



p.s. 1. 생각해보니 내 인생 첫 사기를 당했던 것도 여기였다. ‘운영자GM’이라는 사람한테서 메일이 와서는, 무슨 이벤트에 당첨이 되셨으니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아이템을 주겠다고 해서 알려줬더니 갖고 있던 아이템을 다 털렸다. ‘GM은 비밀번호를 묻지 않는다’라는 안내를 수없이 봤으면서도 당했다. 용도는 모르지만 소중하게 모았던 아이템들을 털리고 나니 어안이 벙벙했다. 근데 내 손으로 비밀번호를 알려줬던 거라 상대를 탓할 수도 없었다. 화가 무척 났지만, 자신을 책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p.s. 2. 초등학생 때 가족회의를 소집한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그게 바람의나라 때문이었다. 부모님께서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하셔서 항의하고자 열었던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게임에서 다람쥐를 잡는 등 사냥을 하니까 폭력성이 커질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걸로 폭력성이 키워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빈약한 논리로 인해 떼쓰기밖에 되지 않았다. 


p.s. 3. 같은 반 아이 중에 아버지가 넥슨 직원이셨던 아이가 있었다. 학교에 간간이 넥슨 캐시가 들어있는 잡지를 들고 와서는 아이들에게 뿌렸다. 게임에 돈을 쓸 줄 몰랐던 나에게 ‘넥슨 캐시’란 엄청난 것이었다. 친하지도 않은데 어쭙잖게 구걸했던 기억이 있다. 


p.s. 4.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놀라운 경험을 했다. 쓸데없는(이제는 쓸데없다는 걸 알게 된) 템을 바닥에 버리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더니, 자기는 이 서버를 하지 않으니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말하라는 거다. 나는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거듭 말하라기에 필요하던 물건을 말했고, 그 사람은 아이디 7개를 돌려가며 자기한테 필요 없는, 하지만 비싸고 가치 있는 아이템들을 나에게 주었다. 마지막에는 그 물건이 자신에게는 없다며, 거금을 주면서 돈으로 사라고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삶을 정리하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가진 것들이 다 의미 없으니까 주변에,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나눠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떠날 건데 뭐, 죽을 때 갖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 또 무엇을 떠올렸냐면, 자유자재한 보살을 떠올렸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든 거기에 맞춰주고, 자신이 가진 것을 탈탈 털어서라도, 자신의 몸을 바꿔가면서도 상대를 위하려는 모습. 저 사람과 나는 무슨 인연이기에 생면부지(生面不知)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귀한 것을 나에게 준단 말인가? 하지만 이마저도 내가 게임을 끄면 현실로 돌아오듯, 게임 속에서는 귀한 것이지만 결국은 공(空)한 것임을 알아야 매이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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