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慈悲) 아상(我相) 발심(發心)
[그림 출처: 박광진 - 승군을 지휘하는 휴정(서산대사)])
#20230206 #자비 #아상 #발심
D의 팀장님을 전해 듣기로는 무능력한데 짬만 찬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자기가 잘못한 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상대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찾아다니고, 사과해야 할 사람에게 사과하지 않고 엉뚱한 사람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D는 그런 팀장님이 한심스러운 듯했다.
D 曰, 팀장님은 여태 문제가 많았는데, 자기 손에 피 묻히기 싫어서 주변에서 제대로 잡아주지도 않았고, ‘내가 뭔데 저 사람을 뭐라고 하냐’며 내버려 둔 게 30여 년이 흘렀다고 한다. 근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무조건 참고 받아주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근데 또 내가 뭐라고 팀장을 바로 잡아주나?
다른 종교인이 불상의 목 베고, 대웅전에 불을 지르고, 그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는데, 불교계에서는 ‘자비’라면서 용서했던 이야기를 D가 하기에, 마침 읽었던 절 월간지의 글 일부를 읊어주었다.
... 아무리 불법을 수호하고 양민을 보호하기 위한 좋은 의도이고 상대방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더라도, 왜구의 목을 베는 것과 같은 살육의 행위에는 그에 합당한 인과가 따르며, 아무도 그 업보를 대신 치러주지 않는다. ... 그 업보를 기꺼이 감내하고 어떤 고통이라도 달게 받을 각오와 함께, 불법을 수호하고 상대방의 악업을 끊어내겠다는 의지와 지혜, 용기가 있을 때만이 실천 가능한 것이 대승의 자비이다. ...
무조건 참는 게 능사는 아닌데, 그럼 어디까지 침범했을 때 반응을 해야 하는가?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나도 없고, 세상도 없는 이치를 깨달아서, 악업도 없고, 지옥도 없는 경지라면 대승(大乘)의 마음으로 상대를 위해 (악업을 더 못 짓게 하기 위해) 상대를 죽일 수 있겠지만,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잖아. 약육강식의 세계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주장해야 할 한계가 생긴다. 그 한계의 최소한이 ‘나(我相)’다. ‘나는 이 정도야’, ‘나는 이래’ 하면서 얼마나 한계를 지어왔던가? 더 수승한 분들도 계셨겠지만, 임진왜란 때 스님들의 ‘나’의 범위는 우리나라였고,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왜구를 베신 게 아닐까?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살아남으려면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주장해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상대를 위한다고 하지만, 각자의 잣대로 상대를 헤아릴 뿐이다. 그게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 것일까? 하지만 잘못되어가는 게 분명히 보인다면 누군가는 잡아줘야 해. 이 세상은 상대적인 세계니까 절대선(絶對善)이란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있다 하더라도 진리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 수는 없을 거다. 그럼에도 각자 아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선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은 있어야겠지)
어떤 사람 관련해서 자꾸 문제가 생긴다면, 그 사람만 문제거나, 그 사람 빼고 모두가 문제겠지. 가능성은 전자가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문제인 것을 누군가는 바로 잡아줘야지. 스스로 생각할 기회는 주어야지. 그 과정이 물론 힘들 거다. 근데 그게 지옥에 갈 각오가 아닐까? 그 사람과 부딪히는 당장의 마음도 지옥 같고, 과보(果報)로서도 나중에 지옥에 가겠지만, 그런 걸 감내하고서라도 그 사람을 바로 잡아주려는 게 진정한 자비 아닐까?
그럼 언제 그렇게 행동할 것인가? 언제 그렇게 각오하고 부딪힐 것인가? 그건 본인이 용기 내기 나름이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각오’한다고 견딜 수 있는 게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각오도 하지 않으면 언제 용기를 낸단 말인가? 아버지께서는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게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바로 발심(發心; 發菩提心)이다. 그건 본인이 마음먹기 나름이라, 시간이 지나도 생기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에는 용기를 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그건,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용기이다. 내가 용기를 내지 않으면, 내가 내 마음을 뒤집지 않으면 부처님이 천 분이 내려와도 날 해탈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일심이문(一心二門)에서 생멸문/해탈문을 선택하는 건 언제나 본인의 몫이다. 그리고 상대를 진심으로 위해서 노력할 때 해탈문이 열린다고 나는 믿는다.