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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ug 02. 2022

자존감 이야기 2

자기 확신 

#20220802 #자존감 #자기확신 #사견


 기본 신뢰(Basic trust)란 아기가 태어나서 최초로 맺는, caregiver(주로 엄마)와의 관계에서 쌓이는 상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믿음이다. 인간관계의 기본 틀(template)이 된다. 이게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까?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과의 관계, ‘자신을 믿어라’라고 할 때의 ‘자신’과의 관계에도? 


 한 아이가 크면서 자기 자신에 관한 일관된 상이 생기기 시작하는 때는 언제인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생기기 시작하는 때는 언제인가? 자신의 일관된 기준(좋다/싫다, 예쁘다/안 예쁘다, 옳다/그르다 등등)이 생기는 때는 언제인가? 그리고 그게 드러나서 스스로가 알게 되는 때는 언제인가? 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면 그때는 가능할까? 


 상대에 관한 상은 M. Klein이 말했듯, paranoid-schizoid position에 있던 아이의 마음이, 상대가 자신에게 해로운 존재가 아닌 걸 알게 되면서 depressive position으로 옮겨가고, 이를 반복하면서 점점 고정된다. 스스로에 대한 상도 마찬가지려나? 스스로에 대해서는 ‘좋다/나쁘다’라고 표현하기보단 확신에 관한 문제 아닐까? ‘내가 이걸 좋아하나/싫어하나?’ ‘내가 이걸 하고 싶은가?’ caregiver의 mirroring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아이는 스스로의 감정, 생각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채로 성장하니까. 그런데 혼란스러운 채로만 있을 수는 없으니 다른 방어기제들을 발전시켜 어떻게든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 하는 게 아닌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은 자기 확신(self-assurance)’에 관한 얘기인 듯하다. ‘나는 이게 좋아!’ ‘나는 이렇게 하고 싶어!’를 못하는 사람들. ‘내가 이걸 좋아하나?’ ‘이렇게 하고 싶나?’ 싶은 사람들. 자신이 느끼는 것에, 생각하는 것에 확신이 없으니까 남의 행동/말에 흔들리는 게 아닌지. 


 H. Kohut은 자존심(self-esteem)과 자기통합(self-cohesion)의 유지가 중요하고, 자기가 쉽게 깨지지 않고 자기통합이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부모를 잘 만나야 된다고 보았다. 부모가 아이에게 공감(empathy)을 잘해주고 적절히 반응(mirroring) 해 줄 뿐만 아니라 아이의 이상적(idealization)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Kohut은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고, 또 아이의 세상이 작을 때 caregiver가 주는 영향은 지대하겠지. 그렇지만 ‘내가 지금 이런 건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이래서 그래’라는 건 너무 무책임하고 못나지 않았나? 엄마 아빠의 그늘은 클수록 옅어져 가고, ‘지금의 나’는 어릴 때 이후로 몇 년이나 지났는데, 그 과거에 얽매여서 여태 그 모양으로 지낸다는 건 너무 못나지 않았나? 그때 그래서 힘들었을 수는 있지만, 그게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이유의 전부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지 않나?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불편하면 고칠 생각을 해야지, 원망만 하고 앉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걸! 


 나도 내가 원하는 걸 제대로 표현할 줄 몰랐다. 아기가 배가 고프든 졸리든 기저귀가 젖든 그냥 우는 것처럼, 나는 짜증을 냈다. (지금도 낸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받았다. 연인 관계에서도 계속 문제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걸 제때 말했다면 그렇게까지 흘러가지 않았을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성격도 예민하고 까다로워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짜증 내고... 그렇다고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관심법(觀心法)을 쓰라는 거야 뭐야, 정말 어쩌라는 거였는지) 한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애를 쉬면서 든 생각은, ‘이걸 고치지 않으면 계속 같은 문제로 헤어지겠구나’였다. 그래서 ‘다음에 누굴 만나든, 내가 원하는 걸 말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보자, 그걸 할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인 게 낫다’라고 마음먹었다. 그 정도로 마음을 정리하고 나서 사람을 만나니 확실히 전과는 다른 관계가 이어졌다. 


 뭐가 됐든, 좋아하는 거든 싫어하는 거든 화나는 거든 짜증 나는 거든, 내가 그렇게 느끼면 그런 거다. 다만 당신이 그렇게 느꼈다고 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모두가 이해해주는 건 아니다. 감정과 행동은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들면 왜 그렇게 느끼는지/느꼈는지는 알려고 하자. 그 이유가 명백하게 상대방에게 있는; 갑자기 때린다거나, 놀린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 내 마음에 어떤 게 떠올랐고, 그래서 이렇게 느꼈는지 하나하나 알아가야 한다. 본인 마음은 본인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무석,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3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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