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이 Feb 01. 2023

24. 시속 70km 구간 단속

진리란 무엇인가 

#20230201 #구속 #법칙 #자유 #진리


 절 가는 길에 시속 70km 구간 단속이 있다. 3차선인 데다가 길도 곧고, 포장도 새로 해서 빨리 달리기 참 좋은데, 구간단속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단속 직전에 다른 길로 빠지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 없이 속도를 낼 수 있다. 


 이게 자유일까 싶었다. 구속되지 않을 자유. 아무렇게나 달릴 수 있는 자유. 나는 시속 70km로도, 100km로도(구간 단속의 취지에는 맞지 않겠지만) 달릴 수도 있고, 더 느리게 가는 차 뒤에서는 그 속도에 맞춰줄 수도 있다. 


 우리를 구속하는 법칙은 괴롭다. 법칙에서 벗어났다, 자유롭다는 건 그만큼 괴롭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이 우리를 괴롭게 하는가? 부처님께서는 팔고(八苦)를 말씀하셨다. 구하고자 하지만 구할 수 없는 것(求不得苦). 사랑하는 사람과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것(愛別離苦). 보기 싫은 사람을 자꾸 봐야 하는 것(怨憎會苦). 나이 들고 병들고 죽는 것(生老病死).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먹으면 내보내야 하며, 졸리면 자야 하고, 추우면 입어야 하고 더우면 벗어야 하는 것(五陰盛苦). 세상에 태어나 이런 것들을 안 하고 살 수 있는 존재가 있는가? 


 또,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힘/능력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를 잡아먹는다. 밟고 올라간다. 힘이 없으면 잡아먹히는 세상이다. 다 생각이 다르고 상황이 다른 차별지(差別地)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사자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사회생활을 하며 때로는 밟고, 때로는 밟힌다.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진리(眞理)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겠다. 만약에 진리라는 게 있다면 그건 어떤 모양일까어떤 특성을 보일까이 뒤에 덧붙인 말들을 까먹더라도 이 화두(話頭)는 계속 갖고 있으면 좋겠다. 진리는 뜻 그대로면 ‘참된 이치’니까 시간이 흘러도 참된, 변하지 않을 무언가가 아닌가? 그러면 적어도 시간이 흘러서 변할 존재에는 진리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는 태양이 언젠가 적색거성이 되어 지구를 집어삼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태양 자신도 빛을 다 내면 쪼그라들어 백색왜성이 되겠지. 이렇게 변하는 존재에는 진리가 없을 테니까, 진리는 태양에도 없고, 지구에도 없을 무언가이다. 과학자들이 우주도 점점 팽창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우주가 변하는데 그 안에 있는 건 다 변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주 내에는 진리가 없겠다는 사실에 다다른다. 


 “The only constant is change”라는 문장이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사실 외에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이다. 우주 내에서는 맞는 말이다. 그럼 우주의 밖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부처님께서는 우주도 윤회한다고 하셨다. 우주 내에 있는 것은 우주를 따라 윤회할 수밖에 없다. 해탈은 이 우주를 벗어나는 것이다. 우주를 벗어난다니, 그것도 2,500여 년 전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니? 그때의 기술로는 태양도 별도 우주도 모를 때인데? 

이 아득한 우주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법칙을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윤회를, 우주를 벗어날 수 있는가? 부처님께서는 팔정도(八正道),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설하셨다. 진리 얘기로 돌아가자. 진리가 우주 내에 없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우주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이다.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떠나서 있다. 내가 진리에 들어가려면? 역시 시간과 공간이 없어야 한다.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말은 무엇이냐? 생로병사가 있으며, 너와 내가 있다는 말이다. 진리는 무타무자(無他無自)이다. 마음에 ‘나’와 ‘네’가 남아있으면 진리에 들어갈 수 없다.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 업(業), 인식(認識), 마음이다. 윤회하면서 ‘나’를 위해 쌓아온 업, 인식, 마음이 굳어져서 ‘나’를 만들고 남과 구분 짓게 했으니, 해탈하려면 반대로 그걸 깨나가야 하는 거다. 


 다시. 어떻게 해야 해탈을 할 수 있는가? 여태 나를 위해서 살아왔던 것을 남을 위해서 사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남이란?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가서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가깝고 깊은 인연인 가족들에게부터 최선을 다해서 잘해주어야 한다. 집안이 화목해야 일도 잘 풀린다는 말(家和萬事成)도 있지 않나? 남에게 잘해주는 것은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 가족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가족을 위해 베풀고(布施), 약속도 잘 지키고, 좋아하는 술도 끊어보고(持戒), 화나게 해도 참고(忍辱), 그걸 꾸준히 하면(精進) 점차 마음이 편안해지고(禪定) 지혜가 생긴다는 것. 예시로 든 것들이지만 육바라밀이 이렇게 생활에 녹아들 수 있다. 가정이 편안해지면, 직장, 사회 등등 점차 큰 범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 마음도 점차 넓어져 바다 같은 마음이 된다고, 그러다 보면 마음이 없는 경지까지 갈 수 있다고. 이와 같이 나는 듣고 이해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23. 하루하루 만다라 같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